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과 나무 등에 의지하는 것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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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마을 사람들이 마을의 오래된 나무나 돌 등에 의지하여 소원도 빌고 제사도 지내고 그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돌과 나무를 함부로 대하거나 제사를 지내지 않거나 하게 되면 마을에 재앙이 닥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런 상황을 마음공부 하는 저희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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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이런 예가 있었어요. 어느 큰 돌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사람들이 참 비참하고 그러니까 산골에서 한 마을을 이루고 있으면서 자기들의 그 애절하고 괴롭고 그런 것을 어디다 호소할 수가 없어서 그 돌에다 했습니다. 항상 대대로 내려오면서 누구든지 아쉬움이 있으면은 거기 가서 빌었습니다. 마음으로 호소하고 빌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 돌은 가만히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 마음들이 자꾸 거기다가 호소를 하고 그러니까 그 마음들이 거기 집중이 돼 가지곤 그냥 거기 전체가 한 집단이 돼 버리고 말았죠.
그런데 사람의 혼백이 말입니다, 하나냐 하면 하나가 아니거든요. 거기 그렇게 호소를 하고 마음을 거기다 두었다면 내 혼이 거기도 있고, 내가 이 육체가 나인 줄 알고 여기 있으니까 여기도 있고, 내가 어디에다가 집착을 하고 있으면 집착한 데로 왔다 갔다 하고, 이거는 그냥 무분별하게 분별없이 그냥, 그저 그 혼은 열 개도 됐다 백 개도 됐다 만 개도 됐다가 천 개도 됐다가 하나도 됐다가 하면서 이 짓을 한단 말입니다. 배운 사람들은 알아서 고정되게 두지를 않는데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이 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고정되게 거기다가 아예 착을 둔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빼지도 끼지도 못하는, 용납될 수 없는 문제가 생겨서 그걸 업보라고 하고, 그런 윤회의 걸림에 걸려서 세세생생에 벗어나지 못한다는 문제들이 거기에 많이 걸려 돌아가죠. 생활에서도 많이 그렇게 돌아가고요.
그러면은 그렇게 거기에 집단을 이루고 있는데, 그 집단을 이룬 그것을 누가 모아 놨겠습니까? 그 한 동네에서 모아 놨단 말입니다. 그것은 차원이 높은 유전자라면 별문제가 아닌데 차원이 낮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뭐가 생겼느냐 하면, 거기다가 뭐를 안 갖다 놓으면 동네가 모두 야단법석이 나는 겁니다. 그러니 이 노릇을 어떡하죠? 처음에는 요만한 거 갖다 놔서 해결이 됐다면은, 나중엔 큰 걸 갖다 놔야 하고 큰 걸 갖다 놓다가 안됐으면 그것보다 더 큰 걸 갖다 놔야 하고, 이 지경이 됐다 이겁니다. 그러니 사람이 미신 노릇을 하기 때문에 미신이 생긴 거지 사람이 미신 노릇을 안 한다면 어찌 미신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중에는 그 동네에 가서 그런 문제를 얘기했습니다. “당신네들이 미신 짓을 하기 때문에 그 미신이 있는 거지, 당신네들이 미신 짓을 안 한다면 미신은 없을 것이다.” 하고서 그것을 그냥 아예 팽개쳐 버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동네 못살게 만들어 놓느라고 그런다.” 그럽디다. 그래도 떡도 해놓지 말라고 그러고 모든 걸 아주 싹 없애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동네가 잘살게 됐습니다. 오히려 편안케 말입니다. 그렇듯이 내 마음 가운데 선신도 있고 악신도 있고, 모든 신들이 내 마음 가운데, 내 한 주인공에 있는 거지 어디 딴 데 있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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