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당과 지옥이 진짜로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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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절에 다니다 보면 어떤 기도는 어디에 좋고 어떤 기도는 어디에 좋다고들 말을 많이 하는데 제가 요즘 생각이 드는 것이, 단지 이 마음공부도 어떻게 보면 중생들이 희구하는 것에 대한 기복일 뿐이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스님, 그런데 이 마음공부가 어떤 부분이 좋은 것인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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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은 일체 만물만생 전부가 다 흙이든지 무정물이든지 식물이든지, 지수화풍을 막론하고 더불어 모두가 평화스럽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자유스럽게 살 수 있게끔 돼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마음이 그렇질 못합니다. 평화스럽게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여하게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음들이 물질세계의 50%에만 전전긍긍하니 거기에까지 마음이 미치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내가 산다느니 내가 했다느니 내가 말했다느니, 그리고 망한 거는 또 타의에 의해서 망했다느니 저 사람 때문에 우리가 못살게 됐다느니, 이러한 문제 등이 모두 여러분의 마음에 사무치기 때문에 밝게 내다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에 천당 지옥이라는 것은 어디에 있는가? 여러분이 이 마음이 진정코 무서운 도리라는 것을 한번 음미해 보십시오. 일체 만물만생이 천차만별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태로 낳는 거나 알로 낳는 거나, 화해서 낳는 거나 질척한 데서 낳는 거나 천차만별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무정물도 식물도 천차만별로 모습을 가지고 있고요. 그런데 그것이 어디에서부터 나오느냐? 전력이 똑같듯이 인간의 불성의 씨는 다 똑같은데도 불구하고 마음들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모습을 지어 가지고 나옵니다. 우리가 박씨를 심었으면 박이 나죠. 박 싹이 나고 박이 또 열리죠. 그러나 마음의 불씨라는 것은, 마음의 씨라는 것은 박씨도 아니요 사람씨도 아니요, 이것 씨도 아니요 저것 씨도 아닌 자체의 씨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먹는 대로 입력이 돼서 그것이 현실로 모습을 들고 나오고, 바로 현실로 모든 생활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먹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곰곰이 생각을 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사람보다도, 벌레가 되느냐 짐승이 되느냐, 날아다니는 새가 되느냐 하는 이러한 문제들은 무서운 것은 둘째 치고 그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닐 뿐만 아니라, 내가 자식들을 낳았을 때 거기까지도 미치게 됩니다. 부모가 살인을 저질렀다거나 사상이 그르다 해서 만약에 부모한테 어떤 판정이 내려졌다면 그 자식까지도 연관이 되듯이.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 어떻게 생활을 하느냐, 어떻게 행동을 하느냐, 어떻게 말을 하느냐? 이런 문제 등이 현실에 결부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제일 두렵게 생각해야 할 것은, 지금은 사람의 모습으로써 이렇게 살지만, 한순간에 꿈같이 내 몸이 사대(四大)로 흩어져서 제각기 물로 돌아가고 흙으로 돌아가고 바람으로 돌아가고 불로 돌아가는데, 원점으로 다 돌아가는데 여러분은 하나도 가져갈 게 없어요. 몸도 가져갈 수 없고 보물도 가져갈 수도 없고, 재산도 가져갈 수가 없고 또는 부부와 자식도 가져갈 수가 없고, 모든 권속도 가져갈 수가 없고 권리도 아무것도, 친구도 아무것도 가져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말하자면 악업이든지 선업이든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그림자처럼 따르는 것이 바로 업식입니다. 그 업식으로 말미암아 모습을 사람으로 가지고 나오느냐, 짐승으로 가지고 나오느냐, 벌레로 가지고 나오느냐, 새로 가지고 나오느냐, 독사로 가지고 나오느냐, 개로 가지고 나오느냐가 결정되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지금은 사는 게 뭐, 살아나가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하고 이렇게 방치하는데, 여러분이 사람의 의식으로 생활을 하고 사시다가 만약에 새 새끼나 짐승이나 땅속의 벌레나 독사가 짝짓기 하는 데 자동적으로 들어간다면 어떠실 것 같습니까? 이 세상을 잘 보십시오. 넝마는 넝마전에 있고 금은 금방에 있습니다. 깡통은 깡통전에 있고 무쇠는 무쇠전에 있습니다. 사람들도 천차만별로 끼리끼리들 모두 모이는 겁니다.
그와 같이 자동적으로 자기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그렇게 모습을 짓게끔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의식으로 살다가 짐승 모습을 가지고 나왔을 때는 아무리 울고 발버둥이쳐도, 개로 모습을 가지고 나왔다면 “멍멍” 짖을 수밖엔 없는 겁니다. 새로 나왔다면 새로 지저귈 수밖엔 없는 겁니다. 아무리 말을 하고 눈물을 흘려도, 간절하게 말을 해도 세상 사람은 들어주지 않고 알아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답답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이렇게 답답한 거 자체가 지옥입니다.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재나 쌀이나 곱게 해 놓고 뭐가 됐는가 발자취를, 발자국을 보는 유래가 있었죠. 구렁이가 됐으면 그 재를 가지런히 해 놓은 거기에 구렁이 표시가 나고, 사람이 됐으면 사람 발자국 표시가 나고 이랬다는 얘깁니다. 그러니 지옥이 우리 눈앞에 그냥 널렸고 천당도 눈앞에 널려 있습니다.
그런 일이 현실에 진실로써 그냥 막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 앞에 지금 닥치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생각들 하시는 겁니다. 금으로다가 반지를 만들었다면 반지가 아무리 찌그러졌어도 금방에 가서 다시 재생돼서 나오지만 무쇠나 넝마라면, 깡통이나 그런 철 종류라면 가서 재생이 돼도 철 종류로 그냥 나오는 겁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이 말입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내 앞길이 세세생생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관련이 되고 자식에게도 관련이 되는 겁니다. 한 발짝도 떼어 놓을 수가 없습니다. 아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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