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과 둘 아니게 하나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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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관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책을 보다가도, 남과 대화하다가도 관한다는 생각에 나를 의식하게 되어 오히려 집중이 깨지고 걸림이 되고 있습니다. 분명히 둘 아닌 도리를 말씀해 주시고 모두가 한마음일진대 저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걸림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마음 도리로 대상과 둘 아니게 하나 되어 걸림 없이 공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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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우리가 ‘관하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을 믿고 맡겨 놓으라는 것입니다. 한군데서 들고 나는 거다. 역대를 한군데서 들고 나면서 이렇게 해 왔는데 바깥으로 방황하기 때문에, 그 한군데로 들고 나는 걸 모르기 때문에 돌아가지를 않는 겁니다. 그것을 비유하기를 요새 이렇게 하죠. 용광로에 모든 것을 넣는다면 자동적으로 새 쇠로 생산이 돼서 나오는데, 생산될 걱정까지 하면서 거기 놓지 못하는 것은 자기를 자기가 믿지 못하는 탓이다 이런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빠르고 빠른 세상에 앞장설 수 있는 인등이며, 마음의 향기로운 향이며, 밥 한 그릇을 놓고 바로 다 먹이고도 한 그릇이 되남을 수 있는 그런 중용을, 바로 무의 세계 유의 세계를 같이 계합해서 부처님의 마음과 중생의 마음이 따로 없이 계합해서 중용을 하는 것이 그대로 법이다 이 소리죠. 그러니 관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나올 때, 이런 말들을 하더군요. 자기는 하루 종일 일을 했다 이겁니다. 그런데 모두 달라요. 참선하고 좌선하는 사람들이 모두 마음들이 달라요. 이거는 저녁에 단 한 시간이나 30분 앉았는데 말입니다, 하루 종일 있다가 저녁에 하는 소리를 들으면 전부 끊어졌다는 소리만 들립니다. “아이고, 오늘도 끊어뜨리고 이렇게 잊어버리고 있다. 이러니 언제 공부는 하느냐.” 하고 한탄들을 하거든요. 그래 나는 그때 빙긋이 웃었죠. 왜? 시간과 공간이 초월됐는데, 즉 말하자면 둥근 톱니가 아래 위의 게 마주쳐서 같이 돌아가는데 거기 끊어진 게 붙을 자리가 어디 있고, 이어지는 게 끊어질 자리가 어디 있느냐 이거죠. 그대로 돌아간 건데. 그대로 돌아갔고, 그 24시간 끊어졌다는 생각 하기 이전에, 그냥 그 생각이 순간 날 때에 톱니는 24시간이라는 게 없이 그대로 돌아갔다 이겁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죠.
또 하루 종일 일한 것은 누가 일을 하게 만들었던가요. 내가 있기 때문에 일을 하는 걸 만들었지 누가 딴 사람이 시킨 게 아닙니다. 내가 있기 때문에. 소가 언덕이 있으니까 비비듯, 내가 있기 때문에 상대가 있고 부처가 있고 모두 있는 거지 내가 없는데 뭐가 있을까요? 내가 나를 시자 부리듯이 그렇게 부렸지 누가 부렸을까요? 그놈이 시킨 거지. 그놈이 시킨 거니까, 그놈이 하는 거니까, 그놈의 집이니까, 그놈의 시자니까 어쩔 수가 없는 거지. 그냥 순응해서 따라갈 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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