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배도 제대로 못 올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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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저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절에는 가끔씩 가곤 합니다. 절에 가면 기본적으로 법당에 가서 부처님 전에 삼 배를 올리게 되는데 어느 날 제가 절에 갔다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삼 배도 제대로 못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게 마음에 좀 걸렸는데 그래도 삼 배는 제대로 해야 올렸어야 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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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어느 법당에 가더라도 여유가 있을 때는 칠 배를 해도 좋고 백팔 배를 해도 좋고 삼 배를 해도 좋고 그렇지마는 상황이 급할 때는, 이게 융통성이에요. 상황이 급할 때는 일 배를 하면서도 삼천 배 한 값어치가 나오죠. 상황이 급할 때는 내가 일 배로, 삼천 배를 일 배로 규정을 지으란 말입니다, 둥글려서. 둥글린다는 건 무슨 뜻이냐 하면 부처님의 모습도 내 모습, 부처님의 생명도 내 생명, 부처님의 뜻도 말씀도 다 내 뜻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나와 부처님, 일체제불 모든 걸 둥글리라는 거죠.
보통 법당에 가면 또 많이 모셔 놨죠? 그러면 사람이 공부하는 데 너무 어지러워서 오히려 공부를 못할 수가 있어요. 여기도 놔야 하고 저기도 놔야 하고, 지장이니 관세음이니 이렇게 모두 놓는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 지장보살도 관세음보살도 칠성부처도 다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주해신이나 그 산신이나 이런 것도 따로 계신 게 아니에요. 여러분 마음 하나에 전부 계시다는 얘기예요.
여러분이 다리가 아프다 할 때 이런 공부를 아주 깊이 하는 사람들에 한해서는 ‘아이구, 다리 아파.’ 하고선 이렇게 손을 대면 보현의 손이 돼 버려요. 아시겠어요? 보현신이 된단 말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일이 생겨서 ‘아이구, 이거 주인공, 주인공만이 해결할 수 있어.’ 하고 거기다 관을 하면 그냥 한 찰나에 관세음보살로 화해서 나갑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몸 안의 의식들이 전부 그 공부를 하는 데 다 같이 따라 주기 때문에 한마음으로 조복을 받아서 이 세상을 건지니 그 보살의 이름들이 다 근본은 하나로다. 그러니 그 근본에서는 모든 보살이, 예를 들어서 회사 사장 회장이 있는데 그 직원들이 다 그 회사 직원이지 딴 직원이 아니거든요. 사장 대리로, 회장 대리로 이렇게 하는 거죠. 상황에 따라서 또 용도에 따라서 말입니다. 그와 같은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자기 그 마음속에서 보살들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생산하셨다고 그랬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하면, 가만히 있는 게 부처인데 자기 마음을 내놓지 않으면, 보살로 내려놓지 않으면 일을 못하겠거든요. 무의 법에 의해서 공법으로, 평등공법으로 진행하기 위해서 보살이라는 이름을 자기 그 마음속에서 낸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 명이 짧으면 칠성부처님한테 갖다 놓고 빌어야 하지 않습니까. 좋은 데로 못 가면 지장보살한테 갖다 놓고 빌어야죠? 무슨 일이 안되거나 그러면 관세음보살한테 가서 놓고 빌어야죠? 일이 엉망으로 됐을 땐 신장한테 갖다 놓고 빌어야죠? 이렇게들 하면 공부하는 데는 아예 그 근처에 가 보지도 못하는 거죠.
그래서 법당에 들어가더라도 그냥 신장이든 보살이든 지장보살이든 칠성보살이든 주해신이든 주산신이든 내가 용도에 따라서 그렇게 했으면 한 가지만 가지고 전부 둥글리세요. 마음으로 전부 둥글려서 일 배를 해도 통신이 된다는 얘기죠.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다면 통신이 안돼요. 이 세상에 나오고 멸해서 가고 하는 그 교차로의 구멍은, 우리가 공부할 수 있는, 그대로 그 하나밖에 없어요. 저승을 탐험하고 무의 세계를 탐험하려면 그 구멍밖엔 없거든요. 여러분의 그 보배라는 그 자체가 나고 들고 나고 들고 하는 게 말입니다.
우리가 큰일이 생기면요, 일체제불이 우주와 삼세 세계와 전부 하나로 통신이 돼서 찰나찰나 이렇게 나고 들어요, 이 공부 한 사람들은. 그러니 보이는 것만 가지고 노력하지 말고 안 보이는 50%를 마저 채워서 100%를 만들도록 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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