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를 하지 않을 것 같아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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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를 하지 않을 것 같아

본문

질문

요즘 Cable TV를 보면 엑소시스트라고 하는 말이 유행입니다. 영가를 보고 영가의 말을 전해 주며 떠나지 못한 영혼을 천도까지 시켜 주어서 마치 기존의 종교에서는 해내지 못하는 일들을 해내는 능력자처럼 묘사됩니다. 우리가 이 마음의 길을 놓치지 않고 진정 끝까지 걸어갈 수 있으려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실질적으로 체험이 되고 느껴질 수 있는 그런 공부의 방편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 그런 고통과 경계가 왔을때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을 택하지 자기를 밝히는 이 공부를 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죠. 은사 스님이 맏형과 막내, 이렇게 제자 둘을 두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신도가 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스님, 우리 아들 두 형제가 일 주일 장이 설 때마다 보따리 짐을 해 가지고 물건을 사 가지고 물건을 팔러 나갔는데 꿈을 꾸니까 불에 타서 죽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아들 좀 살려 주십시오.” 하니까 스님이 있다 하시는 소리가 “그건 자기가 생각하기에 달렸지.” 이렇게 말을 해 버리고 말았다 이겁니다. 맏제자가 생각을 하니까 ‘저 스님이 저렇게 말씀을 하셨으니 미거한 저 중생은 어떡하면 좋은가. 근기에 따라서 말씀을 해 주셔야 되는데, 저거는 아주 대도의 근기가 충만한 사람이라야만이 저 소리를 알아들을 테니 저거를 어떡하면 좋은가.’ 하고 근심을 했습니다.

그랬는데 그 보살이 또 와서 맏형 스님한테 또 청을 했습니다. “스님이 말씀하신 걸 도저히 모르겠으니 스님, 어떻게 해야만 되겠습니까?” 하고 울면서 빌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스님이 있다 하는 소리가 ‘당신이 밤에 물을 동이 동이 떠다 놓고 울타리를 돌아가면서 밤새도록 닭이 울 때까지 솔 이파리로 물을 축이라’ 그랬습니다. 예전에는 울타리를 할 때에 솔 이파리나 이런 걸로다가 전부 다 울타리를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것을 또 못 믿어요. 못 믿으니깐 막내 스님한테 가서 또 물었다 이겁니다. “밤새도록 이렇게 하면 우리 아들이 불에 타 죽지를 않고 산다고 하셨는데도 저희 마음에는 아주 그냥 이렇게 안타깝고 죽겠습니다.” 하니 막내 스님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아, 죽으면 죽고 살면 살지, 뭐가 그렇게 원통해서 그래?” 하면서 반말로 쭉 해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상에다 잘 차려 놓고 제사를 지내라고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세 스님이 말씀하신 것이 전부 다릅니까, 전부 똑같습니까? 대답들 좀 해 보십시오.

그렇겠죠, 근기에 따라서니까. 일러 줘도 모르는 사람은 어떡합니까, 그거? 아까 그 세 스님이 말씀하신 거, 그걸 따로따로 생각하지 마시고 한번 여러분으로 생각하시고 들으세요. 근기에 따라서 그렇게 하면 알아듣는 사람도 있고, 또 근기에 따라서 그렇게 일러 줬는데도 그것도 모자라서 믿어지질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 상을 차려서 시식을 지내는 사람하고 그렇게 물을 뿌리는 거하고, 그것도 죽고 사는 건 생각에 따라서 있다 했으면 그게 퍼뜩퍼뜩 알아져야 하는데 말입니다. 도는 벽도 없고 문도 없어요.

항상 여러분 앞에 ‘마음은 체가 없어서….’ 이렇게 얘기를 하죠. ‘마음은 체가 없어서….’ 하는 말이 그게 뜻이 얼마나 깊고 여러분한테 이익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 말 자체의 뜻을 한데다 떨어트린다면 여러분은 한생각에 이루지를 못하는 겁니다. 이 도라는 것이 이루는 것만 도가 아니라 능력을 기르면 내가 용(用)을 하는 건 그냥 그대로 스스로 부수적으로 오는 겁니다. 용을 일부러 배우려고 애쓸 필요도 없어요. 그대로 생각나면 움죽거려지는 것이 용인데 뭐 그렇게 용을 따로 배우는 겁니까?

그래서 그분은 시식을 지내라고 하니까 그 가운데 있는 분이 가난하긴 하고 참 너무나 안타까워서 몰래 불렀습니다. 몰래 불러서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시오. 그러면 아들이 살 테니 내가 시키는 대로 이렇게 이렇게 하시오.” 하니까 그렇게 해서 이제 밤새도록 소나무를 뿌렸단 말입니다. 그런데 두 아들이 옷감을 사 가지고 가서 팔 양으로 여관엘 들었는데, 지금으로 치면 주막에 들렀는데, 주막에 불이 난 겁니다. 피곤하니깐 그냥 잠이 들어서 자는데 “아무개야, 아무개야.” 부르면서 그냥 물을 끼얹으니깐 펄떡 일어났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벌써 불이 그냥 뺑 돌았어. 그래서 보따릴 들고 그냥 막 튀어나와 가지고 살았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았으면 잘했다고 해야 할 텐데 은사 스님이 불러다가 얼마나 패 줬는지 몰라요, 은사 스님이.

“이놈아!” 그거를 왜 가르쳐 줬느냐 이거죠. 네가 그렇게 가르쳐 줬기 때문에 앞으로 장차 세세생생에 그러한 짓만 하고선, 네가 잘못 가르쳐서 그걸로만 갈 테니, 자기 마음대로 자유자재를 할 수 있게끔 길을 인도를 해야 할 텐데 지금 만약에 그 아들이 죽는다 하더라도 너는 잘못 가르쳤다 이겁니다. 그래 가지고는 아, 이건 방망이로다가 그저 막 패는 겁니다. 그래서 디굴디굴 구르다가 이런 걸 생각을 했습니다. “옳지 옳지, 알았다. 스님이 방망이로 때리는 게 아니라 아이구, 이런 거를 가르쳐주시는구나.” 하고선 알았다고 하늘을 보고 웃고 그냥 막 좋아했습니다. 그러니깐 그 은사 스님이 있다 하는 소리가 “이제는 알았다니 됐다.” 그러는데 동생 하나는 “흥, 둘이 잘 노는군.” 이러고선, 그냥 자기는 생각도 안 하고 그런다고 그냥 픽 돌아서서 훌쩍 가거든요. 가니까 은사 스님이 또 하는 소리가 “야, 이놈아 어디로 가느냐? 지금 마당이 더러워서 죽겠는데 마당을 쓸지 않고 어디로 가느냐, 이놈.” 하고 악을 쓰니까 “쓸 거예요!” 그러고선 그냥 가거든요.

그런데 그 스님이 어떤 생각을 하고 그렇게 좋아 했을까요? 그거를 잘못했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몽둥이로 막 팼는데, 막 찢기고 그러면서 내리구르다가 “아이구, 알았다.” 고 그랬는데 뭐를 알았다고 그랬을까요. 그렇게 뭘 알았다고 했을까 하는 거를 여러분이 좀 생각해 보는 그런 여유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사람이 이론으로만 배워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인간으로서 자유스럽게 첨단을 넘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마음공부 하시는 데에 학술적으로나 경을 봐서는 이게 옳고 이게 그르고 아주 거론이 많이 돌아갑니다. 그러나 이 선의 도리는, 선법은 이런 거고 저런 거고 포함해서 돌아가면서도 ‘무(無)’ 예요. 없고 없고 또 없어요. 그 없고 없고 또 없는 데서 무엇을 있다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힌트를 주기를 공했다, 찰나생활이다, 한 철이다 하는 거죠. 여러분은 마음 하나 잘 먹으면 한생각에 뛰어넘어지고, 마음 하나 잘못 쓰면 이리로 갔다가 저리로 갔다가 이렇게 가죠. 나라는 조건을 버린다면 천야만야한 낭떠러지도 딛을 수 있는 겁니다. 믿고 딛을 수 있어요. 그 아래는 송장의 뼈다귀가, 해골이 수두룩하게 있어도, 떨어져서 죽은 송장들이, 해골바가지가 많이 있다 하더라도 진짜로 믿는다면 내 몸뚱이가 산산조각이 난다 하더라도 그 발자욱을 떼어 놓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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