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밖에는 없는 것인지요?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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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밖에는 없는 것인지요?

본문

질문

사람들은 모두들 저마다의 꼭 해야 할 바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스님을 만나서 이 마음공부를 하게 된 저의 인연은 무엇일까요? 제가 마음공부를 해서 어디에 써먹으려고 이렇게 이 길을 가고 있는 걸까요? 공부를 해 나가다가도 ‘꼭 이 길밖에는 없는가?’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스님께 여쭙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지금 이 시대는 뭐든지 공중에서 탐지하고 공중으로 정보를 보내게끔 되어 있는 그런 급박한 시대입니다. 그러니만큼 우리가 어떻게 처신을 하고 어떻게 공부를 해야만 이 생사를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잘 참작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 생사의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너무나 급박한 세월 속에서 수천 년 수만 년이라는 세월을 그냥 또 이름도 없이 말려서 여기에서 태어나고 저기에서 태어나고, 차원이 낮게 나고 차원이 높게 나고, 항상 몸을 받아 나와서 그렇게 애를 써야만 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부처님 되는 것이 십중팔구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러냐?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자기를 부처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마음이 부처를 만드는 것이지 허공에서 갖다 주는 것도 아니고, 형상에서 갖다 주는 것도 아니고 글자를 세워서 갖다 주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과 같이 한 도반으로서 여러분의 길을 인도해 드릴 뿐입니다. 그 맛을 아는 것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각자 그 맛을 알아야 되는 것이죠. 그러기에 부처님께서도 “사람이 살고 죽는 데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 길밖에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살고 죽는 데서 벗어나야만 하는 일은 우리한테 너무나 큰일이며 너무나도 타당한 일이라서 게을리 생각하지 말고 부지런히 닦아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속이고 또 속임을 받고 하는 것은 자기 마음일 뿐이지 누가 속인다 또 안 속인다가 없습니다.

한번 생각을 해 보세요. 만약에 귀를 꼭꼭 막고서 소리를 듣는다고 할 때는 안 들릴 겁니다. 또 그 귀 막은 것을 떼고서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다 듣게 됩니다. 역시 눈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보물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눈을 감고 볼 때는 보이지 않지만 눈을 뜨고 볼 때는 보이듯이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하면 그 도리도 모르거니와 우리가 그렇게 진기한 문제를 터득할 수도 없고 내가 나를 발견할 수도 없는 겁니다. 반면에 허망한 물질적인 문제들만 가지고 싸우게 되고 집착하게 되고 삼독을 빼 버리지 못하게 되는 원인이 거기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바쁜 것이 무엇이냐. 나는 항상 자기 내공에 모든 것을, 일체 들이고 내고 하는 것이 우리 생활이니 그 생활을 바로 자기 내공에 놓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법을 믿지 않는다면 놓지를 못하고 또 놓지를 못하면 편안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생활에서 얼마나 쪼들리고 방황하고 그렇게 애를 써야만 합니까? 한 번 와서 머물렀다가 그냥 가는 길에 말입니다. 이 세상에 나와서 잠시 잠깐 머무르는 동안에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사는 것이지만 억겁 동안 말리느니, 억겁 동안 그 생사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애를 쓰느니 한 세상에 머물렀다 가는 이 길에서 우리는 터득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고 벗어나는 게 마땅하다고 봅니다. 모두들 물질에만 급급해하지 마시고 물질을 쓰되 하나도 씀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셔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날 때에 누구나가 다, 못생겼든지 잘생겼든지 자기가 형성시켜서 자기가 난 겁니다. 못났든 잘났든 자기가 형성시켜서 났으니까 바깥에서 구원을 받으려고 애쓰지도 말고 바깥에서 구하려고 애쓰지도 말아야 합니다. 바깥의 형상을 보고 남의 참견도 하지 마시고 오로지 나한테 인연이 있어서 닿는 일은 모든 것을 나한테, 그 상대방을 원망하고 상대방한테 말할 게 아니라 바로 내공에다가 믿고 놓고, 거기에서 굴릴 수 있는 그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면 우리는 그렇게 크나큰 일도 그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소한 일뿐이겠습니까. 생활이 불교고 불교가 생활이고 또는 마음이 부처고 부처가 마음인지라,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공부하는데 어디에 역점을 둬야 하느냐. 생활이라면 가정생활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그렇고 국가적으로도 그렇고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우주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다 생활인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른 생각할 때에 이 공부를 해서 무엇을 하나 하지만 그렇게 섣불리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린 생활에서도 하나하나 말을 하지 않고 한생각을 먼저, 그러니까 상대방에서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때 한생각이 벌써 건너고 나면 그 마음이 내 마음과 둘이 아니어서 내 몸뚱이 움죽거려서 거길 갔을 때에는 이미 마음이 한마음으로 통해서 마음과 마음이 다 같아지니 이 육신도 같이 참 좋게 대화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모든 것에서 이 법이 일상생활에 써진다는 것을 역력히 아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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