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다 줘야만 하는지요?
본문
질문
저는 소도시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불자입니다. 그런데 일주일이면 서너 번 구걸을 하러 오는 분들을 맞게 됩니다. 불자이기에, 더욱이 내가 없는 공부를 하기에 그때마다 고민이 됩니다. 제가 그래도 여건이 될 때마다 형편 되는 대로 드리는 편인데 주위에서는 오히려 저의 섣부른 동정이 그 사람들을 의존하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충고를 듣습니다. 어떻게 대처해야 나와 남이 함께 벗어날 수 있을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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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여러분은 고귀한 생명과 삶을 헛되이 보내지 마십시오. 우리가 살아나가는 데에 마음을 착잡하게 또는 어둡게 두지 마십시오. 영원한 것입니다. 모습만 바꿀 뿐이지, 우리의 이 삶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영원하기 때문에 영원히 남한테 얻으러 다니지 않고, 영원히 담 밑에 돌아가면서 눈물을 흘리고 남한테 짓밟히고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올바로 진실하게, 남에게 주더라도 무주상 보시로 주어야, 내가 상(相)을 두지 않고 주어야 상을 두지 않는 그 물건이 바로 나한테 다 있는 것입니다. 그건 왜냐하면 그것도 한 통장에 있기 때문에.
어느 분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여기서 설법을 한 서너 번 들었답니다. 근데 부모가 일찍 돌아가시고 맏이로서 동생 일곱을 다 키웠답니다. 밥장사를 하고 물장사를 해서 키웠답니다. 그랬는데 키워 놓은 동생들은 언니가 동생들을 공부시키느라고 그렇게 고생하면서 공부도 못 하고 자기네들을 공부시킨 걸 모르고, 그 나오는 것이 핏방울인 줄 모르고 아무렇게나 자기들은 구경 다닐 것 다 다니고 없으면 손 벌렸답니다.
그래서 동생들은 부모만 그리웠지 자기처럼 고생하지 않으면서 잘 공부해서 맞이 맞이 만나서 잘 사는데도 조금만 부족하면 와서 막 압박을 하고, 언니는 그렇게 벌어서 쓰면서 왜 주지 않느냐고 그랬답니다. 그래서 ‘올바로 그 뜻을 알고 나간다면 줬을 텐데, 그럼 좋겠는데….’ 하고 아주 괴로워했답니다. 그랬는데 내 설법을 듣고 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얘, 쟤가 쓰는 것이 바로 부처가 쓰는 거고, 만약에 그것이 아니라면 저 애가 바로 나이기 때문에 내가 쓰는 거니까 그냥 내가 써 보자.’ 하고서 자기도 없는 걸, 장사를 하기 때문에 빚을 져 가면서 사는데도 ‘에라, 이것도 시주다.’ 하고선 집어 줬더랍니다. 주니까는 그렇게 마음이 편안하더랍니다. 그렇게 마음이 편안하다 보니까 그저 조그마한 거라도 또 뭐가 팔려서 그걸 메워 나갔답니다.
그랬다고 하면서 “너무도 고맙습니다. 내 마음을 이렇게 넓게, 부드럽게 사랑할 수 있고 둘로 보지 않게 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이날까지 그 불쌍한 동생들을 키워 왔건만 오늘날에 보니까 내 동생이 언제 적의 내 동생도 아니고 내 동생 아닌 것도 아니고 모두가, 남들이 남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또 쓸 때 쓰는 것이지 그렇게도 내가 안 써야만 하겠다고 할 필요도 없고, 그 애 잘못된 거를 아니, 내가 타이른다고 되는 것도 아니건만 왜 그렇게 내 속을 썩여 가면서 쌈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인제 쌈 안 하렵니다.” 그러면서 고마워하더군요. 그러니 여러분이 남에게 주어서 쓰는 것도 자기가 쓰는 겁니다.
그러나 공자, 노자가 말씀하셨듯이 “얻으러 온 사람도 주지 않을 사람은 주지 않아야 되느니라.” 했습니다. 그건 나도 똑같이 말합니다. 왜 그러냐? 그 뜻을 모르고, 고마운 줄을 모르고 그렇게 함부로 하는 사람 앞에는, 남한테 기대기만 하는 사람, 이런 사람한테는 천만 냥을 보태 주어도 그건 온 데 간 데가 없고, 오히려 반성하는 기간이 늦어져만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주지 않는 것도 덕이 되고 공덕이 되고, 주는 것도 공덕이 되고 이러는데, 모든 게 공덕이 된다 하는 것은…, 우리가 이 한 점의 마음, 여기 바로 중심에 부처가 있다는 걸 아셔야 됩니다. 일체 우리가, 만법의 만 부처가, 그리고 만 생활이 다 이 한 점의 마음에 들어 있기 때문에, 모든 게 나고 들고 하는 것이 이 한 점에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그렇게 살펴서, 오관을 살펴서 오관으로써 모든 걸 해 나가는데 정밀하게 해 나갈 수 있는 건 내 한 점의 마음을 알아야 그렇게 정밀하게 해 나갈 수 있는 거지만, 깨닫지 못했다 할지라도 올바로 진실을 안다면 그게 바로 깨달음의 길입니다.
우리가 진실치 못하고 거짓으로만 나가고 또 나의 어떠한 이름만 가지고서 위대한 어떤 직위만 탐을 낸다면 그것은 바로 나 자체를 모르고 이름만 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상(假想)스러운 인생살이는 하지 않아야 될 것입니다. 나부터 진실하고 나부터 알아야 모든 살림살이가 아마 적당하고 소소영영하게 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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