염주 돌리며 염불해도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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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겨울임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조금씩 추워지는 날씨가 연이어지고 있습니다. 추운 날씨에 큰스님, 그리고 모든 스님과 사찰에 계시는 모든 분들 건강하게 생활하시길 바랍니다. 여쭈올 말씀은 다름이 아니오라 어느 사찰을 가더라도 부처님의 모습이 다 다릅니다. 제가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부처님은 비로자나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이며 그리고 석가모니불 부처님을 어렴풋이나마 구분을 하고 있습니다. 그외에 문수보살을 비롯하여 다른 불보살님들은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알 수 있는지가 궁금하고, 염주를 돌리면서 관세음보살을 염하면서 돌리는데 그래도 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추운 날씨에 몸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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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방편에 따라 수많은 불보살님의 이름을 만들어 놓았지만 그 이름에 끄달리거나 얽매여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비로자나불이니 관세음보살이니 지장보살이니 해도 결국은 한군데로 흐르는 겁니다. 모두 한자리인 것입니다. 구분을 하기보다는 그분들을 통해서 어떤 가르침을 주려고 하는지를 생각해보세요.
한군데로 흐르는 그 자리에서 아프면 약사가 되고 죽어서 좋은 데로 못가면 지장이 되고 명이 짧으면 칠성이 되고, 그러니 관세음보살은 이 세상의 이름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이렇게 용도에 따라 그 한자리에서 모든 것이 나온다는 것을 잊지 않고 항상 안으로 그 마음을 향하게 하는 것이 우선 첫째로 해야할 일일 겁니다.
그리고 염주알은 여러분의 몸이라고 할 수 있고 염주줄은 뿌리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전체 생활하는 도리를 그대로 염주로 표현해 놓은 겁니다. 염주알을 처음부터 굴리면 끝으로 오지 않습니까? 종점으로 와서 보니까 시발점과 종점이 교차로가 됐단 말이죠. 그것이 바로 생과 사를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생과 사는 둘이 아니라고 하는 거죠. 우리가 미생물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교차로에서 교차를 하는데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현실에 나오는 것이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미래의 오늘로 올 때에 또 모습을 쓰고 나온다 이겁니다.
그래서 만약에 소나 돼지같은 모습으로 태어난다면 그런 습이 또 붙어가지고 영 그 습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되기 극히 어렵다고 하는 겁니다. 지금 현상계에서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잘 모르죠? 희미하게 알 수 있는 법은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실질적으로 현실에 한번 소가 돼서 맞아보고 돼지가 돼서 그런 아픔을 당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이론으로만 밝을 뿐 그걸 당해보지 않으면 하나도 모를 겁니다.
그러니 그 많은 부처님의 이름을 구분하여 알려고만 하지 말고, 염주를 돌리는 것에만 치중하지도 말고 그렇게 하는 뜻이 무엇일까 생각해서, 말로 백마디 천마디 하는 것보다 말없이 실천으로 한 번 옮기는 것이 더 값지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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