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법을 공부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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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저는 마음과 기를 함께 닦아야 한다고 해서 조식수련법, 즉 호흡법을 공부하고 있는데요, 좌선하고 있으면 아무 생각이 안 나고 숨만 느껴지고 배 속에 이상한 변화가 느껴지는데 더 어떻게 공부해 나가야 할지 가르침 바랍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아니, 자동적으로 기가 있는 것을 사용하는 건데, 내 마음으로서 내 몸뚱이 속의 자생 중생들에게 신호를 보내면 자생 중생들이 모자라는 건 채우고 작용을 하는데, 뭣 때문에 호흡 들어가고 나가는 데 거기다 기준을 둡니까. 아니, 호흡을 내쉬고 들이쉴 수 없으면 죽는 거고, 들이쉬고 내쉴 수 없으면 죽는 거 아닙니까. 아니, 그런 죽는 법을 왜 합니까. 내쉬고 들이쉴 수 없으면 죽고, 또 들이쉬고 내쉴 수 없으면 죽잖아요. 그런데 그 내쉬고 들이쉬고 하기 이전을 지금 말하는 겁니다. 목숨은 내쉬고 들이쉬는 그 가운데 있는 것이 목숨이에요. 우리가 그렇게 들이쉬고 내쉬는 것 지켜보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들어갔다 나갔다 해요. 그렇게 자동적으로 해 주는데도 불구하고 그게 미심쩍어서 지키고 있어요? 그냥 놓으세요.
이 몸은 집합소예요. 생명들의 집합소. 그리고 심부름꾼이자 관리인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내가 아니에요. 더불어 나지. 그러니까 몸속에 있는 생명체들하고 같이 더불어 하나에요, 개개인이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고. 따로따로 있지도 않고 한데 있지도 않고. 그러니까 둘이 아니게 한마음으로 돌아가니까 내가 밥 한 그릇을 먹어도 내가 혼자 먹는 게 아니고, 둘이 아니게 한마음으로 한데 뭉쳐서 먹는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 잘못도 네 잘못도 하나도 없게 되는 거죠. 잘못해도 같이 잘못하는 거고 잘해도 같이 잘하는 거고.
그런데 살다 보면 몸이 떨어져요. 우리가 헌 옷 벗어버리듯 떨어집니다. 떨어지면 말도 떨어지고 배 속에 있는 모든 게 같이 떨어져 버리죠. 이거 보세요. 내 마음은 길잡이요, 선장이요, 선장이 다스리는 채찍과 같은 겁니다, 마음이. 그런데 배 속에 있는 생명들에게 오히려 선장이 말리면 배를 어떻게 끌고 갑니까. 지금 몸이 배라고 한다면 몸속에 모든 자생 중생들이 들어 있는데 선장이 배를 끌고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선장이 오히려 그 배 안에 탄 중생들한테 말려 들어간다면 어떻게 선장이 채찍질을 하면서 배를 몰고 가겠느냐 이 소립니다.
'변화가 있으면 변화가 없게 하는 것도 너니깐 변화 없이 작용을 잘해서 모자란 거 잘 채워서 건강하게 해서 끌고 가.' 이렇게 하면 되지, 뭐가 그렇게 하나하나 건건수가 많습니까. 지금 살기도 바쁜 세상에 어떻게 종교마저 그렇게 바빠야 하고 그렇게 이론이 많아야 합니까. 아니, 그렇게 생각이 부질없이 많아서 어떻게 편안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무조건 네 나무 네 뿌리를 믿어라 이겁니다. 네 나무는 네 뿌리를 믿어야 그 네 뿌리에서 에너지를 흡수해서 올려 보냄으로써 푸르르게 살 수 있고, 꽃이 필 수 있고, 열매가 맺을 수 있고, 그 열매는 무르익을 수가 있고, 무르익어서 만 가지 맛을 내게 할 수 있고, 그래서 만 가지로, 천차만별로 살아나가는 중생들에게 다 공급할 수가 있다 이런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다가 그냥, 내 마음의 불바퀴에다가 그냥 모든 걸 맡겨 놓으라는 겁니다. 맡겨 놓고 '잘되게 하는 것도 너니까 못되게 하는 것도 너다. 그러니 네 심부름을 잘하게 하려면 잘되게 해야 되지 않아?' 하고 거기다가 맡겨 놓으란 말입니다. 맡겨 놓는 버릇을 해 보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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