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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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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성품 보고 싶어요

본문

질문

6조 스님께서는 “딴 부처님만 생각해서는 생사를 면하지 못할 것이요, 자기의 본심을 지키면 곧 저 언덕에 이른다.”고 했고 또한 “부처는 제 성품 속에서 지을 것이며 몸 밖에서 구하지 말라.”고도 하셨다는데 어떻게 하면 자기 성품을 볼 수 있겠습니까.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그것을 볼 때에 우리가 무슨 가톨릭교나 기독교나 저 불법의 부처님들이나 바깥에서 그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찾는 사람들은 생사를 면치 못하죠. 어떻게 면합니까? 아무리 정성스럽게 내가 기도를 하고 아무리 저거 해도, 잘 찾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만날 빌어먹는 인과밖에는 못 찾을 겁니다. 자유스럽게 내가 모든 것을 남을 줄 때는 주고, 남을 도울 때는 돕고, 내가 갈 때는 가고, 내가 먹을 때는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이렇게 자유인이 될 수 있어야 되는데 그걸 모른다 이겁니다. 그렇게 하면은 그런 인과를 자꾸 받으니까.

지금 6조 스님이 말한 것도 역시 그런 말이에요. 내가 항상 그러지 않아요? 내 주인공한테 감사하다, 믿는다, 내가 들이고 내고 하는 걸 거기서 들이고 낸다 이런 거를 알려 주는 것은 단지 딴 데 부처를 또 생각지 마라, 거기에 다 있으니까. 그런 것이죠. 거기는 어떠한 예수고 마리아고 부처고 어떠한 역대의 선지식들이고, 천하의 수많은 선지식들이 다 한데 합친, 삼계의 부처님까지 전부 한데 합친 그 한자리니 별달리 따로 딴 데서 찾지 말라 이겁니다. 내가 모시고 있는데, 내 마음에 같이 하고 있는 한자리가 있는데 어째서 딴 데에다 절을 하며 또 딴 데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잘못하는 사람도 없고 잘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대의적으로 볼 때 우리가 인간 사회에 의해서 이렇게 살아나가는 이 모든 꼭두각시의 놀음판이라는 구경 속에서는 하여튼 차원도 많습니다. 천차만별로 차원이 많은데 그 차원이 많은 걸 일일이 이거는 낮다 이거는 뭐 그르다 이럭하다 보면은 자기 성품을 영원히 찾지 못해서 그걸 일일이 따지고 따지다가 볼일 못 보고 윤회에 말려서 또 다시 또 따지게 되고 또 다시 또 따지게 되고, 나중에는 결과적으로 하천세계에 떨어지게 되고 말입니다. 또 그냥 하늘나라에 태어난다 함도 상천세계에 태어난다 이런 인과만 받았을 뿐입니다. 또 좋은 데로 태어나고 싶으면 좋은 데로 태어난다는 그런 인과를 받아서 거기에서 또 꼼짝 못하고 그러니까, 이거를 전부 한데 합쳐서 그냥 모든 게 그대로 돌아가는 이 진리가 그대로 평공심(平共心)이요, 평상심(平常心)이요, 바로 성품의 그 도리요, 이게 우주의 전체의 에너지이며 이게 그냥 원소 자체가 그대로 여여하게 돌아감이니라, 이게 진리니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성품이 같이 돌아가면서도 이 꼭두각시는 달리 죄 만들어 놨기 때문에 제가끔들 노는 거예요. 자기가 지금 현재의식으로서 생각하는 대로, 놀려 달라는 대로 놀려 줄 수밖에 없어요. 그 잠재해 있는 자기 실상은, 예를 들어서 차가 가는 데 기름밖에는 안 돼요. 근데 차는 운전수가 가자는 대로 가는 겁니다. 생각하는 건 운전수요, 몸뚱이가 가는 건 차라고 비유하죠. 그래서 우리가 본래면목 그 실상은 바로 기름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럼 그 에너지만 줬다 뿐이지, 가고 오는 거는 너 맘대로 해라 이거거든요. 에너지만 줄 뿐이죠.

 
그런데 깨달은 사람은 그 에너지를 선의적으로 쓰지 악한 데는 쓰지 않거든요. 그러나 그걸 깨닫지 못한 사람은, 그 도리를 모르는 사람에 한해서는 그 에너지를 사람 죽이는 데도 쓰고 악한 데도 에너지를 쓰고 못된 일 하는 데도 에너지를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강도가 차를 끌고 가는데 그 기름이 안 써지나요? 착한 일 하러 가는 사람도 차를 타면은 기름이 들어가야 하고 악한 일 하러 가는 사람도 그 기름이 들어가야 차가 갑니다. 그러니깐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르다 옳다 이런 것이 없이 자기 마음이 해 달라는 대로 그냥 해 줄 뿐이지요. 그러니까 나침반을 놓는 거는 우리의 마음이다 이겁니다.

그러니 그 마음 내기 이전이 어떤 것이었던가. 무한의 능력을 줄 수 있는, 바로 불성이 같이 돌아가는, 일체 유생 무생이 같이 돌아가는 하나의 생명이라는 도리에서 에너지는 주어지고 있다 이겁니다. 그러는데 그 무한의 에너지가 돌아가는 이 에너지를 포착을 못하고는 그냥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그냥 살아나가면서 자기라는 겁니다, 모두. 어디서 기름이 나오는 줄도 모르고. 그러니깐 사람은 마음대로 자유스럽게 못 산다 이겁니다. 사람이 자유스럽게 살 수 있어요? 자기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요? 하고 싶은 대로 못하니깐 자유인이 못 된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창살 없는 감옥이죠. 그러니깐 또 사형을 받게 되는 거고 윤회에 말리는 거고. 그러면 언제까지 이렇게 윤회에 말려서 이렇게 얽매여야 되겠소? 죽음이라는 아픔을 자꾸자꾸 당해 가면서.

우리가 부처님 마음의 그 도리를, 부처님이 가르친 그 참성품을 알아라, 성품을 발견해라, 성품을 찾아라 이런 말씀을 듣지 않았다 할지라도 우리 인생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뭐 가질 게 있나. 이 육신이 고대로 무슨 영원히 산다거나 그렇지 않으면 늙지 않는다거나 뭐, 아프지도 않는다거나 영원히 사는 거라면 그런 생각 할 것도 없죠. 부처님 말씀이 아니더라도 우리 인생관을 한번 검토해 보세요, 안 그런가. 뭐 그렇게 짜드리 욕심을 부려서 내 거라고 쌓아둘 필요가 있으며, 벌써 나왔다 하면은 변해지고 애가 커지면 어른 되고 어른 되면 또 늙고 늙으면 벌써 죽게 되고 이러는데 아, 구태여 뭘 그렇게 쌓을 게 있고, 그냥 남을 눌러 가면서, 못된 짓을 해 가면서 살아야만 하고, 욕을 하고 원수 짓고 그렇게 해야만 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도 진리는 있었다.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도 모든 생명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에너지가 있는 거예요. 그 모든 생명이 있기 때문에 에너지라고도 하고 원소라고도 하고 여러 가지 성품이라고도 하고 이러죠. 너무 그 생명체들이 많으니까 한데 합쳐서, 생명이라는 소리는 똑같은 생명이니까, 낮은 동물이고 높은 동물이고 간에, 무정물이든 어떤 거든지 생명 없는 그 물체는 하나도 없으니까 종합해서 이것은 바로 공이니라. 멈춰 있는 공이 아니라 돌아가는 공이니라. 그래서 먼 데서 찾지 말고 너희들 사는 너한테서 찾아라. 하루 24시간 살 동안에 네 마음이 몇 가지로 변하고 네 말이 몇 가지로 달라지고 네 행이 몇 가지로 달라지나, 한번 하루 동안을 지켜봐라. 누가 그렇게 해서 시켜서 그렇게 하는지. 어디서 나오는지. 그걸 지켜보면은 이 대의적인 이 시공이 없는 이 대공의 이치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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