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게 살고 싶어요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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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게 살고 싶어요

본문

질문

선법가 중에 푸르게 살라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진정으로 사계절 없는 봄 속에서 내 마음의 푸르름을 잃지 않고 푸르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듯 올라옵니다. 그렇지만 일상의 생활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나는 왜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조상의 덕도 없어서 이 모양 이 꼴로밖에 살지 못하는가 하는 절망이 밀려옵니다. 스님, 이런 마음이 들 때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우리가 종교라는 것도 종교라는 이름 이전에 생활이 종교인 것입니다. 우리 생활이 종교니까 그대로 생활 속에서 지혜를 넓히려면, 아주 못생긴 사람이든지 얕은 사람이든지 여자든지 남자든지, 하여간에 애라도 똑바른 말을 하면 귀담아 듣고 그것을 흘리지 말라 하는 거죠. 사람만 스승이 아니라 일체 만물만생이 스승 아닌 게 하나도 없습니다. 보십시오. 저 나뭇잎들도 봄이 되면 피어났다가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들어서 떨어집니다.
 
그래도 나무는 겨울 내내 하얀 눈과 비를 다 맞고 그 비바람에 조금도 끄떡없이 인내롭게 봄을 기다리고 있으니 그것이 마음을 보는 듯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참는 게 있고 기다리는 게 있고 여유가 있어야 빛을 볼 수 있고 화목을 가져올 수 있고 복을 받을 수가 있지, 그 인내로움이 없고 불끈불끈 그냥 화나는 대로 해 버린다면 그거는 포근한 화목을 가져올 수도 없거니와 재물을 늘릴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재물도 생각이 있거든요. 들어오려고 까딱까딱하다가 말입니다, 그 집이 시끄러우면 ‘에이! 이 집에 들어가 봤자 이리 찢기고 저리 찢기고 그러니까 귀찮다!’ 그러곤 딴 데로 가요. 이 만물이 다 그러해서 스승이 아닌 게 없습니다. 나무를 봐도 스승이요, 풀 한 포기를 봐도 스승이요, 물 흘러가는 걸 봐도 스승이요, 집들을 올망졸망 짓고 사는 것도 스승이요, 비가 오는 것도 스승이요, 비가 안 오는 것도 스승이요, 모두가 스승 아닌 게 하나도 없으니 그걸 보고 모두 배우라고 하는 게 팔만대장경 아닙니까? 책에 쓰여 있는 것만 팔만대장경이 아니라 우리 눈으로 지금 듣고 보고 행하고, 공생(共生)·공용(共用)·공체(共體)·공식화(共食化) 하고 돌아가는 이 자체 모두가 스승이자 팔만대장경입니다.

그러니 보십시오. 망상이 일어난다고 해서 망상을 칼로 자르듯이 끊는다면 망상이 끊어집니까? 그것을 물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말없이! ‘흘러가는 물을 너희들이 아무리 잘라 봐라, 잘라지나!’ 이러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것이 공생으로서 돌아간다는 그 자체를 알고,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돌아간다는 걸 알면 망상이라고 끊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얘깁니다.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악업 선업이 인연이 돼서 내 몸뚱이 속에 있으니, 그것을 불가에선 숙명통이라고 합니다마는 ‘숙명통’ 하면 그게 다섯 가지가 한데 합쳐진 컴퓨터입니다.

컴퓨터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인간에게는 자동적인 컴퓨터가 다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그 컴퓨터에 입력이 된 대로 지금 현실에 자꾸 나오는 것을 망상이라고 한다면, 그 망상을 끊는다기보다는 그냥 그 나오는 데다 되입력을 시키면 앞서 입력된 거는 없어지지 않느냐, 이게 하나로 돌아가지 않느냐 이겁니다.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안 없어지는 것도 아닌, 즉 말하자면 일어났다가 꺼지는 거죠. 그런데 이거는 끊으려고 애쓰고 잠을 몰아내려고 애쓰니, 잠이 몰아내지는 것이며 망상이 끊어지는 겁니까? 그래서 물은 나같이 살라 하며 저렇게 흘러가고 있지 않습니까? 산천초목은 초목대로 나같이 살라 하고 저렇게 푸르게 하고 있고 말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해야만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가 하면, 항상 얘기하지만 어떠한 애고나 병고, 즉 말하자면 세균성 업보성 영계성 인과성 유전성 이 자체가 전부 마음으로 해서 오는 거다 이겁니다. 이처럼 전자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 그렇게 오는 모든 거를 재료로 알고 몽땅몽땅 갖다가 집어넣어 입력을 한다면 그것들을 녹일 수 있습니다. ‘너만이 해결할 수 있어!’ 하고 거기다 놓고 또 ‘너만이 낫게 할 수 있어!’ 그러고 거기다 놓는 겁니다.

나무뿌리가 말입니다, 제 나무의 뿌리가 제 나무를 돕지, 딴 나무의 뿌리가 도와주는 게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기복으로 만날 딴 뿌리에다가 달라고 빌어도 그것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말을 하고 싶어요. 제 뿌리에다가 “나, 지금 수분이 적어.” 한다면 이 뿌리는 수분을 흡수해서 올리지만, 딴 뿌리에다가 “나, 목이 말라.” 한다고 그게 목을 축이게 해 줍니까? 그것과 똑같은 겁니다. 그러니까 ‘상대에게 빌지 말라. 상대에게 기도하지 말라. 궁색하게 노예가 되지 말라. 지금 노예 노릇을 하면 세세생생에 노예가 된다. 내 뿌리에서 나온 싹이니까 내 뿌리만이 이 싹이 병통이 나도 고칠 수가 있다.’는 거죠. 이 인간의 뿌리는 보이지 않는 뿌리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인간의 뿌리를 못 보듯이 나무도 흙에 덮여서 자기 뿌리를 못 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뭐가 덮여서 못 보느냐? 무명이 덮여서 못 본다 이겁니다.

여러분이 이 한마음 도리를 공부하면서 체험도 하고 감응이 되고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짐작이 가고, 이렇게 되는 것이 물리가 터지는 거고 지혜가 생기는 겁니다. 모두가 나로부터입니다. 내가 싹이라면 뿌리가 있는데 그 싹이 뿌리를 믿지 어디를 믿습니까? 네? 딴 나무를 믿고 딴 이름을 믿고 딴 형상을 믿는데 에너지가 자기 나무로 가겠습니까? 그건 공덕이 하나도 없어요. 제 뿌리에서만이 제 나무를 푸르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제 뿌리에서만이 너그럽고 지혜롭게 이끌어 가는 거고 물리가 터지게도 하고 깨치게도 하는 것입니다. 뿌리가 모든 에너지를, 즉 말하자면 철분 황분 흙의 지분 등 모든 것을 위로 올려보내고, 나무는 공기력과 태양력을 흡수해서 또 내려보내고, 인간의 정맥과 동맥이 돌아가듯 이렇게 해서 자기 나무를 푸르게 살게 하고 깨치게 하고, 문 없는 문을 넘게 하고 빗장 없는 빗장을 쥐게 하고, 이렇게 할 수 있는 도리가 있거늘 내가 항상 바깥으로 찾는다면 아무 공덕도 없고 이득도 없고, 만날 끄달리다가 이 차안 속에서, 즉 말하자면 어항 속에서 고기가 바깥으로 못 나가듯 그렇게 피안의 세계로 넘어갈 수가 없다는 얘기죠.

차안의 세계와 피안의 세계가 백지장 하나 사이도 안 되는 것을, 한 찰나도 안 되는 것을 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여러분의 관습 때문입니다. 먹어 보지도 못했고 맛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 몸이 수박이라면 과감히 그냥 동강을 내서 맛을 보고 씨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고, 그 씨를 되심어서 고다음 해에 수박은 되남고 되남고 해서 영원한 진리의 수박이라는 걸 알게끔 돼야 되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자기의 근본 뿌리를 믿고 거기에다 모든 걸 맡겨 놓는다면 언제나 푸르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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