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를 받아 정진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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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몇 년 전부터 어느 스님에게 '무' 자 화두를 받아 정진하고 있는 불자입니다만 진전이 없어서 갑갑하기만 합니다. 어쨌든지 간에 이 도리를 알고 가기는 해야겠는데 어찌해야 좋을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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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우리 불가에서 불법을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참으로 참혹한 일들이 많습니다. 화두를 받았다 하고 그것을 들고선, 자기도 들 게 없거늘, 자기도 공했거늘, 그것을 들고서 온종일 '아이구, 이 뭣고? 이 뭣고?' 이렇게 들고 10년 20년 가면서도 그 뜻을 모르고 돌아가다가, 이 몸이 떨어지면 말도 떨어지고 입도 떨어질 것을….
우리가 딴 데서도 그렇고 화두를, 이 뭣고 화두나 무자(無字) 화두나 시삼마 화두를 받아 가지고 공부하는 분들이 많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가르치는 분들은 허물이 없고 잘 가르치시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께서, 예를 든다면 벌써 무자 화두나 이 뭣고 화두나, 화두를 어느 스님께서 주셨다 하면은, 그 어느 스님께서 주셨다는 생각 그 자체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의식으로 벌써 그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둘이 되는 것입니다, 벌써. 둘이 되는데다가 또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착을 둡니다. 그러면 벌써 그릇돼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즉, 방하착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릇되게끔 착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여러분이 난 것이, '이 육신을 가지고 나온 것이 공이자 색이고 색이자 공이니까, 그대로 그 공이 화두니라.' 한 겁니다. 내 이 육신 나온 것이 화두자 공이고 공이자 화두니까, 화두를 드는 게 아니라, 공이니까 지금 원형을 이루고 돌아가고 있다 이겁니다. 과거심과 현재심으로 돌아오고 미래도 아직 가지 않았으니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그대로 내가 있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고정됨이 없이 공하였으니, 공에서 나오는 것을 화두로 삼고 그대로 공에다 일임해서 맡겨 놔라.' 이겁니다. 일일이 그것을 맡기다 보면은 그것이 바로 진실로서의 내 참나를 발견하고 찾는 데 극히 아주 지름길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공했다!' 이거는, '색이자 공이요, 공이자 색이다.' 이런 것은 '프로펠러가 돌아가듯 그렇게 돌아가는 데에 먼지 묻을 것이 뭐 있는가?' 이겁니다. 육조 선사께서 '틀이 없는데 거울이 어디 있으며, 거울이 없는데 먼지 앉을 게 어디 있느냐?', '테가 없어서도 아니고 있어서도 아니다.' 하는 뜻은 뭐냐? 없다고 하면 없는 데 치우치고, 있다고 하면 있는 데 치우치기 때문에, 그것은 없어서 없는 게 아니라 그렇게 빠르게, 그 프로펠러가 돌아가듯 그렇게 빠르게 돌아가니까 먼지 앉을 게 없다 이 소립니다. 그래서 '무!' 했던 겁니다.
세상은 그렇게 빨리빨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돌아가고 있는데 사람의 마음은, 사량적인 마음은 이런 게 어떠니 저런 게 어떠니, 내가 했느니 내가 줬느니, 항상 그렇게 하기 때문에 그것이 업보가 되고 또는 유전이 되고 윤회에 끄달리고 그런 문제점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지어서 긁어서 부스럼을 내고 아프다고 울고, 또는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어 놓고 '그것은 또 무엇인가?' 하고 관한다면, 이것은 일치되는 그 한마음이, 즉 부(父)와 자(子)가 상봉할 수 없는 그런 일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진짜로 자기가 자기 심봉을 믿지 못한다면은 그것은 아예 세세생생에 끄달릴 것입니다. 진짜로 믿어야 합니다. 진짜로 믿고 물러서지 말고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항상 거기에서 무한의 그 능력이 나와서, 불가사의한 문제가 나오더라도 '아, 참 이럴 수가 있나. 참 감사하구나.' 또 어떤 게 나와서 모르걸랑은 '아이구, 이렇게 광대한 것이 나왔는데 나는 도대체 알 수가 없으니 이게 무엇인가?' 그때 의정을 내는 겁니다. 아니, 내 심봉, 즉 말하자면 내가 가지고 있는 참 심봉을 의심을 하면은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의정, 바로 내 심봉을 의정을 내서가 아니라, 내 심봉을 진짜로 믿되 만약에 거기서 나오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의심이 났을 때 의정을 내는 거란 얘깁니다.
그러니 진짜로 믿고 물러서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거기다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맡겨 놔야 그것이 프로펠러 돌아가듯 그렇게 돌아가면서 우리는 바로 그 모든 일체를 요리를 해서 용탕도 먹을 수 있고 개구리탕도 맛을 볼 수가 있고, 천탕 만탕 다 맛을, 천 가지 만 가지 맛을 볼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맛이 좋다 나쁘다 할 수 없으리만큼 돼야 '무' 소리가 나옵니다. 그리고 여여하다는 말이 나오는 거지, 덮어 놓고 사량으로 알고 '무!' 해서도 아니 되고, 덮어 놓고 사량으로 알고 이해만 하고 여여하다고 말해도 그것은 한데 떨어지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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