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주인으로서 자유롭게 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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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예전에 아틀란티스문명이란 것이 있었는데 인간들의 욕심에 의해서 물질로만 치달았다가 모두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는 얘기를 책으로 본 적이 있습니다. 근데 요즘 세상이 바로 그와 같은 때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해안도시와 섬들이 차츰차츰 사라지고 있다는 뉴스가 빈번하게 나오니 말입니다. 스님, 어떠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이 지구의 주인으로서 걸림 없이 자유롭게 살려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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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앞으로 우리가, 예를 들어서 산과 들로 배를 타고 다녀야 하고, 물속으로 수레 마차를 타고 다녀야 할 지경에 도달할는지도 모르죠. 우리가 지금 이 땅 속에서 파먹을 걸 다 파먹고, 곶감꼬치처럼 쌓아 놓은 거를 다 빼먹고 나면 나중에 먹고 살 게 없을 때 어떡해야 할까요? 하기야 뒤집어서 물속이 만약에 산이 되고 들이 된다면 또 파먹을 게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마음으로부터 만 가지 법을 내놓을 수도 있지만 만 가지 법을 들일 수도 있고, 둘째 내가 만 가지의 모습을 할 수도 있고 만 가지의 모습을 거둘 수도 있고, 또 셋째 내가 만 가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그 만 가지 사람이 내가 될 수도 있고, 이러한 뜻을 우리가 알지 않으면 안 되리만큼 지금 시대가 빠르게 치닫고 있습니다.
알고 본다면 우리나라는 한 시루의 콩나물에 대가리 하나 낀 것밖에는 안 되는 나라, 지구 안에서도 그런데 대천세계를 한데 합친다면 그게 먼지 알갱이만이나 할까요. 그렇게 보잘것없는 먼지 알갱이 같은 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면서 서로가 옳지 않다고 싸움을 하고 화목지 못하고 이런다면 우리가 지금 공부한다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사대 오온이 다 공(空)해서 소천세계 중천세계 대천세계가 있다 한다면, 바로 우리 이 지구의 문제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보는 대로 혹성들, 은하계, 태양계도 거기대로 문제가 있죠.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태양계도 수억 개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혹성들이 이 오온에 가득 차 있습니다.
또 말하고 지나가면 벌써 백 년이 흘렀다는 둥, 십 년이 흘렀다는 둥, 삼 년이 흘렀다는 둥 합니다. 그것은 왜 그런가? 요렇게 말하고 돌아서면 벌써 일 년이 지납니다. 이것을 우리는 자세히 알아야 됩니다. 똑똑히 따지고 보면 일 년 반이 지난다고 봅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 돌아서면 말입니다. 그렇게 시공이 없이 빠른 그 진리 속에서 우리는 지금 허덕거리고 일일이 걸리고 사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다가 우리 은하계를 따지고 보면 우리는 지금 은하계의 별성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별 속에 별이 있습니다. 별에서 별을 낳듯이 말입니다. 우리 인간의 혹성이, 혹성 안에 별이, 우리는 혹성이면서도 별입니다. 별이면서도 그 속에 지금 운행을 하고 있는 그 생명체들이 너무도 질서정연하게 동맥 정맥을 오르고 내리는 반면에, 모든 일체 생명들은 자기 부서를 맡아 가지고 그렇게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은하계도 조금도 틈이 없이 운행을 잘하고 있고, 혹성 이 지구 자체도 그렇고, 모든 것이 운행을 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구가 어디로 돌아가는지 우리는 지금 볼 수가 없습니다. 지금 어디 가서 있는지, 지구가 어디로 돌아서 어떻게 가 있는지도 모르고, 그대로 그날이 그날인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좀더 상세히 말하자면 그 많은 혹성 중에, 그 많은 별성 중에, 그 많은 태양계 중에, 우리 인간이 마음 자체를 발견한다면 대우주 대천세계의 섭리를 한꺼번에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마음 속에, 티끌 속에 있듯이. 마음으로서, ‘만법’ 하면 대천세계 중천세계 소천세계까지 다 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항상 모르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알고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소릴 하는 것은 우리들이 좌천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차원이 낮아서 눈도 멀고 귀도 뜨지 못했다면 모습을 바꿔서 짐승 속에 들어가서 짐승 모습을 타고 날 수도 있으니 하천으로 떨어지는 것이고, 그 모습을 타고 났으니 그 모습의 노릇을 해야 될 거 아닙니까? 여자는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의 행동을 하고, 남자는 남자기 때문에 남자의 행동을 하듯이 돼지로 태어났다면 돼지의 행을 해야 하겠으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좌천보다는 승천이 된다면 마음의 세계로 우리가 등장할 수 있는 거죠.
우리가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은, 마음의 세계에서 그 모두를 보고 듣고, 숙명을 알고, 타심을 알고, 천안을 알고, 천이를 알고, 신족을 알고 법바퀴를 굴려서 이 세상에 공덕이 되도록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누구나가 보면 볼수록 광명이 비치고 전력 에너지가 다 그 사람의 능력을 또 이끌어 주고 할 수 있는 거죠, 모든 것을. 만약에 그런 능력이 없이 말로만, 학술적으로만 똑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말을 하더라도 주인공 자체로서 둘이 아니게끔 해야죠. 그래야만 말을 해도 한 사이 없이 하는 게 됩니다. 한 사이가 없다 하는 것은 주인공 자체는 다 똑같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많지만 주인공은 다 똑같아서 한데 합쳐서 지금 이렇게 말을 해도 두드러지게 ‘내가 말을 했다’ 이럴 수가 없습니다. 왜? 여러분하고 다 같은 한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이라는 것은 묘법의 불가사의하고 신비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옛날 얘기처럼 듣지 마시고 “과거는 이렇게 지나갔으니깐 그만이지. 꿈이나 같아.” 이러지 마십시오. 과거도 오늘이고 미래도 오늘인 것입니다. 오늘에 우리가 해 놓은 것이 영원한 오늘에 다가온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을 하시렵니까? 여러분은 늙어서 몸 벗으면 그만이지 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자기는 그 모습을 바꿔서 또 나오니깐 말입니다. 그러니깐 영원히 살아야 하는 거죠. 그러니 늙었다 젊었다 하는 것은, 사람이 늙는 것은 익어 가는 걸 말합니다. 사람이 늙어 가면서, 젊어서부터 늙어질 때까지 그 경험과 체험과, 그 사람이 삶의 모든 것을 익히고 늙어질 때에, 그것은 바로 벼이삭이 다 익어서 고개가 숙여지듯이 다 익은 걸 말합니다.
살면서 어떠한 게 불편했고, 어떠한 게 좋고 싫고 이런 생각으로 살다 보면 자기가 모습을 바꿔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대로 꼭 가지고 나옵니다. 짐승들도, 자기가 어떤 게 부족하면 꼭 다리를 길게 하든지 짧게 하든지 꼭 그렇게 해 가지고 나오니깐요. 그런데 한 가지 뭐가 중요하냐 하면, 사람이 짧게 하고 길게 하고 간에 사람의 씨는 사람을 낳는다.
그런데 그 사람의 씨로 사람을 낳는 것이 얼마 동안 가다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올 수가 없는 때가 있습니다. 또 새가 알을 낳다가 말입니다, 새가 알을 낳고 알이 새가 되고 이렇게 쳇바퀴 돌듯 하다가 천 년 만에 그 새의 모습을 바꾼다. 오백 년 만에도 바꿀 수 있고 삼 년 만에도 바꿀 수 있다. 이거는 자기 차원대로에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눈이 뜨이고 귀가 뜨이고, 다섯 가지의 그 눈을 다 떠서 수레바퀴 굴리듯 다 굴릴 수 있어야, 바로 마음으로부터 골수로 인해서 그것을 굴리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 자유인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힘을 키워 나가야 하리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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