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길을 밝혀 주실 부처님
본문
질문
산천초목의 푸르름이 온 산하대지를 생동감 넘치게 하는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얼만 전에 있었던 버지니아 공대에서 발생한 총기 사건이라든지 해외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피랍되는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니 말입니다. 그래도 어김없이 초파일은 다가와서 부처님의 자비광명으로 어두운 저희들의 마음에 밝을 빛을 내려주시는 것 같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연등처럼 저의 마음을 밝혀서 시비하거나 간택하지 않고 부처님의 환희광명세계를 체험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공부해 나가야 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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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여러분이 이렇게 살아도 한세상, 저렇게 살아도 한세상이라면 좀더 우리가 인간의 삶에 대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영원 불생불멸할 수 있는 그런 각오를 하시고, 불심을 좀더 돈독하게 가지시고, 진실하게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내가 진실한 믿음을 가질 때, 부처님 앞에 와서 진심으로 삼 배를 올릴 때 부처님 마음이 내 마음이고 부처님 몸이 내 몸이요 바로 부처님의 그 무한의 능력이 내 능력이기도 할 터인즉, 내가 아프다면 바로 내 지극한 마음속에서 바로 의사가 나올 것이고, 바로 지극한 마음에서 가난을 물리칠 것이고, 지극한 마음속에서 유생 무생(有生無生)이 다 한마음으로 돌아갈 겁니다. 그러니까 병으로 말하자면 내 마음의 그 능력의 빛이 바로 세균의, 보이지 않는 세균의 모든 것을 뿌리칠 수 있는, 즉 말하자면 빛에 의해서 녹아 버릴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생기고, 또 녹아 버리는가 하면 피해서 그것이 다시 몸이 화(化)해서 다른 걸로 창조가 되기도 하니 죽이는 게 죽이는 게 아니고 살리는 게 살리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마음에 달려 있다 이겁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미물의 짐승이라 할지라도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억겁 전년서부터 우리는 이 몸뚱이를 사람의 몸뚱이로만 가져온 게 아닙니다. 뱀의 몸뚱이나 거북의 몸뚱이나 소의 몸뚱이, 어떤 벌레의 몸뚱이, 억겁을 거쳐 오면서 이 몸뚱이 저 몸뚱이로 그 모습을 바꿔 가면서 이렇게 또 인간으로서 성립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누가 내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한데 합쳐서 수천 년 전, 수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거쳐 온 거를 생각할 때에 나 아님이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 모두가 나입니다.
그래서 석존께서 짐승의 뼈다귀나 사람의 뼈다귀나, 여자의 뼈다귀나 남자의 뼈다귀나 어린애의 뼈다귀나 어떠한 뼈다귀를 막론하고 예전에 그 뼈 무더기 있는 데 제자들을 데리고 가서 절을 하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사생자부(四生慈父)이신데 거기에 절을 하나이까?” 하니까 “너희들은 어찌 그렇게 지혜가 없느냐. 억겁 전년서부터 그 몸뚱이가 사람의 몸뚱이로만 가져온 게 아니니라. 저 몸뚱이가 뱀의 몸뚱이다 할지라도, 거북이의 몸뚱이 뼈다귀다 할지라도 그 거북이도 어미가 있었고 자식이 있었고 형제가 있었느니라. 우리도 억겁을 거쳐 올 때 그 모습의 형제가 있었고 부모가 있었느니라. 부모도 고정되게 있지 않고 자식도 고정되게 있지 않고 형제도 고정되게 있지 않느니라.”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우리가 짚단과 같이 한 덩어리로 이렇게 인연이 돼서 인연에 따라서, 자기 마음 쓰는 데에 따라서, 업보에 따라서, 차원에 따라서 한데 질서 있게, 업보를 많이 지은 사람은 많이 지은 사람들끼리 모이고 적게 지은 사람은 적게 지은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그거를 모르겠걸랑은 우리 세상을 잘 보십시오. 금방에 금이 있고 넝마전에 넝마가 있고…. 또 사람들 사는 걸 보십시오. 정치인들은 정치인들대로, 회사원은 회사원대로 지게꾼은 지게꾼대로, 그 외에 한 마디 더 안 해도 여러분이 더 잘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질서를 이렇게 만들어 놔서 질서가 지켜졌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질서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고만 볼 게 아닙니다. 자연의 법칙으로서 차원대로 질서를 이루어 가지고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잘못했다고 누가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억겁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현실을 볼 때, 현실의 ‘참나’를 깨달을 때 비로소 억겁 전년서부터 그 모습을, 수많은 벌레의 모습, 짐승의 모습, 무정물의 모습을 내가 지니고 거쳐 왔다는 거를 여러분께서 잘 아실 겁니다. 그거를 아시게 된다면 아마 자기 생명만 생명으로 알고 남의 생명이라서 우습게 생각을 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어느 한 생명도. 그래야 부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있고, 다른 생명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있고, 너 나 할 것 없이 겸손하게 대할 겁니다. 스님네들에게도 그렇고 말입니다.
그렇게 남의 마음을 헤아릴 줄도 알고 겸손해진다면 아무렇게나 “저 스님은 저렇고 저 스님은 저래.” 하고 말을 해서 싸움을 붙이거나, 또 신도들끼리도 서로 말들을 전달해서 서로 이간질을 시키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예를 들자면 말입니다. 그런데 모두들 그렇질 못해요. 여러분 마음속에 물이 있고 불이 있고 흙이 있고 바람이 있기 때문에 그 마음 쓰는 대로 바람이 일고 불이 일어나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는 대로 우리가 업을 짓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묵언하라!” 예전에 선조들께서 “묵언하라! 모든 잘못된 것은 안으로 돌려라!” 했던 거죠. 아주 괴로운 일이 있으면 ‘주인공, 당신이 일체 만법을 해 나가는 거고 당신께서 나를 끌고 다니는 거고 바로 당신이 운전수며, 나는 차일 수밖에 없으니 당신께서 기름도 넣고 이 몸뚱이도 잘 지도해서 이끌어가 달라.’고 그렇게 하셨던 거죠. 그렇게 하는 마음이 갸륵하고 진실하다면 여러분도 바로 체험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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