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는 마음이 녹아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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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저의 가족과 시동생 가족이 함께 사는데 동서가 아래임에도 불구하고 집안 살림에 손 하나 까딱 안 하니 미워하는 마음이 녹아지질 않습니다. 대체 무슨 인연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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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이 마음공부라는 게 그렇습니다. 일체 만물만생하고도 같이 대화를 할 수 있는 그런 도립니다. 그러니까 수도를 하지, 그렇잖으면 무엇 때문에 수도합니까? 그런데 모두가 각자의 의견에 따라서 결정을 짓고 생각을 하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분분해지고 죽을 수가 없는 겁니다. 마음을 죽일 수가 없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로부터 악업 선업을 받은 그 자체를 녹일 수가 없는 겁니다.
이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 믿고 “스님, 이러이러한데 이거는 어떡했으면 좋겠습니까?” 하면 “알았어.” 하게 되는데 ‘저 조그만 스님이 뭘 알아, 알기는?’ 이렇게 업신여기고 의심하면 오히려 그르치는 겁니다. 요만큼도 에누리가 없는 사실이죠. 마음을 여러분이 쓰는 대로니까요.
저는 여러분이 한 명이 오시든지 두 명이 오시든지, 열 명이 오시든지 백 명이 오시든지 그런 건 상관 안 합니다. 왜냐고요? 여러분 한 몸 속에 수십억 개의 중생들이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 몸뚱이 속에 그렇게 악업 선업이 들어 있는데, 그 들어 있는 대로 자기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거기 주어져 있는 것을 그냥 내놓을 뿐이지 이거를 잘 돌리거나 못 돌리거나 이런 게 없어요. 그러니까 운명 팔자가 독 안에 들어도 못 면한다는 얘기죠.
그래서 이 설법하는 거를 듣고 ‘아, 이거는 모두가 내 몸속에 있는 거니까 나 아님이 없구나. 모두가 한마음이로구나.’ 이렇게 생각을 한다면 그 음파가 속으로 모든 악업 선업의 업식들이 다 듣고 한마음이 돼 줘요. 그리고 도둑질을 하러 가자 이런다면 도둑질을 하게 만들고, 강도짓을 하게 가자 하면 강도질을 하게 해 주고, 좋은 일을 하자 그러면 좋은 일을 하게 해 주고 이런단 말입니다. 그러니 그걸 누가 말립니까? 그러니 여러분이 설법을 듣고 하나하나 그 내 마음을, 내 중생의 마음을 다스려서 생각을 해서 거기 놓는다면 모든 중생이 한마음으로 되고 천백억화신으로 화한단 말입니다.
이 사람의 마음은 한마음이지만 이 속에 들어 있는 의식들은 수십억의 의식들입니다, 제가끔. 어느 한 공장의 직원들처럼 말입니다. 간 공장, 소장 공장, 대장 공장, 신장 공장, 방광 공장, 콩팥 공장 어디 뭐, 공장을 들이대려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게 많은 공장 속에서 중생들이 작용을 해 줘야 이 사람이 움죽거리게 돼 있고, 사람이 살게 돼 있고, 생각을 하게 돼 있고 ‘아, 영원한 생명의 근본이 바로 이런 데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고 이런 것이지, 독단적으로 내가 나라고만 한다면 속에 들어 있는 중생들은 어떡하고요? 모습도 천차만별이고 의식들도 천차만별이고 그런 의식들을 어떻게 다 커버해서 한마음으로 뭉쳐 놓겠습니까?
그러니 어떻게 하든지 남을 의심하지 말고 또는 남을 원망하지 말고 남을 증오하지 말고, 한 식구라도 미워하지 말고, 미우면 거기다가 맡겨 놓고, 내 깊은 내면 속에다 맡겨 놓고 부드러운 말 해 주고 부드러운 행동을 해 주시란 말입니다. 그럼으로써 그대로 반영이 되고 그대로 그쪽에도 불이 들어오게 돼 있습니다. 전력은 다 똑같으니까요. 전구는 다 달라도 전력은 다 똑같습니다. 내 마음에서 불을 켜는데 어찌 그쪽 마음에서 불을 안 켜겠습니까? 마음과 마음이 불이 켜지면 다 같이 한방에서 살 수 있듯이 우린 밝게 살 수 있다 이겁니다.
내 마음이 컴컴하면 그것이 암흑이고 지옥이지 어디 따로 있습니까? 그래서 천당이니 지옥이니 승천이니 하는 것도 바로 이 자립니다. 자기네들이 마음먹고 결정지어 놓고, 결정지을 게 하나도 없는데 말입니다. 하나도 결정지을 게 없는 게, 공했다는 사실입니다. 보는 거나 듣는 거나 말하는 거나, 가고 오는 거나 만남이나 어느 거 하나 공하지 않은 게 없어요. 고정된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랬으니 어떤 거 했을 때 내가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공했다는 얘깁니다.
부처님이 이러한 법을 일러 주시고 길잡이 노릇을 하셨지, 그분도 고깃덩어릴 믿으라고는 안 그러셨습니다. “네 마음부터 깨쳐야 내 마음 알 수 있느니라. 내 육신을 보고자 하고 매달리고 그러지 말고 네 마음부터 바로 발견하라.” 이러셨습니다. 이 마음과 마음은 체가 없는 거라 우주 바깥에도 나갈 수 있거니와 지구 바깥에도 나갈 수 있고, 아무리 천리만리 멀다 하더라도 한 찰나에 오고 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처님 도리를 배우려면 진짜로 모든 걸 한군데다 뭉쳐 놓지 않는다면 아니 됩니다. 모두 놓지 않고는 모두 얻을 수가 없으니까요. 사람은 한번 이렇게 태어나면은 한 철 살다가 고만 가는 것이죠. 그런데 한 철 동안에 이 몸을 열반경지에 이르기까지, 살아 있는 이 몸을 가지고 해야 열반이지 큰스님네들이 죽어서 열반이 아닙니다. 죽는 게 열반이 아니라 죽지도 않고 살지도 않는, 예를 들어서 나온 새가 없기 때문에 갈 곳도 없다 하는 그런 데서 나오는 이름입니다, 열반이.
이런 거, 내 몸속에 하나하나의 세균 중생 모두가 나 아님이 없다는 생각 해 보셨습니까? 한쪽만 기울어졌어도 이 집이 무너집니다. 그런데 하다못해 물 한 그릇을 먹고도 그것이 오줌이 됩니다, 또. 이렇게 바뀝니다, 자꾸. 또 다른 게 먹고 또 일부분이 되고, 또 증발하고 또 일부분이 됩니다. 그러나 그뿐이 아닙니다. 하다못해 풀 한 포기, 지렁이 하나도 나 아님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을 안다면 어찌 남을 증오하고 미워하고 그러겠습니까? 누구를 막론하고 얘깁니다.
가정에서도 다복하고 또는 화목하고 모두가 슬기롭게 넘어가려면, 그리고 이 도리를 배우려면 ‘안되는 것도 거기서 나오는 거니까 되게 하는 것도 거기지.’ 하고 싱긋이 한번 웃고 거기다 놓고 부드럽게 말해 주면 ‘아, 내가 이렇게 이렇게 했는데도 저렇게 부드럽게 나오니 아이, 인젠 내가 이러지 말아야지.’ 하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건 말로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나의 한마음 속에 모든 걸 집어넣는 이 마음공부로써 그 맛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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