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가 교리가 아닌 사실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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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일반 사람들은 사람이 한번 세상에 태어났다 죽으면 그것으로 그만인 걸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처럼 기계문명이 발달하여 편리한 세상을 향락적인 삶으로 끝내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불교에서는 윤회와 업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윤회의 가르침이 부처님 말씀으로서만 그런 게 아니라 사실인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말의 느낌이 문제지요. 누구나 진화하고 윤회하는 건데 그건 하루 24시간 동안만 잘 살펴보아도 알 수 있잖습니까. 찰나찰나에 자동적으로 변해 돌아가는 현생의 삶 또한 윤회라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죽고 산다는 게 문제예요. 모두들 죽는 걸 덮어놓고 깜깜한 무(無)로만 알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그건 죽는다기보다 옷을 벗는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이죠. 또 살면서 닥치는 모든 어려운 일도 자기가 업보를 지어서만이 아니라 자기를 성숙시키는 과정으로 그러는 거란 말입니다. 생각을 좀 돌려 보세요. 그러면 윤회에 말리는 게 아니라 윤회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윤회가 곧 진화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아무튼 그냥 물질 본위로만 나가니까 거듭거듭 다시 태어나야 되고, 거듭거듭 무리를 지어서 나와야 하는 거죠. 그래서는 축생도 됐다가 사람도 됐다가 아주 하치의 중생도 되고들 그럽니다. 그것이 바로 중생이라는 거예요. 남을 우습게 생각하거나 남의 생명을 가볍게 생각하여 막 죽이고 그러는 것은 전자의 습에 의해서 그렇게 나오는 건데, 그렇게 나오는 것을 자기가 지금 가다듬어서 자재할 줄 모른다면 윤회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윤회가 없다고는 할 수 없죠. 악하게 했으면 악하게 받고, 선하게 지었으면 선하게 받고…. 이렇게 그냥 금방금방 돌아오게끔 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한 시간 내에 받느냐 열 시간 내에 받느냐 일 년 후에 받느냐 천 년 후에 받느냐 이게 다를 뿐이지요.
그런데 부처님은 ‘태어나고 안 태어나고를 떠나라.’ 하는 걸 가르치신 거거든요. 그냥 자유자재하게 태어나고 싶으면 태어나고 태어나고 싶지 않으면 태어나지 않고 그러지, 그 속에서 노예가 되지 말라는 얘깁니다.
부처는 자유인이고 중생은 노예예요. 지금도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긴 했어도 부처는 아니다 이런 말입니다. 그건 왜냐하면 부처로는 났는데 인연 따라서 온 업은 어떡하냔 말입니다. 그래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예전에 살던 습의 인연에 의해서 자꾸 생각이 나게 되죠. 이 마음이 생기게도 되고 저 마음이 생기게도 되고, 때에 따라서는 아주 순한 양처럼 됐다가도 금방 약하게 확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나는 그 모든 걸 지금 놓으라는 얘깁니다.
순한 양처럼 되는 마음도 놓고 악하게 나오는 마음도 놓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한마음으로 순응한다 이거예요. 그래서 항복을 받는다는 얘기지요. 그러질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물질 본위로만 자꾸 나가 보니 뭐가 되겠습니까.
생각하기에 달린 겁니다, 윤회도. 뭐 딴 무엇이 윤회나 업보를 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만들어 놓고 자기가 말리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자기가 부처가 되려면 부처가 되는 거고, 중생이 되는 것도 자기가 되는 거고 그래요. 중생이 되어 거듭거듭 새로 태어나는 것도 다 자기가 만들어서 그렇게 되는 거고. 그 반면에 우리가 윤회의 원리를 깨달아 자재권을 갖는다면, 영체로서 수십만 명을 내보낼 수도 있고 들일 수도 있는 거죠. 그러니 예전에는 육신으로 다니면서 불국토를 지킨다고 그랬지만 지금은 불국토를 지키려면 영체 아니고는 못합니다. 사람의 눈에만 띄었다 하면 문제가 생기니까. 깨닫기만 하면 윤회에도 끄달리지 않고 마음대로 일체를 포용해서 쓸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공부를 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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