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자를 뺏는 도리란?
본문
질문
임제 스님께서 ‘네가 주장자가 없다면 내가 뺏을 것이로되 네 주장자가 있다면 내 주장자를 너에게 줄 것이니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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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지금 내 몸뚱이 속에 수많은 중생들이 들어 있는데 이 중생들이 누구냐 하면 자기입니다. 그렇게 숫자가 많다고 그래서 숫자가 많은 게 아니라, 숫자가 많으면서도 의식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숫자 없는 숫자죠. 그래서 그 하나마저도 없다고 하는 그 도리를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겁니다. 그렇다면 만약에 이 도리를 모른다면 내 중심이 없는 것이고 내 주인을 모른다면 이 껍데기가 빈 집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전에 임제(臨濟) 스님이나 큰스님들이 ‘네 주장자가 있다면 내가 네게 주장자를 줄 것이로되, 네 주장자가 없다면 네 주장자를 뺏을 것이니라.’ 그건 무슨 소리냐 하면 자기가 뺏는다는 문제를 덧붙인 게 아니라 방편으로 그거를 가르치느라고 했습니다. 왜? 모든 생명들이, 즉 말하자면 거기에 주인이 없다면 모두 세균성이나 영계성, 유전성, 업보성이 무조건 하고 거기 들어가서 그냥 막 뒤집어 놓습니다. 웃게끔 만들어 주기도 하고 울게끔 만들어 주기도 하고, 성나게 하기도 하고 모든 일을 그르치게 만들기도 하고, 아프게 만들기도 하고…. 여러 가지 과거에서부터 자기가 지은 대로 나온 거니까 어쩔 수가 없는 거죠.
숙명통(宿命通)이라는 게 바로 모든 것이 입력된 컴퓨터거든요. 컴퓨터에 입력된 대로 나오기 때문에 여러분이 안 받으려야 안 받을 수가 없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그거를 팔자니 운명이니 하고 울고 야단법석들을 하는데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바로 그런 까닭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나온 거를 거기다 맡겨 놓으면 앞의 것이 다 무너질 텐데 왜 거기다 맡겨 놓지 않느냐 이겁니다. 이 고깃덩어리가 ‘나’가 아니라 바로 마음과 그 기관이 작용을 해서, 안에까지 들어가서 과거에 살던 그 의식까지도 다 하나로 뭉쳐져서 그냥 자동적으로, 거기다가 맡겨 놓으면 그냥 자동적으로 앞의 거는 없어집니다. 넣으면 넣는 대로 없어지고 또 넣으면 또 앞의 것이 없어지고 이러기 때문에 항상 그릇이 비어 있는 까닭이죠.
그래서 집이 비면 들어와서 그렇게 하는데 이거를 어떻게 감당해 나가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너를 먼저 알고 나면 둘이 아닌 도리를 아느니라. 둘이 아닌 도리를 알면 너 하나마저도 없을 때 비로소 이 속에 있는 그 의식 자체가 전부 천백억화신으로 화하느니라.’ 내 마음이 그렇다면 이 의식 자체들이 전부 아는 겁니다.
내 의식이 그렇다면, 내가 그런 마음을 쓴다면 그런 마음대로 이 속에서 다 같이 따라 주고, 내 마음이 좋은 마음으로 쓴다면 좋은 대로 따라 줍니다. 여러분이 다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이 좋으면 남한테 말하는 것도 부드럽고 좋고, 내 마음이 신경질이 나고 언짢으면 남한테 괜히 신경질을 내게 되고 말도 올바로 나가지 않습니다. 부드럽지가 않아요. 그러니까 나로부터 먼저, 내가 있기 때문에 우주 천하가 있고 모든 게 있는 겁니다. 부처님 불(佛) 자라는 것도 생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나로부터 그렇게 내 주인을 완성해야만이 내가 주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집이 아주 튼튼하고 광이 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십이상(三十二相)이 구족하다는 얘기죠. 그래서 이것이 구족함으로써 행하고 나가는 것이 모두 전부 중용으로서 부드럽고 아주 평등하고 그리고 모든 걸 안아서 응해 줄 수 있는 그런 아량과 지혜 즉, 해탈지견(解脫知見)으로서 그렇게 쓸 수 있다 이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좀 더 넓게 생각을 한다면, 사회도 반쪽만 가지고 운영하려니까 힘들죠. 즉 말하자면 육근(六根)을 가지고 그냥 하려니까 안 되니까 육근으로 들어오는 그 모든 것을 놓으세요. 맡겨 놓으셔야 되는데 바깥에서 들어오는 경계를 안에다 들여보낼 사이도 없이 바깥으로 그냥그냥 모두 내놓는다면 그게 마(魔)가 되는 거죠. 말 한마디가 꼬리에 꼬리를 붙이고 말입니다. 일하는 게 전부 새끼 꼬이듯 꼬이고 말입니다. 하나서부터 열까지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그렇게 나가니까 보이는 구석이 전부 걸리는 겁니다.
그것을 안으로 놓으랬는데 바깥으로 그냥 전부 그러니까 어떻게 육식(六識) 자체로 들어서 그 모든 것을 십팔계에, 해탈로 들어갈 수 있는, 열반으로 들어가는 그런 게 되겠습니까? 그러니 그렇게 우리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치가 있죠.
그래서 나부터 알아서 내 주인이 완벽하다면 전자의 조사들도 네가 크게 쓸 때는 내 주장자로 한데 모아 주고, 작게 쓸 때는 네 주장자로 그냥 쓰고,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아주 더 크게 쓸 것 같으면 우주와 인간 근본의 마음과 직결이 돼 있고 이 세상의 모든 살림살이는 가설이 돼 있는 겁니다. 그래서 위도 하나, 아래의 모든 가설이 돼 있는 것도 근본은 하나입니다, 여기. 위로도 하나 아래로도 하나. 그러니 이게 중도(中道)입니다. 중심, 중도. 중심은 우리가 보통 말하는 거지만 ‘중도’ 이런다면 다 포함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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