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비우면 행복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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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인생의 행복이 뭘까요? 처음에 가정을 이룰 때 잠시 행복을 맛보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 걱정, 자식 걱정으로 사는 낙이 없습니다. 마음을 비우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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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여러분이 자랄 때 빼고 늙은 뒤에 빼고, 살면서 얼마나 행복을 느꼈습니까? 행복이 얼마나 됩니까? 이것저것 자는 것 빼고 이것저것 걱정하는 것 빼고, 이것저것 다 빼고 나면 행복이란 그저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두 어느 때고 하늘이 무너진다 하더라도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고, 밀고 나갈 수 있는 그 백이 자기를 즐겁게 행복하게 해 주는 겁니다. 마음이란 너무나 광대하고 무변해서 마음이란 이름은 하나 가졌지만 그 마음이라는 이름 가지고 얼마나 많은 마음을 씁니까. 그래서 마음은 없는 게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너무 많이 있어서, 그리고 돈도 안 내고 쓰는 마음이라 그저 아무렇게나 그냥 되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막 해내 버립니다.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부부지간도 자식지간도 모두 누구나 대신 살아 주는 사람 없습니다. 아파 주고 죽어 주고 깨달아 주고 똥 눠 주고 잠자 주고 또는 밥 먹어 주고, 이러는 거 대신해 주는 거 보셨습니까? 그러니까 항상 제각기 모두 이 마음을 좀 연구해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기묘하고 미묘한지, 여러분은 자식들이 잘못하면 배울 시기에 배우지 못하고 저렇게 그냥 저런다고, 배울 시기에 못 배우면 뭐, 깡통을 차느니 뭐 어쩌느니 하고 욕을 합니다. 뭐 깡통을 찰 녀석이라든가, “너는 평생에 그럭하고 지내려느냐.” 하고 욕을 막 하죠.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욕을 하고 그렇게 하면 그대로 되는 겁니다, 그냥.
그러나 남편이든지 자식이든지 아내든지 아무리 잘못한다 하더라도 ‘아, 이 세상에는 그냥 만난 인연이 아니다.’ 이 세상 살아나가는 거 가만히 보세요. 금방에는 금이 있고 넝마전에는 넝마가 있고 깡통전에는 깡통이 있고 무쇠전에는 무쇠가 있습니다. 끼리끼리 말입니다. 상점에 가 봐도 사과는 사과대로 놓여 있고 배는 배대로 놓여 있고 끼리끼리 모두 놓여 있습니다. 그게 보통 인연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인연에 따라서 다 만난 인연들인데 만날 탓을 해요. 자기가 이 세상에 났기 때문에 인연을 만난 거지, 자기가 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인연이 됩니까? 자기가 있으니까 만난 거 아닙니까. 똑같이 인연에 따라서, 똑같은 차원에 따라서 만난 겁니다. 그런데 남의 탓을 한단 말입니다.
당신이 그 따위로 하니까 망했다는 둥 또 잘됐으면 내가 잘해서 잘했다는 둥, 이렇게 말입니다. 그러니 무슨, 무슨 애정이 그렇게 있겠습니까, 그렇게 싸우는데. 점점 식어가지. 그러니까 행복은 없어지는 거죠. 행복을 누가 갖다 주는 게 아닙니다. 행복은 우리가 만들어서 행복한 거죠. 그러니 그렇게 해서 우리가 끼리끼리 만나서 그러는데, 자식들도 부모가 싸우는 거 보고 그대로 배우거든요. 싸우기만 하는 걸 배우는 게 아니라 그 모든 걸 다, 보지 않는 것 같고 듣지 않는 것 같지만 다 그대로 영향이 미친단 말입니다.
그뿐이 아니죠, 또. 그렇게 하면은 모두가 파산이 되고 또는 행복하지 못하니까, 예를 들어서 남편이 잘못했다면 아내가 ‘아, 이것도 끼리끼리 만나서, 내가 있으니깐 저 남편을 만난 거니까 모든 게 내 탓이다.’ 하고 들어오면 부드럽게 말해 주고 부드러운 행동을 해 준다면 그렇게 잘못하다가도 ‘아, 내가 이렇게 잘못을 하는데도 이렇게 부드럽게 해 주니….’ 하고 따뜻한 데로 고이게 마련이거든요. 그렇게 하고 또 부인이 그럴 때 남편이 그러고, 자식이 그럴 때 부모가 그렇게 하고, 그걸 자식이 잘못한다고 부모가 “요놈의 새끼! 어디 가서 자빠져 잤느냐. 어디 나가서 이렇게 있었느냐.” 하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죠. 말이란 행동으로 붙들거나 말로 붙들어서 그게 오는 게 아니에요. 마음으로 고장난 거는 마음으로 고쳐야죠. 마음으로 ‘너만이, 주인공은 둘이 다 똑같아. 너하고 나하고 둘이 아닌데….'' 영 영(0)은 만 개를 갖다가 한데 놓아도 영(0)입니다. 그러니 모두가 둘이 아니죠. 그러니까 벌써 자식이다 부모다 하고, 전기가 가설이 돼 있는 것처럼 가설이 돼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내 주인공에게 모든 것을 ‘자식과 둘이 아닌데 너만이 해결할 수 있잖아. 너만이 들어오게 할 수 있잖아. 너만이 지혜로울 수 있잖아. 너만이 어디 가서든지 떳떳하게 살게 할 수 있잖아.’ 하고 그렇게 관한다면 저절로, 마음이 거기까지도 불이 들어와서 저절로 집에 들어와서 착해질 수가 있다 이 소립니다.
모든 게 마음으로서 마음의 조작입니다. 잘못되는 것도 마음이요, 잘되게 하는 것도 마음입니다. 마음의 조작이니만큼 마음으로서 서로서로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 빛보다도 더 빨리 연결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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