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깨쳐야만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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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부처님의 근본경전을 읽어 봐도 지옥에 간다 천당에 간다라는 말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지옥이다 천당이다 하고 설정을 해서 사람을 구속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스님, 천당과 지옥이 진짜로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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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내가 꼭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은 깨친다 안 깨친다를 떠나서 우리 젊은이들이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할 길이 있는 것이 여자고 남자고 젊고 늙고 간에 불문에 부치고 자기 앉은 방석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인간이라고도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중생이라고 말한 것인데 우리가 이 한국이라는 조막댕이만한 나라에 태어났으니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자기 몸을 보호할 줄 아는 사람이 자기 가정을 보호하고, 자기 가정을 보호하는 사람이 사회도 보호할 줄 알고, 또는 국가적으로도 그렇거니와 세계적으로도 우주적으로도 할 수 있는 자신이 있어야 내가 앉은 자리를, 내가 내 발등에 불 떨어지는 거를 끌 수 있다는 얘깁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반면에 여러분이 ‘아, 부처님 법은 이렇게 어렵구나! 이걸 깨달아야 한다니…. 아이구, 우린 깨닫지 못해서 중생이지.’ 이렇게 생각을 한다면 중생 부처가 따로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선의 생각을 해도 그것은 집착이니 인(因)을 짓는 것이니라.’ 한 겁니다. 아무리 내가 보시를 하고 좋은 일을 하더라도 착을 둔다면 그것도 선인(善因)을 짓는 겁니다, 집착을 했으니까. 그래서 악에 집착을 해도 아니 되고 선에 집착을 해도 아니 되느니라. 일상생활에서 요만한 거 하나라도 착을 둬서는 안 되느니라. 내 마음이 고정되게 돌아가지 않고 공했으니 내가 하는 모든 일도 전부 공했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하나도 착을 두지 말고 그냥 무심, 무심으로 해라 했던 겁니다.
그렇다고 ‘마음 내놔 봐라.’ 한다면 어디 눈에 마음이 붙어 있다고 하겠습니까, 귀에 마음이 붙어 있다고 하겠습니까? 코에 붙어 있다고 할 수도 없고 배꼽에 붙어 있다고 할 수도 없는 겁니다. 너무도 광대하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이 어디 고정되게 붙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부처라는 이름이 있지 만약에 공하지 않았다면 부처라는 이름도 없을 것입니다, 아마.
그러니 여러분이 어렵다, 어렵지 않다는 생각을 떠나서 시간과 공간이 초월된 상태로 우리는 지금 그냥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옛 산도 없거니와 옛 사람도 없고 옛 물도 없다는 뜻이 바로 이런 데 속합니다. 어렵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내가 중생이다, 부처다’ 이런 생각도 하지 마시고 ‘내가 이렇게 하면은 중생이고 저렇게 하면 부처인데 내가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을까.’ 이렇게 어렵게도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금 부처의 행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잘못되고 잘된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이렇게 하면 안 되고 저렇게 하면 되고, 저렇게 하면 좋고 이렇게 하면 언짢은 거를 너무도 잘 알기에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회 상식을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벌써 태어났으면 나쁘고 좋은 걸 안단 말입니다. 우리가 의려를 하지만 그렇더라도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알 만큼은 알 수 있는 거니까 그걸 묵인하고 그냥 부처님의 행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깨친다 안 깨친다 이거를 어떻게 말로 표현을 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은 자꾸 스스로 좌절해요. 여러분은 자기를 못 믿어요. 여러분은 자꾸 자기가 생각하는 거를 ‘중생이 생각하는 건데 이건 안되지.’ 하기 때문에 안되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것뿐만 아니라 큰 것도, 타인의 일이라도 말입니다. 공장을 처음 냈는데 ‘이게 이렇게 하면 안되는데….’ 할 때 그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며, 한생각을 탁 내 줄 때 그 공장은 그대로 유지돼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한생각을 내 주는 것도 그렇고 한생각을 하는 것도 그렇고 한생각의 그 향기로운 냄새가 온 우주를 다 덮고 우주를 싸고 아니 닿는 데 없이 닿을 수 있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마음의 능력입니다. 마음은 여러 가지로 낼 수 있고 여러 가지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바로 이것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치입니다. 몸뚱이도 한 사람 몸뚱이지만 한 사람의 몸뚱이라 해도 이름이 다 각각 있지 않습니까? 눈이다 코다 귀다 손이다 발이다 간이다 하는 이름이 여간 많지 않습니까? 이 많은 이름들이 한데 합쳐진 게 사람 아닙니까? 그래서 사람이 하는 노릇이 부처가 하는 노릇이다 이겁니다.
그렇게 백지장 하나 사이인데도 그게 그렇게 안 돌아가니까 힘이 든다 이겁니다. 마음의 주인공은 바로 가슴에서 느끼는 점입니다. 느끼는 점! 이 가슴에 와 닿아 가지고 느끼는 점입니다. 느껴서 그대로 생각나면 그냥 그대로 법입니다. 그러니 보는 것도 아주 세밀하게 볼 수가 있는데도 그거를 여러분이 느끼면서도 못 믿는 것입니다. ‘야, 이건 내 마음으로 이렇게 느껴지는데 이건 모두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니까 이건 안된다는데….’ 이러거든요. 남의 말을 그렇게 잘 듣고 잘 들으면서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자기 주인공의 뜻은 왜 못 믿습니까? 자기 스스로 믿고 스스로 행하고 스스로 자재한다면 그대로 법신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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