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면 인과응보를 면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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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인과응보라는 게 있어서 꼭 지은 대로 받는다는데 기도를 하면 인과응보를 면할 수도 있는 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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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나는 항상 그럽니다. 다른 이름을 믿고 빌고 기도하고, 또는 형상을 믿고 기도하고 그러지 말고 어느 법당엘 가든지, 강당엘 가든지 형상은 네 형상과 똑같이 둘 아니게 봐라. 그 마음이 둘 아니다. 내 형상과 둘 아니고 마음도 둘 아니고 법 또한 둘 아니다. 그러니 둥글게, 내 마음과 모든 걸 한데 합쳐서 일 배를 올리더라도 둥글게 일 배를 지극하게 올리고, 나올 때 다시 주인공에다 맡기고 나오너라. 우리가 주인공이라고 말하는 것은, 내 몸뚱이 속에도 헤아릴 수 없는 생명들이 있죠? 시공을 초월해서 돌아가죠? 모두가 초월해서 돌아가는데 어떻게 그것을 ‘님''으로다가 하나로 붙이겠습니까? 그래서 주인공(主人空)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주인공입니다. 각자.
그래서 자기 님을, 즉 말하자면 과거에 수없이 살아오고 형성시킨 자기 자랑스러운 임을 ‘주님’이라고 하는 거죠, 본래는. 그런 건데 기독교에서나 가톨릭교에서나 모두, 나도 가톨릭교에 좀 있어 봤습니다마는 내가 기껏 잘못해 놓고 고해 성사 할 때는 신부님한테 가서 다 옮기고 돌아서죠. 그러곤 편안하다고 돌아서는 거예요. 나도 그래 봤으니깐요.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일입니까? 에누리가 없는 게 세상살이에요. 삶이에요, 모두가. 우연히도 없어요. 부부가 만나도 우연이 없어요. 이 세상에 나가 보세요. 전부 끼리끼리 놓여 있죠? 상점에도 끼리끼리 놓여 있지 뒤섞여서 있습디까?
그러니까 끼리끼리 차원대로 만나는 거죠. 그러니까 누구의 잘못도 따로 네 탓이다 내 탓이다 할 게 하나도 없다는 얘기죠. 그러니깐 내가 망해도 ‘네가 잘못해서, 앙앙거려서 재수가 없어서 안됐다.’ 이런 소린 아예 하지 마라 이 소리죠. 모두가 자기 차원에 따라서 자기 탓이니까 자기가 아무리 잘했어도, 자기가 돈을 벌었어도, 또 망했다 하더라도 자기 탓이에요. 자기가 없다면 뭐가 있습니까? 자기가 있기 때문에 자기 탓이죠. 안 그래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법당엘 가거나 강당에 가면 기도하면서 그냥 ‘하느님 아버지시여!’ 또 불당에 가면 ‘아이고, 부처님이시여! 관세음보살이여! 지장보살이시여!’ 뭐 온갖 이름을 다 찾죠. 그러나 그게 없는 이름은 아닙니다. 다 있어요. 우리가 아파서 주인공에다 맡기면 약사가 되거든요, 약사보살. 진짜 자기가 약사보살이 돼요. 또 자기가 가난하고 어떠한 법칙에 의해서 문제가 생겨서 너무 답답할 때에 거기다 맡기면 관세음이 되죠, 관세음보살이. 명이 짧아서 어쩌나 그러고 걱정될 때는 칠성부처님한테 맡기는 게 아니라 내 주인공한테 맡기면 내 주인공으로 하여금 통신이 돼서 그 칠성부처가 책임을 맡죠. 참 묘합니다. 그러니까 칠성부처가 그 명을 다루죠.
그리고 또 누구나가 차원대로 모습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죽으면 자기가 산 대로, 행동한 대로, 말한 대로 그대로 모습이 돼서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개로 나왔다면 개 대접밖엔 못 받죠. 우리가 살아 보지 않아요? 개 새끼는 개 새끼지 뭐 사람의 새끼냐 이러죠. 뱀이라면은 뱀의 대접밖엔 못 받죠.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대접을 받죠. 그러니까 그렇게 자기가 한 대로 조금도 어김없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공부는 모든 걸 무효로 시키는 데 목적이 있는 겁니다. 잘되고 잘못되는 거를 다 그냥 무효를 시키면서 내가 원하는 모든 거를 새로이 개척해 나가는 거죠. 그러니 여러분이 이 공부는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기도하고 빌어서, 빌어먹는다는 말이 있죠, 왜? 빌어서 뭐를 조금 얻어서 쓴다 하더라도 고거 없어지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그러는데 그럴 땐 어떻게 하시렵니까? 어떤 때는 사람들이 그래요. “아, 나한테 좀더 마음을 크게 내 주셔서 해 주시오.” 이러죠. 그러나 나는 다 생각이 있습니다. 본인을 가르치는 데는 그렇게 “그러세요.” 이래서는 절대 안 되죠. 본인이, 본인이 직접 하게 만들면서 해 줘야죠, 재주를 가졌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본인더러 “관하시면, 그대의 주인공에 관하시면 되죠. 열심히 해 보세요.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또 마음이 편안해야 되겠으니까. 지금 집안에서 콩 튀듯 팥 튀듯 하는데 마음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면 나라도 말 한마디라도 편안하게 해 줘야죠.
어떤 사람이 뭐가 잘못돼서 모든 걸 은행으로 뺏기고 인제는 집까지 뺏기게 돼서 거리로 애들하고 나서게 된다고 하면서 그냥 땅바닥에, 내가 길에 나왔는데 그 땅바닥에다가 절을 했습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이 어리석어서 그랬을까요? 보잘것도 없는 고깃덩어리, 중한테 뭐 볼 게 있다고 거기다가, 길바닥에서 절을 하겠습니까? 남의 말은 들었지만 자신은 그 식구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라는 거를 다 버린 겁니다, 아주. 아시겠습니까? 자기라는 거, 자기 위신이라는 거, 양심이라든가 뭐 이런 것도 다 몽땅 몸째 그냥 다 버린 거예요. 죽어 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요, 아무 생각이 없어요. 아무 생각이 없이 ‘잘 죽었다, 잘 죽었어. 어차피 죽으려면 그렇게 죽어야지.’ 그러고선 왜 땅에서 이럭하시느냐고 일어나시라고 이렇게 해 놓고는 열심히 관하시라고, 그래도 관하시면 좋은 일이 있지 않겠느냐고, 그저 관하시면서 부지런히 뛰시라고 이랬어요. 그랬는데 얼마 있더니 “아이, 집은 건지게 됐습니다.” 또 얼마 있더니 “아유, 그 공장 하던 것도 되찾게 됐습니다.” 그래요. 나는 어떻게 찾게 됐느냐 이런 것도 묻고 싶지 않아요. 죽게 되는 식구를 건지기만 했다는 것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뭘 물어요? 그렇게 좋다면 나도 좋은 거죠. 이유를 물을 필요도 없죠. 그 이유를 묻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는 이 정신계의 무의 법이 그렇게 귀중하고 사람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문제들이죠. 그런 법이 바로 50%에 모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죠. 할 줄 아는 사람만 하는 게 아니에요. 다 권리를 가지고 다 지니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모든 분들이 죄가 없다는 사실, 도둑질을 하고 사기질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죄가 없다. 모르니까 그런 거지, 알면 그럴 리가 없거든요. 그리고 신기한 건, 보시면 보는 대로 그냥 있는 게 없죠? 강도질을 했다 하더라도 그냥 돌아서서 벌써 과거가 돼 버렸어요. 그래서 인과응보라는 게 있어서 그 강도질을 했다면 되와야 하죠? 그런데 되오기 전에 입력을 없애 버리는 거죠, 우리가 지금 공부하는 건요. 되오기 전에 입력이 되니까. 다른 입력으로 들어가니깐. 그래서 이것을 묘법이라고 한답니다. 그러니까 기도해서 비는 게 아니라 자기 주인공한테 맡겨 놓는다면 인과응보도 벗어날 수가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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