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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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평소에 아픈 데도 없고 그런데 가끔씩 죽고 싶은 생각도 들고 그러다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마음공부에 있어서 죽는다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극한 상황에서는 죽는다는 게 어렵기도 하고요. 어쨌든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그냥 죽는다고 해서, 죽는 거 겁 안 낸다고 해서 잘되는 게 아닙니다. 지금 이 의식을 가지고, 이 차원의 그릇을 가지고 죽어 봤자죠, 뭐. 그 차원밖에 더 돼요? 그러니까 아예 죽더라도 아주 야무지게 알고 죽어야 값비싸게 그것도 옷 벗는 거다 이겁니다. 그냥 내가 옷 벗고 싶다고 해서 아무 때나 옷 벗는다고 장한 게 아니고요. 그러니까 옷 벗을 힘이 있는 것은 자유스러운 마음에서 옷을 벗고, 즉 말하자면 자기가 알준하게 이 도리를 알고 만약에 옷을 벗는대도 옷을 벗으면 좋은데 옷을 벗기 전에 알아야 하는 게 열반계예요, 이름해서. 옷을 벗기 전에 알아야지 옷을 벗고 나서 알았다는 거는 안 게 아니에요. 사람이 살아 있으면서 죽어야 진짜 죽은 거지, 살지 않고 옷을 홀딱 벗고선 죽은 게 죽은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니 그 둘이 아니게끔 공부하는 것이 마음으로도 천백억화신으로도 나툴 수 있고…. 아이, 그게 숫자가 없는 숫자다. 천백억이 아니라 숫자가 없는 걸 천백억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요걸로다가 찾는 사람이 있으면 요게 돼 주고 조걸로 찾는 사람이 있으면 조게 돼 주고, 아파서 찾는 사람이 있으면 의사가 돼 주고 가난해서 찾는 사람이 있으면 관세음이 돼 주고, 이렇게 나투는 이 자체가 바로 죽어야 그렇게 나툴 수 있는 거죠. 살아서 죽어야 돼요, 그것도. 죽어서 죽는 게 아니고 살아서. 옛날에 한암 스님이 눈 뜨고 삼 년만 자라고 하신 그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눈 뜨고 잠을 자라고 그런 것이 뭔 줄 아세요? 지금 모든 작업을 하라는 거 아니에요? 네가 사는 게 아니라 네 주인공이 뚜렷하게 있으니 네 주인공의 심부름꾼으로 알고 그냥 거기다가만 놓고 가는 게 푹 자는 거예요. 쉬는 거고. 이유를 붙이지 않고. 이게 옳으냐 이게 그르냐 하고 따지고 이렇게 생각하는 거는 이유가 들어가서 벌써 놓는 게 되지 못해요. 이걸 생각해서 한생각에 '아, 이게 옳지.' 그런다면 그냥 거기다 맡겨 놔요. '이게 그르지.' 그런다면 그른 것도 거기 맡겨 놓고. 왜냐하면 그르게 된 것도 옳게 될 수가 있는 거니까. 그래서 옳게 되는 것도 거기 놔라 하는 것은 옳게 된 것이 좋다고 했으면 언짢게 된 게 거기 붙으니까 그것도 놔라 이런 거죠. 그래서 죽더라도, 죽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이 공부를 다 하고 내 마음대로 죽을 요량을 하세요.
살아난 것도, 답답한 것도, 망상도 그놈 속에서 나오지 다른 놈 속에서 나오나요? 그러니까 자는 거, 다니는 거, 밥 먹는 거, 똥 누는 거, 그냥 내가 생각하는 거, 보는 거, 듣는 거, 모든 게 한 놈 속에서 나옵니다. 한 놈 속에서 벌어져요. 이 주먹 속에서 벌어진단 말입니다. 근데 뭐가 어렵습니까. 체가 없고 걸리는 것도 없는데 뭐가 어려워요? 거기다가 놓는 작업을 하다 보면은 가슴에서 탁 '흥, 그러냐?' 이래 대답이 나옵니다. 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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