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면서도 놓치지 않으려면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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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면서도 놓치지 않으려면

본문

질문

제가 이렇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공부해 나가다 보니 어떻게 하면 평상시에도 마음을 놓치지 않고 잠자면서도 참선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늘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불현듯이 ‘아, 잠자면서도 내가 자는 게 아니고 주인공이 잔다고 생각하고 자면 그게 24시간 다 가동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바른 깨달음인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깨달음이라는 말을 함부로 그렇게 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느꼈다 이거지, 깨달음이라는 언어는 아무 데나 함부로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잠자면서도 가동이 된다고 하는 건, 이 몸은 바로 내 마음의 수레이기 때문입니다. 끌고 다니는 차와 마찬가집니다. 차는 세워 놓고 주인은 나가서 이 일도 보고 저 일도 보듯이. 안 그렇습니까? 그렇듯이 꿈에서도 몸뚱이는 재워 놓고 자기는 나가서 막 돌아다닙니다. 그러면 꿈이 생시고 생시가 꿈이니 여러분이 마음을 가지고 차를 끌고 다니든 차를 세워 놓고 다니든 여러분이 다니는 건 똑같습니다. 몸을 끌고 왔든 몸을 세워 놓았든 당신 마음이 다니는 거지, 육체가 다니는 게 아니에요. 육체는 마음에 의해서 따라다닐 뿐입니다. 따라다니다가 마음이 쉬면 몸도 쉬죠. 그래서 저녁이 되면 ‘자는 시간이다’ 하고 자니까 자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자지 않아요. 자기 몸은 잔다 할지라도 자기, 즉 말하자면 유전자라고 할까요? 하여튼 혼백은 자지 않습니다. 영혼은 자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낮에도 잔다 안 잔다 할 게 없어요. 쉬면, 가만히 있으면 부처고 마음을 냈다 하면 법신입니다, 활용. 즉 말하자면 마음을 냈다 하면 법, 능력이고 몸을 움죽거렸다 하면 활용이에요. 그러니까 언제나 불이 켜졌다 꺼졌다 이런 언어도 붙지 않는다 이겁니다.

얘기 하나 할까요? 어느 나라에서는 불이 항상 켜져 있거든요. 그런데 그 나라에서는 밝았다가 컴컴했다 이러질 않고, 캄캄하지도 않고 밝지도 않아요. 전깃불은 항상 켜져 있는 상태죠. 그러니까 거기는 전기가 나갔다 들어왔다, 켜라 꺼라 이런 언어가 없답니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가서 “불은 껐으면 좋겠습니다” 하면 그 언어를 모릅니다. ‘불을 켰으면 좋겠다’ 해도 모릅니다. 그렇듯이 이 나의 영원한 자기, 근본적인 자기 실(實)은 참이란 말입니다. 자기의 근본은 켜졌다 꺼졌다 이러는 바도 없다 이 소립니다. 예를 들어 에너지가 있으면 에너지일 뿐이고 기름이면 기름일 뿐이에요. 갖다 쓰는 것은 운전수가 갖다 쓰게 되죠. 기름일 뿐이지, 기름이 왔다 갔다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쓰는 사람이 왔다 갔다 하면서 그걸 쓸 뿐입니다.

그런 거와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능력은, ‘부처님의 능력은’이라고 하는 것은 온 누리의 우주간 법계가 다 부처님이라고 한다면 그 말 자체는 전부 공해서 공력이 바로 그렇게 무수하다는 얘깁니다. 쓰고 안 쓰는 거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는 거지 부처님의 능력이 없다 있다가 없습니다,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도 없고.

그러니까 밤에 자기를 재워 놓고 돌아다니는 그 나의 그림자의 또 그 마음의 그림자, 이것도 그림자고 그것도 그림자인데 이게 그림자의 또 그림자거든요. 자기가 만들어서, 모습을 만들어 가지고 밤중에 다니거든. 그런데 자기가 또 만들어 가지고 낮에도 다니거든요. 이것도 자기가 형성시킨 거니까 자기가 만든 거거든요. 진화돼서 창조를 시키는 것도 자기의 근본이 없으면 안 되죠. 만약에 지금 유전공학을 하는 데도 유전자가 없으면 그것은 물질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물질도 변화를 시킬 수 없고 만들 수도 없고, 크게 만들 수도 없고 작게 만들 수도 없어요. 근본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좋다 나쁘다 즐겁다 사랑한다 하고, 종교도 이 종교 저 종교 가지고 싸우고, 이런 여러 가지 문제가 모두 붙죠. 여러분 각자 내가 없는데 뭐가 있습니까. 그 근본으로 인해서 모든 게 생기는 겁니다. 이 진리가 이렇게 쉴 사이 없이 돌아가듯이 여러분도 자고 깨고 자고 깨고 반복하는 이 생활이 그대로 진리며 그대로 참선이다 이겁니다. 여러분이 잠잘 때도 그렇게 쉬지 않고, 자지 않을 때도 쉬지 않지 않습니까. 자는 것도 참선이요 이렇게 깬 것도 참선이요 먹는 것도 참선이요 똥 누는 것도 참선이요, 모든 게 참선 아닌 게 없는 거라. 그런데 왜 참선이 끊어집니까? 끊어지는 것은 댁의 마음이 끊어졌다고 하니깐 끊어진 거지 아니, 살림살이가 그냥 끊어진 게 어디 있습니까? 세상이 끊어졌습니까, 어디? 그냥 돌아가는 거지.

그래서 여러분을 탑이라고 한다면, 여러분이 탑을 만들어 놓고 탑돌이를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도 여러분이 그걸 모르기 때문에 탑을 만들어 놓고 탑돌이를 하라고 그런 겁니다. 여러분은 지금 만날 탑돌이를 하고 계십니다. 이리로 왔다 저리로 갔다, 쌀 푸러 갔다 똥 누러 갔다, 그게 탑돌이 아니고 뭡니까? 그렇게 돌다가 살다가 죽죠. 죽었는데 그것이 뭘로 나오든 또 돌아서 나오니, 인간의 씨가 있기 때문에, 뿌리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또 나오고 또 나오고 또 나오고 이렇게 돌다 보면 항상이지, 어디 끊어지는 데가 있습니까? 이 도리를 아시란 말입니다. 이해만 하고 알기만 해서도, 이론적으로 알기만 해서도 아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는 그 자체를, 모든 것을, 일체 나쁘고 좋은 것을 다 자기 주인공에다, 공(空)에서 나온 거 공에다 놔라 하는 겁니다. 맡겨 놓고 믿어라. 지켜봐라. 그러면 홀연히 ‘참’이라는 게 거기서 흘러서, 그 생명수의 맛이라는 것은 정말 옆의 사람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천차만별로 그 맛이 이렇게도 나고 저렇게도 나고, 이거는 천차만별로 좋은 맛이 나는데 도대체 그 맛은 정말 어디다 비교할 수가 없거든요.

그러니 우리가 지금 앉아서 좌선하는 것만 참선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눈 하나 깜빡거리고 이렇게 도는 것도 다 참선이에요, 다! 그런데 “불경스럽게 변소에서 어떻게 부처님 생각을 합니까?” 이러거든요. 아, 자기가 변소에 있으니까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아, 저 해가 똥구덩이는 안 비칩니까? 똥구덩이라고 해가 요렇게 돌아서 깨끗한 데로만 가서 해가 비추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과 똑같은 이치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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