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심을 내지 않고 살아가려면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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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심을 내지 않고 살아가려면

본문

질문

근본에 항상 집중하려고 하고 오직 근본에 들이고 내는 생활을 해 나가려고 노력하지만, 생활 속에서 보고 듣고 말하는 그 순간 저도 모르게 분별하고 판단하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근기가 부족해서인지 24시간 분별하지 않고, 오직 근본으로만 들이고 내는 것이 너무 힘이 듭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자괴감도 들고, 나는 어쩔 수 없는 존재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분별심을 내지 않고 살아가려면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할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우리가 이 인간으로 살면서도 마음을 잘 쓰면, 잘 쓴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포함해서입니다. 여러분을 이렇게 겪어 보니까 그걸 너무도 잘 알겠어요. 이거는, 이렇게 보고 들이는 것도 자기가 하는 거고, 이 속에서 나오는 것도 자기한테서 나오는 건데 그거를 분리해서 자꾸 생각들을 한단 말입니다. 공부하는 사람들도 ‘주인공 속에서 나오는 것은 맞고 내가 생각하는 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고요. 그런데 내가 지금 현실에 생각하고 가는 것도 그놈에서 나오는 거요, 이 속에서 나오는 것도 그놈이 하는 겁니다. 들이고 내는 게 그놈이 하는 건데….

그것은 인제 왜 그러냐. 이 속에서 스스로 나오는 참자기의 뜻이 아니라면 겉으로 보고 사량으로 돌리는 게 어두워. 요렇게 요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요거는 이렇게 이렇게 할 생각이 돌지를 않는 거예요. 그러니 이게 돌질 않으니 어떡합니까, 글쎄? 하나하나 이건 말로 이루장창 할 수가 없는데, “아이, 스님!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할 텐데 이렇게 이렇게 됐으니 어떡합니까?” 이러면 야, 내가 생각할 때는 자기가 분명코 생각을 해서 그렇게 한 건데 생각이 엉뚱나가게 돌아가고 있어요, 생각 자체가. 어떻게 사람으로 돼 가지고 생각이 그렇게 엉뚱나가게 안 나느냔 말입니다. 간단하게 해치울 것도, 간단하게 해치우면서도, 그것이 바로 거기서, 두 놈이 아니고 그 한 놈도 없다고 만날 말을 하는데도 아이, 그걸 두 놈으로 갈라놓고선 이건 사량이고 이거는 내 주인공이 하는 거라고 이렇게 생각을 한다 이겁니다. 주인공이 하는 것도 없고 내가 사량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 도리를 알아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래야만이 사방이, 사방천이 밝아서, 참 스스로 오온이 밝아서, 칠보가 정말 가득 차 있어서 내가 그대로 자유권을 얻고 해야, 이것이 바로 시민권이거든요, 이게.  그래서 바로 용을 한다는 얘기죠.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는 항상 이게 끄달린단 말입니다. 그리고 끄달리는 중에도 또 이런 문제가…. 예를 들어서 누가 남편이 일을 갔는데, 석 달 기한을 하고 일을 갔다 이겁니다. 그런데 “스님, 거길 가니까요, 애 아빠가 그냥 먹질 못하고 일은 고되고 그래서 아주 그냥 뭐 다 죽게 생겼어요.” 그런단 말입니다. “그래? 그래서 그냥 갔던가?” 그러니까 “네.” 이렇게 답답할 수가 있어요? 여자로서, 아내로서 남편에게, 자식이든지 남편이든지 그걸 불문에 붙이고 그래, 가는데 먹지 못하는 거 번연히 알면서, 일 고되다는 거 번연히 알면서, 여기에서 굶어 죽는 것도 아니고 벌어다가 그래도 예금통장에 조금이라도 넣고 사는 사람이, 그래 맨손으로 그냥 가? 아, 생각해 보세요, 글쎄. 아니,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갑니까? 그런 일에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간다면 다른 일은 어떻게 하느냐 말입니다, 도대체.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뚜껑과 이 통이, 똥그랗게 된 통은 똥그란 뚜껑이라야 맞고, 네모가 난 통이면 네모 뚜껑이 맞는다. 그것이 맞지 않는 거라면 세세생생에 이것이, 즉 말하자면 지옥이니라.” 이상이 맞지 않는 부부라면 이건 지옥이다 이겁니다. 그러니 거기에서 업을 짓는 거는 더 말할 수도 없거니와 돌부처도 돌아앉게 된다 이 소립니다. 그래서 이 업 짓는 거는 자기네들이 맞지 않게 해 놓고 그렇게 하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경험을 못하고, 경험을 쌓지 못하고, 물에도 들어가 보고 구덩이에도 들어가 봐야 그 깊이를 아는데, 여기저기 다 다니면서 자기가 체험을 해 보지 않은 데에서 나오는 어두운 마음이에요. 밝은 마음이라는 것은 자기가 체험해 보는 데서 무지한 밝음이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연구한다’ 이런 소리도 연구를 거듭거듭 하면서 얼마만큼 그걸 실패를 해 가면서 연구를 하느냐 이겁니다. 그런데 이 공부를 하면서도 자기가 자기의 뜻을 보려고 테스트하는 건 모르고, 어떠한 게 나타나면 그거 또 둘로 보는 겁니다. 아, 어디서 나올 틈이 없어요. 붙을 것도 없고 뭐 붙일 것도 없는데 어디에서 붙어 들어오느냐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 자리에서 나온 거라고 생각을 한다면 그 자리에 다시 놓으면 될 것을, 이걸 둘로 보니까 집안이 형편없이, 자기 마음의 분신이 이것저것 생겨 가지고는 온통 집안에 우환이 끓는 겁니다. 그러니 모든 걸 태워 버리고, 우환을, 가난 또는 병고 이런 것을, 인연 업보 유전, 이런 거를 모두 떼 버리려면 나한테 나 자체가 없어야 됩니다. 붙을 게 없어야 돼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나 자체도 없고 너 자체도 없고, 너다 나다도 없고 중생 부처도 없고, 이것은 이름이 부처요 이름이 중생일 뿐이다.” 그러셨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그 내면의 진의를 몰라서 그냥 바깥으로 끄달리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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