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은 믿음으로 공부하고 싶어요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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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은 믿음으로 공부하고 싶어요

본문

질문

공부를 해나가다 보니 자신에 대한 믿음이 많이 강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확실히 믿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자신이 없어지곤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한결같은 믿음으로 공부를 할 수 있을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우리는 생각하는 데에 이게 금방 믿었다가도 다른 큰 일이 생기면은 금방 그 믿었던 마음이 변하죠. 변할 때 그 지장이 얼마나 있는지 몰라요. 그거 모르실 거예요. 핏줄이 이렇게 돌다가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고 또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고 그러면 그 몸뚱이가 제대로 돌아가겠어요? 그와 같이 믿었다 안 믿었다 이렇게 그냥…. 이것이 그냥 뿌리가 있으니깐 있다. 그냥 있는 거예요, 그냥. 있는 건데 그렇게 사람의 마음이 간사해서 항상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못 믿는 거죠. 그리고 큰 일이 생기면은 자기 생각에 그런 거죠. '이런 거는 정말 될 수가 없는 거다.' 이렇게 생각이 또 되거든요. 이런 거는, 될 수가 없다 이런 거는 자기 생각에 그런 거지 딴 사람 생각이 그런 게 아니에요. 그리고 부처님의 뜻에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니고 그건 자기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자기 생각에서 그 간약한 마음이 나오는 거를 그 간약하지 않게끔 하려면은 자꾸 관해서 너만이 그렇게 가냘프고 마음이 약하고 믿지 못하게 만들지 마라 하는 조항도 있어야 되겠죠.
 
여러분이 이 스님네들한테 말 듣는 것만 가지고 깨친다 이러지 마세요. 너무도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금은 금 있는 데 들어가서 녹이지 딴 거 넣습니까. 무쇠는 무쇠대로 무쇠 있는 데 무쇠가 들어가서 녹고 물건이 되지 딴 거 들어갑니까. 구리에는 구리가 들어가고 별의별 문제, 별의별 천차만별의 문제들이 그렇게 차원에 따라서 끼리끼리 만나게 돼 있죠. 사람들도 그렇게 끼리끼리 만나게 돼 있고요. 사람을 생산해서 자식을 낳는데도 그렇게 끼리끼리 만나게 돼 있고요. 이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깨치고 보면 한 나절을 울어도 시원치 않고 한 나절을 쳐다보고 웃어도 시원치 않다는 얘기가 있죠. 그래서 부처님께서 얼마나 가르치기가 어려우면 자기 제자들하고 같이 순행을 돌다가, 예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그냥 갖다가 그 관에 담아서 놓기도 하고 거적으로 말아서 이렇게 갖다 놓기도 하고 그래서 새들이 모두 쪼아 먹기도 하고, 외려 골을 빨리 쪼아 먹으라고 터뜨려서 놓기도 하고, 이런 시대가 있었거든요. 그런 시대에 부처님께서 그 뼈다귀 놓인 거 보고서 그렇게 진실하게 절을 하시거든요. 그러니까 따라갔던 그 제자들이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저분은 참 모자라니까 저렇구나.' 하는 생각도 했을 거고, '저렇게 지덕이 있고 저렇게 깨치신 분이, 사생자부이신 분이 어떻게 저 뼈다귀에다 절을 하는가.' 이렇게 생각했을 거란 말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모르니깐.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걸 "우리 할머니일 수도 있고 할아버지일 수도 있고 부모일 수도 있고 형제일 수도 있다." 이 말 한 마디로서 이 세상의 일대사, 즉 말하자면 미생물에서부터 수없는 겁을 거쳐 나오면서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고 이렇게 돌아가면서 그 지탱을 한 그 이치를 다 아시고 그걸로다가 가르치신 겁니다. 그러니까 눈뜨고 이게 이치를 아는 사람은 그 말을 듣고 얼른 '아, 이거는 이런 거구나.' 하고 빨리 깨닫지만 그 눈을 뜨고 귀를 뜨지 못한 사람들은 그거를 듣고도 그냥 그런가보다 이렇게 했고, 지금으로 치면 '저 스님 돌았잖아. 저거, 저거 어떻게 잘못 된 거 아냐?' 이렇게 생각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거든요. 이게 말이 그렇지, 내 부모 아님이 없고 내 자식 아님이 없고 내 형제 아님이 없느니라. 이거는 사람뿐이 아니라 이 흙속에 있는 생물도 다 생명이 있고 나무가 서 있는 것도 다 생명이 있고 돌이 서 있는 것도 다 생명이 있느니라. 그러니 어느 거 하나 빼놓은 게 없다 이거죠. 그러니 이 이치를 어찌 그 말로만 듣고 다 알겠습니까.
 
그래서 예전엔 깨치는 거를 그렇게 제일로 쳤죠. 너는 껍데기니까 네 알맹이를, 말로 막하자면은 네 껍데기를 보고 너라고 생각지 말고 네 알맹이를 찾아서 진짜 너를 찾아보아라. 너를 찾아야 이 물질세계와 이 무의 세계가 같이 혼합이 돼서 돌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 세상이 어떻게, 진리가 이떻게 돌아가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천차만별의 물질들이 전부 그냥 차원에 따라서 인연이 돼서 만납니다. 그런데 생각들 해보세요. 어른들은 자식들을 자식들은 어른들을 이렇게 해 가면서 원망을 하면서 살죠. 때로는 원망을 하고 때로는 고맙기도 하고 때로는 별의별 생각을 다 해보고 살죠. 환경에 좇아서 말이에요. 그런데 끼리끼리 무쇠는 무쇠대로 들어가서 만남이 있었다 이런다면 무쇠끼린데 무엇을 원망하고 무엇을 미워하고 예뻐하겠어요. 서로서로에 똑같은 인연들인데. 자기 부모가 금이라야 금이 돼서 들어가고, 금 될 수 있는 가치가 있어야만이 금이 금으로 들어가고, 무쇠는 무쇠로 돼 있으니까 무쇠로 된 것이 나한테 오는 거고 그렇게 오는 겁니다. 그러니깐 천차만별로 돼 있는데다가 사람뿐이 아니니라. 사람은 사람의 모습만 사람이 됐지 진짜 사람으로 된 게 아니니라 이거예요. 그러니까 사람이라는 말은 들어갔어도 아직 사람이 못 돼서, 그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사람이 되고 짐승이 다시 또 도로 된다 이거죠. 정말 우리가 이렇게 움죽거리고 사니깐 이게 사는 건가보다 하고 그냥 이렇게 살아나가지만 이게 적지 않은 인생이 살아나가는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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