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리 모르고 죽는다면 사후는?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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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도리 모르고 죽는다면 사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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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우리가 마음도리를 모르고 죽는다면 사후에 어떻게 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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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예전에 치악산 상원사에서 있을 땝니다. 그때 한철, 작대길 들고서 버섯을 따러 다녔습니다. 어느 날 버섯을 따러 갔는데 아, 가랑잎이 그냥 수북하게 쌓여 있어요. 그 가랑잎을 헤치면은 싸리버섯들이 굵은 게 많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헤치려고 작대기를 들다가 멈췄습니다. 왜 멈췄느냐 하면은 그것을 헤치면 반드시 뭐가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그걸 헤치지 않고 돌아서 이렇게 가려 하니까 날 멈추게 했습니다.
 
그래서 왜 멈추게 하나 하고 생각을 순간 해 보니까요, "당신을 만나기도 어려운데 어찌 그냥 가시려 합니까? 내 말 한마디 듣고 가십시오." 한 겁니다. 그래서 헤치기도 싫고 그래서 안 헤치고서 나는 나대로 "넌 어쩌다가 그렇게 내가 싫어하는 그 모습을 가지고 나와 가지고선 그러니? 마음은 다, 물론 그 살림은 살림대로 똑같지마는 모습이 나는 징그러워."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하는 소리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내가 이 상원사 절의 중이었는데, 내 토굴 내려가기 이전에 고 밭이 있습니다. 밭에 그전에 암자가 있었는데…." 그 얘길 합니다. 암자가 있었는데 상원사에서 아파서 죽게 되면 그 암자로 내려왔답니다, 병자는. 그래서 그 암자로 내려와서 죽게 돼서 죽었는데 그때에, 죽기 전에 그 암자의 수좌로 있다가 주지도 하고 이랬답니다. 그래서 주지가 됐으면 그 돈 들어온 거 모두 모아서 비석도 다시 해 세우고, 그러니까 나무로다 했기 때문에 전부 썩고 갈라지고 쪽이 떨어지고 이랬거든요. 그런데 인제 그게 망가졌는데도 불구하고 돈이 모자란다는 구실로다가 그걸 못했다 이겁니다.
 
못하고 병이 들어서 그냥 죽게 돼서 죽었는데, 죽고 나서 보니까 거기에서, 그 자리에서 맴을 돌다가, 예를 들어서 이 중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래서 절 근처로 맴을 돌다가 어디 이렇게 들어가니까 돌기둥에다가 돌받침에다가 그냥 그렇게 좋은 참 튼튼한 집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마음에 '여길 들어가서 살면 공부를 하겠구나.' 이렇게 생시에 마음먹은 대로, 그렇게 공부를 하러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려고 들어가다 보니까, 들어가고 얼마 안 돼서 이게 자기는 자기의 그 감각을 몰랐답니다. 그랬는데 "오늘 지금 현재 당신을 만나고부터 내가 이렇게 된 걸 알았습니다." 이거예요. "그러니 나를, 이 모습을 벗겨 주고 가십시오." 이겁니다. 그러고도 그 돈 해 놨던 거를 그냥 그 다락의 어느 벽에다가 넣어 놓고선, 벽지로 발라 놓고선 그냥 갔답니다. "그랬으니 그것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러니, 그 죄를 많이 지어서 내가 이 모습으로 이렇게 돼 가지고 스님까지도 내 모습을 보기 싫어하는 그런 모습으로 타고 났으니 이 모습을 벗겨 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말을 했어요. "전자의 중도 없고, 전자의 중도 없었는데 그 돈은 어디 있으며 지금 그 모습은 어딨겠느냐." 했습니다. "다만 지금 말하고 있는 그 자체가 순간 붉게 핀 꽃과 같은 것이다." 그런 얘기를 한마디 던지고선 나니까, 한숨을 후욱 쉬면서 "참 감사합니다. 인제는 이 순간 옷을 벗게 됐습니다." 하고 수풀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한두 건을 본 게 아닙니다. 절 근처로 가면 절 근처에, 또 양이나 돼지 기르고 소 기르는 데를 가면 그 근처에, 사람 사는 근처엘 가면 사람 사는 근처에, 어떠한 집 근처라면 집 근처에, 그저 여기저기 가면 발에 걸리느니 걸려요. 그러니 여러분만 살았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왜 그렇게 됐는가. 우리가 이 공부를 안 하면 무서운 도리가 있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그 학으로서 배우고 염불이나 하고 이렇게 해서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그 도리를 모르고, 둘이 아님을 모르고, 둘 아닌 데서 참나라는 것이 있는 거를 모르고, 우주 전체와 나와 더불어 같이 있는 거를 모를 때, 비로소 너무나 애석한 것은 우리가 이 도리를 모르고 만약에 이 옷을 벗는다면 식(識)만 있지 분별이 없어요.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식만 있어요. 분간을 못합니다. 지금 현재에 아주 눈과 귀를 싹 싸매 보세요. 여러분이 금방 지금 그 자리에서 죽었다면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부닥침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와 같이 식만 남았으니 지금 그것을 증명해 보시려면 지금 아주 오관을 딱 가려 보세요, 귀도 막고 다. 그럼 어떻게 하시렵니까?
 
사람은 눈 아닌 눈이 있어야 하고 귀 아닌 귀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분별을 하죠. 그리고 책정을 하고 판단을 해서 내가 이렇게 해야겠다는 뭐가 있지요. 그런데 도대체 식만 남아 가지고서 아니, 보기를 하나, 듣기를 하나? 사람이 사람인지 짐승인지 그 도리를 몰라요. 집이 어떤 집인지, 요만한 굴속인지 큰 집인지 그것도 몰라요. 그 굴속도 크게 보이죠. 그리고 기와집으로도 보이고 아주 그 보석으로도 보이고 이렇게 하니 눈이 없다 이겁니다. 욕심에 꽉 찬 그 눈은 바로 식만 남아서 생시에 살던 그 식으로서, 좋은 것만 가지려고 했던 그 식만 남아서 그저 이, 하다못해 돌 틈을 봐도 그 돌기둥으로 보고 돌집으로 보고, 공부를 하겠다고 들어갔으니 그렇게 될 수밖에요. 그러니 여러분이 지금 보이지 않는 세계라고 해서, 지금 살았다고 해서 그걸 아무렇게나 생각할 수는 없죠. 그저 값싼 말로, 붙을 데가 없는데 뭐 붙을 게 있어서, 내가 없는데 뭐 붙을 게 있느냐고 이렇게들 허영 말해 버리고 마는데 그 무서운 도리는 누가 처리할까요.
 
그래서 옛날에도 참 여러 가지 많은 것을 보아 왔고 그랬는데, 옛날에도 사람이 죽으면 재를 이렇게 놓거나 쌀을 놓거나 그래서 뭐가 됐나 하고 볼 때에 새 발자국도 있고 뱀이 기어 간 것도 있고 또 사람 발자국도 있고 별의별 발자국이 다 난다 합니다. 그것이 왜 그렇게 됐는가. 그것이 식만 남아서 자기가 분간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아까 얘기한 거와 마찬가지로 눈 가리고 귀 막고 코를 막아서 만약에 그렇게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와 똑같습니다. 그래서 암흑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밝은 불빛을 못 봐요. 내 마음의 불빛이 없으니 어찌 보겠습니까? 그래서 일로도 가고 절로도 가고. 부처님의 그 뜻은 만사만생이 다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고 이렇게도 되는 원리가, 누구가 잘되고 싶지 못되고 싶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못되고 싶어서 못되는 게 아닙니다. 자기가 눈이 없고 귀가 없으니깐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그게 얼마나 무서운 법입니까?

그러니 그 식에 의해서, 우리가 이 공부의 도리를 모르면 그렇게 우리가 눈 가리고 코 막고 귀 막고 다 이렇게 아주…. 송장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분별하겠습니까? 고거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금방 이 자리에서 죽었다 하면은 그것은 썩지도 않은 그 송장이 왜 보지 못합니까? 죽었기 때문입니다. 의식이 없습니다. 분별이 없습니다. 선천적인 식만 남아서 이리저리 이렇게 자기가 분간을 못하고 캄캄하니까 암흑인데 어떻게 발을 한 발 떼어 놓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무서운 도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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