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무념무상 하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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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가장으로서 살아가려면 의식주가 필요한데, 그저 그냥 무념무상만 생각을 하면 되나요? 과연 무념무상은, 예를 들어 원초적인 원자도 아닌, 그러나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니고 무도 아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유자재인가요? 쉽게 잘 설명해 주세요. 수행은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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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지금 한 가정의 가장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냥 무념무상으로 살아라 하는 것이 아니라, 분별하되 분별이라고 하지 말고 모든 거를 생각하되 함이 없이 해라 이겁니다. 함이 없는 줄 알아라 이거예요. 댁의 육체 속에도 수많은 생명들이 들어 있죠? 그러면 더불어 같이 생각을 했지 왜 당신이 생각을 했다는 겁니까, 공(空)했는데. 그렇죠? 그럼 공체(共體)로서 공심(共心)으로서 생각한 게 아닙니까? 자기 혼자만이 그 생각을 한 게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자기가 봤다, 자기가 생각한다’ 이런 마음 자체를 떼라 이겁니다. 그냥 공심에서 공 생각을 한 거죠. 공심으로서 한생각을 하는 거지, 내가 생각을 했다느니 안 했다느니 이런 이유가 붙을 자리가 못 되죠. 그러니깐 여러분한테 사랑을 하지 마라, 돈을 벌지 마라, 무슨 욕심을 내지 마라 이런 게 아니고, 하되 하지 말라 이거죠. 함이 없이 하라.
이 말을 해야 되겠군요. 어느 제자가 스승한테 이렇게 말을 했답니다. “나는 세상이 너무 복잡해서 산으로 올라가서 토굴을 묻고 공부하겠습니다.” 이러니까 “그럼 그렇게 해라.” 하고 선뜻 대답을 하고 난 뒤에 “그렇다면 내가 한 가지 말할 게 있다. 네가 혼자 공부하러 가겠다면 네 몸 속에 있는 생명들 다 내놓고, 옷도 벗고 물도 먹지 말고, 밥도 먹지 말고 땅도 딛지 말고, 모든 걸 너 혼자 한다니까 다 내놓고 너 혼자 해 봐라.” 이랬답니다. 그러니까 그 말끝에 고만 무릎을 탁 치면서 하는 소리가 “아하! 내 몸뚱이도 그렇고 모두 일체가 둘이 아니게 같이 더불어 사는구나!” 하고선 “지겨워할 것도 없고 내가 바로 그고 그가 나니까, 내가 어디로 간다 안 간다 할 것도 없구나!” 하고 생각을 했더랍니다.
그랬듯이 그것은 사람의 생각으로써 자기가 지어서 업이 되고, 자기가 지어서 착이 되고, 자기가 지어서 악행이 되고, 자기가 지어서 뛰어넘지 못하고 이러는 거예요. 마음은 체가 없어서 무한량인데 말이에요. 거칠 것이 하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당신 혼자 살아야 그게 되는 거지 더불어 같이 살고 있는데 어떻게 당신 혼자 물을 마셨다고 하고 물을 안 마셨다고 하고 이렇게 이유가 붙습니까? 공생(共生)이면서 공심(共心) 공체(共體) 공용(共用) 공식화(共食化) 하고 돌아가는 이 살벌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그것을 터득하고 어디다가도 착을 두지 않으면서도 어디다가도 사랑하지 않고 자비로써 베풀 수 있는 그 너그러움을 가져라. 이런다면 입에 붙은 사랑이 아니고 아주 정직하게 실천하는 자비죠.
지금 과학자들이 많은 연구를 해서 발명을 하고 발표를 하고 이랬지만 이 부처님 법이란 아주 심오하고도 묘하고 광대하고도 무변해서, 즉 말하자면 내가 누구든지 하고 싶은 대로 그것이 결과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것은 연구해서 되고 어떤 것은 안되고 이런 게 아니라 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어느 것 하나 건지지 못하는 게 없습니다. 왜냐? 우주 삼라만상 대천세계도, 하다못해 물 한 방울도 안 돼 보신 분이 아니다 이겁니다. 물 한 방울조차 돼 봤던 분이기 때문에 물 한 방울에도 그 이름이 거기에서 솟아오른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 그 천차만별의 이름들을, 천차만별의 모습들을, 천차만별의 마음으로서 연구하고 사는 그 모습들이 모두가 부처님 한마음에 들어 있으니, 그 마음 하나에서 다 천차만별의 가지가 가지가지마다 거기에서 풀리고 나온다. 우리가 뭐를 한 가지를 연구해서 발표를 하고 발표를 해서 남들이 다 알게 하는 그 어떤 조그마한 걸 하나 만들어서 놓는다 하더라도, 이것은 우리가 본래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살기 때문에 본래 정수에 컴퓨터로, 자동적인 컴퓨터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어느 거든지 능히 주어지니까 내 마음을 마음대로, 내 마음이 마음대로 넘어서라 이거예요. 내 마음이 주저주저하지 말고 마음대로 넘어설 줄도 알아야 된다. 걸을 줄도 알아야 된다. 내 마음이 깊은 물속에도 들어갈 줄 알아야 된다. 내 마음이 우주법계를 돌 줄 알아야 된다. 그리고 다섯 가지 오신통이라는 거를 그냥 굴릴 줄도 알아야 된다. 이 모두가 전체, 바로 그 도리가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가 그대로 합류 돼서 돌아간다는 수레와 같은 그런 이치입니다.
우리는 지금요, 시공을 초월해서 살고 있어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살고 있다고요. 그런데 그것을 한 번도 생각을 해 본 예가 여러분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산다, 넘어서서 산다 이런다면 우리가 정신이 아니라면 몸을 어떻게 이끌어 가지고 가겠습니까? 저 언덕이라는 그 자체가 바로 정신계거든요. 그리고 내가 항상 말했죠? 고정됨이 없이 찰나찰나 나툰다. 고정된 게 없이 화해서 찰나찰나 나투면서 일거수일투족을 그렇게 생활을 한다. 걸어오는 발자취가 앞으로 걷지 않았으니깐 없고 뒤는 자꾸 가니깐 없고, 현재에도 공해서 떠벅떠벅 떼어 놓고 올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체 생활을 하되 함이 없이 하는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된다면 ‘그대로 물 마시고 팔 베고 누웠으니 이만하면은 아주 족한 것을….’ 하는 그런 말과 똑같은 얘깁니다. 그리고 또 고가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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