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디서 왔나요?
본문
질문
제가 친하게 지내고 존경하는 분께 “내가 어디서 왔습니까?” 하고 물으니 “부처님 마음에서 왔다”라고 대답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걸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과연 어디서 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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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내가 어디서 왔는가’ 하는 것은 물론 이렇다 저렇다 돌고 도는 물과 같은 것이지만 말 한마디 규정해서 아귀 짓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내가 알면 아는 대로 안다는 것을 세우지 않고 말할 수 있고 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여기 마이크가 있다고 합시다. 마이크 안에서는 별의별 소리가 다 나옵니다. 지금 마이크의 근본은, 우리가 씀씀이가 없다면 이 마이크는 소용이 없죠.
이전도 아니요 이후도 아닙니다. 단지 화창한 날씨에 꽃이 피고 새가 울고 물이 흘러 돌 뿐입니다. 사람사람이 누구나가 다 이 세상 살아나가는 데 모든 게 근본이 있습니다. 근본은 마음의 근본이겠지요. 그런데 그 마음마저도 세울 게 없으니 어디로부터 세울 게 없는 게 생겨났는지…. 그리고 내가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이것은 ‘계단이 없으면서도 한 계단이 있고 한 번 죽기 어렵다 했더니 두 번 죽기 어려워라. 두 번 죽기 어렵다 했더니 세 번 죽기 어렵더라.’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한 번 죽어서 알고 두 번 죽어서 몰랐더니, 세 번 죽고 보니까 알고 모르고 혼비백산이 돼 버렸네.’ 하는 겁니다.
그래서 줄창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물론 이전도 없고 이후도 없다고 그런 소리는 무슨 소리냐 하면, 억겁을 거쳐서 진화가 돼서 나왔지만 그것이 바로 오늘에 의해서 모든 게 규합이 됐다는 얘깁니다. 그건 무슨 소리냐 하면, 어저께 금방 콩씨였더니 바로 오늘에 보니깐 콩나무가 됐더라는 얘깁니다. 그와 마찬가집니다, 그 뜻이.
그러니까 억겁을 거쳐 나왔다 할지라도 이 몸 하나 난 것이 전체 그 습으로 인해서 두리둥실 뭉수리처럼 다 짊어지고 안고 이고, 이러고 바로 오늘의 내가 지금 살고 있죠. 전자의 살던 습을 지금 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자라 하면 여자의 행동을 하는 습을 가졌고, 남자라 하면 남자의 습을 가졌고, 또는 애들하고 있으면 애들하고 같이 하면서 어른이라는 습을 가졌고 또 어른 보면 나는 젊은이라는 습을 가졌고, 살림살이의 모든 전체, 맛이 있다 맛이 없다, 이 모든 전체 이날까지 살아온 습에 의해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두 마디는, 글자는 똑같지만 사람이라고 해서 차원이 똑같은 바가 없습니다. 비유한다면 넝마도 있고 깡통도 있고, 무쇠도 있고 동도 있고, 금도 있고 은도 있고 이렇듯이 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 서로 만나서 사는 것도, 서로 모이는 모임도 끼리끼리 모인다는 얘깁니다. 그건 왜? 자기의 습에 의해서 차원대로 자기 모임이 그렇게 모이게 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인과라고도 합니다. 자기 습에 의해서 인과를 짓고, 인과를 지음으로써 그 습을 떼지 못하면 바로 그게 유전으로 변화하고, 유전으로 변화한다면 자기가 생각하고 아끼고 그러던 착을 둔 데에 꼭 유전성이 거기에 붙어 돌아가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얽히고설키고 그렇게 붙어 돌아가고, 끊임없이 끄달리면서 이렇게 여직껏 내려온 거죠.
그러면 앞으로도 그렇지 않은가. 습을 뗀다고 하기 이전에 내가 떼려고 하는 마음도 공이요, 또 내 몸도 공이다 이겁니다. 그러면 붙을 데가 없는데, 떼려고 하는 게 어디 붙을 데가 있느냐는 얘깁니다. 붙을 데가 없는데 뗄 거는 어디 있느냐는 얘기예요. 본래는 있다 없다가 흰 구름과 같은 겁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하죠?
그래서 우리가 일체 유생 무생의, 만 사람의 마음의 꽃이 향기로써 이 우주를 덮는다면, 우리는 이 마음이 어떻고 저 마음이 어떻고 이렇게 갈라서 사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꽃의 향기와 같아서 마음이 그렇게 똑똑하고 착하고 어질고 도의 의리 사랑을 저버리지 않는 지혜 높은 그런 넓은 사람이 있고, 또는 이 도리를 알아서, 공한 도리를 알아서 자기의 아상도 세우지 않고 욕심도 착도 두지 않고 둥글둥글 걸리지 않게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바로 법신이자 부처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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