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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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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에 대해서

본문

질문

초파일이 되어서 그런지 젊은 법우들이 절에 나와서 열심히 참여하고 공부해 나가는 것을 보면 너무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와 보살은 자주 나와서 봉사도 하고 공부도 해 나가는데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을 하고 이끌어 줘야 이 좋은 공부를 배우게 해 줄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스님, 가르침 주십시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우리는 밖으로 부처님의 탄생을 기리는 일만이 아니라, 우리의 육을 탄생시켜 준 부모의 은혜와 법의 부모의 은혜도 둘이 아니게 갚기 위해서 항상 각자 마음에다 관(觀)하고 가야 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또 육의 부모들도 자식과 둘이 아닙니다. 그걸 볼 때, 자신의 생일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낳아 주시고, 또 일러서 가르쳐 주신 그 뜻을 기리면서,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우리가 촛불 하나라도 켜 드리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로따로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법의 부모도 육의 부모도 둘이 아니게 한마음으로, 은혜를 갚기 위해서 지극한 마음으로 관하면서 촛불을 켜신다면 그 촛불이 바깥으로는 형식이 되지만, 형식만이 아니라 정성이 되고 안으로는 진짜 촛불을 켜는 것이 됩니다. 마음의 촛불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사월초파일만 그렇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평상시에도 항상 그렇게 해야 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팔상성도(八相成道)라고 하는 그 자체는 도솔내의상, 비람강생상, 사문유관상, 유성출가상, 설산수도상, 수하항마상, 녹원전법상, 쌍림열반상 이렇게 여덟으로 나누어집니다. 이렇게 여덟 가지로써 부처님께서 수행하신 모든 과정과 그 시대에 간곡하게 가르쳐 주신 그 뜻을 기리면서 우리는 수행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걸 ‘사무 사유(四無四有)가 둘 아니게 일대사의 인연을 맺으셨다’고 한다면 팔상성도의 그 여덟 가지 문제를 다 함축해서 한마디로써 충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그 과정을 거치는 자체를 뼈 한 무더기로 비유해서 가르쳐 주셨다는 것입니다.

항상 들어서 아시다시피, 사생자부(四生慈父)라고 하는 그 뜻도 역시, 태로 낳고 알로 낳고 화(化)해서 낳고 질척한 데서 낳고 하는 사생들을 모두 자기 아님이 없이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모습 아닌 게 없이 했고, 자기 아픔 아닌 게 없이 했고, 자기와 더불어 같이 한도량에 있는 것을 제시했고, 또 모든 것을 둘 아니게 흡수해서 인연을 지으셨으니 내 자식 아님이 없고 내 부모 아님이 없고 내 형제 아님이 없는 겁니다. 모두가 수억겁 광년을 거치면서, 불가에선 나유타 겁이라고 합니다마는, 나는 광년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거치면서 우리가 지금 이 생에서만 사는 게 아니라, 미생물에서부터 부모가 돼 보기도 하고 자식이 돼 보기도 하고 형제가 돼 보기도 하고, 그렇게 나오면서 자기 근본으로 인하여 진화를 해서 바로 형성되고 또 진화되고 형성되고 해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 업적이 얼마나 컸는지 헤아릴 수가 없다고 봅니다. 그거를 볼 때, 우리 마음은 체가 없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이 공기 바깥을 벗어날 수도 있고 바로 수억겁 광년을 거친 그 과거로 돌아갈 수도 있고, 미래로 돌아갈 수도 있고, 현재 또 찰나찰나 화해서 돌아갈 수가 있는 것이 바로 인생살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공부를 함으로써 바로 그 뜻을 잘 파악해서, 바깥으로만 탄신을 기리고 팔상성도를 이름으로 기릴 게 아니라, 그 마음과 내 마음이 항상 직결돼 있다는 사실을 믿고 행한다면 그것이 곧 실천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팔상성도를, 부처님께서 태어나시고 열반하시고 그런 과정에 대한 것만 달달달달 외우고 알면서 바깥으로 끄달리면 아니 되겠죠.

그건 왜냐하면 부처님의 마음은 내 마음과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라고 부처님이 말씀하셨죠. “너부터 알아야 내 마음도 알아서 둘이 아니게 되느니라. 그래서 일체 사생이 너와 더불어 둘이 아니니라.” 했단 말입니다. 그러한 고로 이것은 내 마음의 부처님을 항상 관하며 ‘주인공’이라고 하면 벌써 둘이 아니게 돌아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육의 부모도 법의 부모도 일체 가정의 모든 분들도, 한 식구 한 형제라 할지라도 앞에 닥치는 대로 걸리는 대로 거기다 놓고 합류시켜라. 하나로 만들어라. 동일한 한마음으로 결부를 시켜라. 그렇게 된다면 걸림이 없어서 어떠한 난국도 대치하고 나갈 수 있다.’ 하는 겁니다.

그래서 불가에서 이렇게 말하죠. “부(父)와 자(子)가 상봉해야만이 저승의 공부를 한다. 보이지 않는 정신계의 공부를 한다.” 하고요. 부의 손을 잡아야만 자는 무(無)의 세계에서 공부를 하거든요. 그래서 상봉치 못하면 아니 되는 거죠. 법의 부모란 나를 형성시켰고 또 나를 지금까지 이끌어 온 자기의 근본 뿌리인 불성입니다. 불성 자체가 바로 자기의 원래, 법의 부니까요. 육신을 낳아 준 이는 육신의 부모고요. 그것은 내 근본의 법의 부모로부터 그 육의 부모를 빌려서 낳은 거지 내 영원한 그 자체의 불성이 아니었더라면 그 부모도 정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사월초파일이 돼서 촛불을 켜시더라도 육의 부모와 법의 부모가 둘 아니게 켜야 합니다. 내 주인공이 법의 부모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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