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과 고통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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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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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과 고통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본문

질문

스님, 저는 지난 제 삶의 기억 때문에 무척이나 괴롭습니다. 지난 기억만 떠올리면 마음이 아파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너무나도 잘못 살아온 것 같기만 합니다. 항상 인간관계나 여러 가지 것들 때문에 괴로움이 잘 날이 없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근심 고통을 만날 때는 어떻게 극복해야 합니까? 그리고 이 세상에 무엇을 의지하고 무슨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인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탤런트가 영화를 하다가 영화가 막이 내리면 그뿐이듯이 인생도 그러합니다. 그러니까 다만 오직 자기 중심, 심봉처를 의지해라, 의지하고 돌아가라 합니다. 바람에 프로펠러가 돌아가듯 인생살이가 돌아가니까 가운데 중심, 그걸 쥐고선 바퀴가 돌아가듯이 심봉을 쥐고서, 심봉은 끄떡도 안 하고 힘을 배출하기 때문에 그 힘을 바로 잡고서 인생이 돌아가는 거죠.

그런데 거기에선 이유가 붙지 않습니다. 잘하고 못하고, 못나고 잘나고, 여자고 남자고, 낮고 높고, 잘살고 못살고 이걸 떠나서, 오직 내 심봉을 딱 쥐고서 그대로 흘러가듯이 돌아갑니다. 이 심봉을 의지한다면 바퀴가 이탈되지 않으니깐요.

그런데 거기에다가만 그렇게, 심중을 굳히고 의지할 수 있는 데는 여기밖에 없다 하고 의지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의지하는 마음보다도 욕심 찬 마음, 탐심, 치심이 더 성하니 될 법이나 합니까. 또 바깥으로 간섭하는 거는 뭐 이루 말할 수도 없죠. 저기 똥 굴러가는 거를 봐도 저 똥이 어디로 굴러가느냐고 또 야단이에요. 허허 참 내! 아이, 어디로 굴러가든지 무슨 상관이에요? 아, 새들도 뭐 먹을 거를 뿌려 주면요, 사람이 안 다니는 데부터 먹어요. 그리고 사람이 다니는 데는 좀 주춤하고 물러서 있다가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면 와서 다 먹어요. 그렇게 영묘한데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까?

아리송하시죠? 이렇게 말씀을 해 드려도 아리송하시죠? 한 가질 보면 열 가질 안다고, 우리가 현재의 살림살이를 그렇게 하고 사시면서도 왜 아리송합니까? 고정된 게 하나도 없이 그냥 화해서 찰나찰나 화해서 돌아가는 거를 느끼고 알고 하면서 왜 그게 아리송하냐 이겁니다. 그 생각 하나만 ‘아, 이렇구나! 이러니까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하고 탁 놓는다면 그냥 그냥 그대로입니다. 찰나입니다, 그냥!

부처님이 나를 깨치게 해서 올려 주는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이 여러분한테 행복을 갖다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빼앗아 가는 것도 없습니다. 내가 업이 많아서 누가 빼앗아 가는 것도 없습니다. 빼앗아 갈 사이가 있어야죠. 그리고 갖다 줄 사이도 없단 말입니다. 자기가 그대로 그냥 그냥 하는 대로 날아가기 때문입니다. 보는 대로 날아가고, 하는 대로 날아가고, 듣는 대로 날아가고 도무지 내가 했다 내가 안 했다 할 수가 없게끔 되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께서 어려움이 크게 나한테 벌어졌다, 병고가 생겼다, 뭐 어두움이 다가왔다 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살아오던 관습과 집착과 욕심에 의해서 착을 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는 묻지 마라. 미래도 생각지 마라. 오늘도 공했다. 공했으니까 찰나찰나 가 버리는 것에 착을 두지 말라.’ 그랬는데 그것에 착을 가지고선 온통 작년에는 어땠느니 올해는 어땠느니 하고 말입니다. 물론 얘기야 하시겠지만 함이 없이 얘기하고, 속에다가 착을 두고 욕심 두고 그럭하지 말고, 그대로 평범하게 ‘아, 작년에는 이렇게 이렇게 했으니까, 올해는 이렇게 이렇게 해 나가야 되지 않겠어?’ 하고 말을 여여하게 그대로 해라 이겁니다. 꼭 하나 문제가 되는 게 그 생각입니다. 업도 붙을 자리가 없고 고도 붙을 자리가 없고, 병도 붙을 자리가 없고 아무것도 붙을 자리가 없는데 말입니다.

그냥 이 심봉을 붙들고 의지하라고 그랬더니 그 생각으로 붙잡고는, 심봉은 주인공이라는 이름만 부르고 정작 붙드는 거는 그 고를 붙드는 거예요. ‘심봉을 의지하고선 바퀴는 돌아가라. 여여하게 돌아가라.’ 그랬더니 심봉은 이름만 부르고, 고를 붙들고 그 주인공의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그걸 놓고 불러야 되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의지하고 부르는 그것도 말일 뿐이죠. 생각으로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지극하면, 일거수일투족 거기다 의지하는 마음이 지극하면 감사함도 거기 있고 즐거움도 거기 있고, 같이 붙들고 울 수도 있고, 뭐 매사 거를 다 할 수 있는 것이 그 보배입니다, 보배!

그러니 이 심봉을 반야줄이라고도 할 수 있고 자기 주처라고도 할 수 있고, 자아라고도 할 수 있고 불성이라고도 할 수 있고, 자부처라고도 할 수 있고 여러 가지로 이름이 다양합니다. 다만 그 의지처만 의지하면서 오직 내가 함이 없이 하면서 돌아간다면 여러분이 한 찰나에 그냥 그대로 그대로 자연스럽게 여여하게 사는 겁니다. 여여한 삶의 보람을 갖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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