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과 공에 빠진 상태의 차이
본문
질문
스님의 말씀 중에 공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있는데요, 아무 생각도 없는 그런 무심의 상태하고 공에 빠진 상태하고 어떻게 다릅니까? 그리고 저희가 공부하는 과정에서 무기공에 빠지지 않고 멈춤이 없이 바르게 정진해 나갈 수 있도록 꼭 이끌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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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무심은 그냥 일을 하면서도 무심이지마는 공에 빠진 상태는 바로 이 내면세계의 노예가 되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그러면 목석이죠. 그러니 그런 공에 빠지면 그게 사람입니까, 어디? 이것이 그래서 길잡이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에도 속지 말고 바깥에도 속지 마라 하는 것은 안에서 만약에 그렇게 해서 나를 발견했다 하면 둘이 아닌 도리를 공부시키기 위해서, 많은 파도가 일어납니다. 타의에서도 나를 괜히 으르릉거리고 못 먹겠다고 그냥 그냥 그렇게 되고요, 또 자의에서 괜히 화가 나고요, 괜히 하나를 보기만 해도 신경질이 나고 그럭할 때가 있거든요.
그러면 ‘아하, 거기서 이것이 나를 공부시키느라고 이러는구나.’ 하고 거기다 다시 뭉쳐 놔야 될 텐데, 바깥으로 ‘에그, 저것이 그냥 나를 가지고 이렇게 해서 내가 어떠니 저떠니….’ 하고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면 그냥 길길이 뛰게 되죠, 아주. 분하게 되고 이거는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고 그냥 그렇게 되죠. 그러니까 안으로는 그렇고, 바깥으로 또 끄달려서 그렇게 해서도 아니 되겠죠. 그러니까 그냥 맹목적으로 가만히 앉아서 거기에만 그냥 생각하고 앉아 있는 사람은 무기공에 빠진다 이 소리죠. 그 사람들은 움죽거리고 살면서 생활에서 그냥 그게 참선인 줄 모르고 아주 생활까지도 버리고 앉아 있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러니 그건 바로 무기공에 빠진 사람들이다 이런 말이죠. 그러니 생활 하나하나 하는 게 생각하면서 뛰고 뛰면서 생각하는 게 그대로 좌선이며, 좌선은 모든 걸 맡기고 사니까 마음이 편안한 것을 좌선이라 하고, 바로 뛰고 앉고 서고 자고 하는 게 전부 참선이라 합니다. 그러니 둘로 보지 마십시오.
그리고 요 말을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내가 만약에 재주가 훌륭해서 여러분의 그 재료를 내가 가지고선 다 이걸 해결을 한다면 여러분은 뭐 가지고 공부를 합니까? 네? 그러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 애고(哀苦), 그 괴로움 이런 거를 가지고 하시라 이겁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하시면서 지극한 정성과, 즉 말하자면 보이는 데서도 정성, 안 보이는 데서도 내 마음으로 정성, 항상 거기 놓고 그렇게 가고 그러면은 훌륭한 자기 자력이 되고 또 식구들의 제삼자 하나하나가 바로 같이 들어갑니다. 모든 업과 모든 병과 모든 것이 다 없어집니다.
그래 어떤 때는 그럽니다. 함께 공부해 나가는 도반들을 위해서 정성스럽게 준비해서 다 함께 나누는 그런 분들을 보거나 이끌어 주는 스님들을 위해서 집에서 키우는 채소라도 깨끗이 해서 올리고 그럴 때 정성스럽게 하는 것이, 맛있게 먹으라고 하는 그 마음이 바로 자기 정성입니다. 자기한테 자기가 하는 겁니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하다 보니까 ‘아하, 내가 이런 정성이라도 해야겠다.’ 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렇게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하나가 남 주는 게 아니고 꽃 한 송이 갖다 꽂아 놓는 것도 남을 주는 게 아니라 바로 자기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 해 놓는 데에 자기가 그 백분지일이 없어지고, 또 하나 하는 데 또 없어지고, 하나 하는 데 또 떨어지고, 이렇게 왜 봄이 되면 고드름 쪼끔쪼끔 떨어지는 것 있죠? 그렇듯이 아주 얼어붙은 게 쪼끔쪼끔 떨어져서 녹아요. 그렇게 봄이 올 수 있다 이 소립니다. 이거는 장담하죠. 여러분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그 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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