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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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저는 직장 생활을 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사회 초년생입니다. 절에서 학생회 청년회 활동도 열심히 했지만 막상 사회에서의 생활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선배님들도 업무 과중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인간관계로 인하여 많이 힘들어하는 걸 보면 제 앞길도 벌써 걱정이 됩니다. 스님, 제가 힘을 낼 수 있도록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그 모든 믿음과 패기가 없고 용맹정진이 없다면 항상 방황하게 됩니다. 한 걸음을 떼도 무겁고 좀더 인내성 있게 떼어 놔야 할 거고, 생각을 해도 좀 무겁게 하면서 그 종종걸음을 걷지 않도록, 한 걸음을 떼어 놔도 백 걸음 못지않게 뛸 수 있는 그런 믿음과 패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전체 이 한 몸을 우주로 생각한다면 우리가 각자 각자 이 몸뚱이 하나에 생명들이 수억 마리가 있는데, 그렇게 많은 양을 한데 포섭해서 그 인연에 따라서 여러 그 마음들이 종합해서 한데 모인 한 생명입니다. 이것을 그냥 넘기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내가 하지 않으면 내가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내가 한 것만치, 죄도 선도. 그러니까 이걸 그냥 넘기지 마시고 좀 믿음을 진실하게 가지고 한번 해 보겠다는 패기가 물러서지 않도록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살아나가는 데에 어떤 때는 이런 생각이 들고 어떤 때는 저런 생각이 들고, 수만 가지의 생각이 돌게 됩니다. 그것은 자기 하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일으키고 가라앉히고 하는 것은 바로 자기 선장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의 구성된 선장, 즉 마음에 달려 있다 이겁니다. 즉 말하자면 원자력발전소가 자기 한 몸뚱이에 구성돼 있다면, 바로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데도 그게 맞뚫렸습니다. 바깥으로 열고 나가는 것도 그 문을 붙잡아야 하고 안으로 들어오려도 그걸 붙잡아야 합니다, 문을 열려면. 본래는 문이 없는데도 문이 있다는 겁니다. 문이 있는데도 문이 없다는 것은 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체가 없으면서도 역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대성원리기 때문에 안의 버튼을 누르는 것도 바로 그 버튼이고 바깥에서 안으로 들이려도 바로 그 버튼을 눌러야 됩니다. 그런데 그 버튼 하나에, 안팎이 붙어 있는, 뚫린 그 버튼 하나에 줄이 만 개가 있다면 만 개가 죄 각각이라는 얘깁니다, 무전통신 줄이. 즉 법망에 그 무전통신 줄이 다 붙어 있어요. 그러면 그 붙어 있는 줄에 이건 우주의 버튼을 누르는 우주 줄이고 이거는 삼천대천세계의 줄이고 이것은 또 소천세계 중천세계 등등.
또는 우리 몸을 종합병원이라고 그런다면 거기는 다양하게 이비인후과도 있고 또 여러 가지 내과 외과 뭐, 전부 있습니다, 안과니 뭐니. 그런데 소소영영한 게 우리가 목이 아프면 벌써 나한테 신호가 온 겁니다. 그래서 이비인후과로 갑니다. 눈이 아프면 안과로 갑니다. 그런데 대의적으로 쓸 때는 이게 종합병원이라는 겁니다. 이 나라에서 볼 때는 이게 ‘종합병원’ 이러지 어떠한 이비인후과니 뭐 어쩌고저쩌고 이름 부르지 않습니다. ‘종합병원’ 이러죠. 그러니까 우리 몸뚱이 하나가 종합병원이라면 천체 종합병원의 근거지입니다.
내가 이 말 저 말 안 하고 넘어가면 고 뜻을 모르실까 봐 이러한 말을 합니다마는 임신을 해서 어린앨 뱄어도 그 탯줄을 잡지 못하면 그 전체 부위에서 나오는 그 액체의 자기 젖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탯줄을 언제나 자동적으로 잡고 있는 겁니다. 탯줄을 놓친다면 그 어린앤 떨어집니다. 살 수가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그 탯줄을 잡지 않는다면 고아가 됩니다, 고아. 어디서라도 도와서 한마음 한뜻으로 돌아가야 될 텐데 돌아갈 수가 없고 자꾸 걸려요.
그와 마찬가지로 그 버튼은 안팎에 맞뚫린 하난데 수없이 우주 줄이 있고, 즉 말하자면은 세계 줄이 있고 또 국가 줄이 있고 또 사회 줄이 있고 또는 우리 가정 줄이 있고 내 몸의 줄이 있고 몸의 세포의 모든 기능의 줄이 있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하나, 이렇게 나한테 닥치는 대로, 예를 들어서 내가 몸으로부터 만약에 얘기를 하자면 아, 사무실에 나가서 상대를 만나서 일을 해야 할 텐데 참 까다롭다 할 때 바로, 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벌써 거기에, 내 이 바깥의 버튼에 벌써 신호가 온 겁니다, 안에서. 그러면 안으로 다시 버튼을 누릅니다. ‘이거는 여기에서 해 줄 수밖에 없다, 무전통신으로써.’ 하고. 그럼으로써 이걸 안으로 누른다면 바로 안에서 직접 그쪽 안으로 들어갑니다. 안으로 들어간 뒤에 바로 바깥 버튼을 또 누릅니다. 그럼 만나는 거죠.
그래서 안의 버튼을 반드시 누름으로써 내가 전화통에다가 먼저 전화를 하고, 알려 놓고 바깥으로 가서 만나는 것처럼, 이렇게 해서 만나게 되면 아주 유유히 돌아갑니다. 그러면 바깥에서도 나를 그렇게 그 상대방으로서 깔보지 못하게 됨으로써 아주 유유하게 조화가 이루어지고 안으로서 그렇게 마음이 따뜻하게 되자 서로가 서로를 양보할 수도 있고 서로 도와줄 수도 있게 되지만, 만약에 이 안으로서 통과가 안되고, 마음으로 통과가 안되고 거죽으로 말을 해 봤자야 그건 백문선이 헛문선이에요. 걸리고만 넘어갑니다. 그러니 안팎을 다 응용하고 그 활용하려면 이 무의 50프로, 유의 50프로가 맞먹어 들어가야 된다 이겁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사람이 살다 보면 지혜로운 생각이 났다가도 아주 옹졸한 생각도 납니다. 그러나 옹졸한 건 옹졸한 것대로 쓰이고 큰 거는 큰 것대로 쓰일 때 자기를 언제나 더 잘 압니다. 자기 환경을 너무 잘 압니다. 자기의 마음 씀씀이도 더 잘 알고 지금 자기 앞에 처해 있는 그 자체의 환경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너무 큰 거를, 자기한테 오지 않을 것을 크게 생각을 해서 욕심내지 않아도 내가 지혜가 자꾸 넓어지면 넓어지는 대로 지능이 발달되고 활용을 하게 되자 이건 점점 점점 자기도 모르게 넓어집니다. 넓어져서 우주도 삼킬 수 있는 그런 지혜가 생길 때 비로소 스스로서, 남이 벌써 나에게 큰 그릇이라고 담깁니다. 내가 담으려고 하기 이전에 벌써 담깁니다.
그러니 하나하나 여러분이 적다 크다 없이 닥치는 대로 안으로 굴려서 안으로 그 버튼을 누르고서 하고, 또 바깥으로 나갈 때는 이 안에서 버튼을 누르고 이렇게만 항상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정말이지, 즉 말하자면 상품자리 중품자리 저 하품자리가 한데 합쳐진 즉, 자유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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