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충만한 마음의 에너지를 모든 이들을 위해서 쓸 수 있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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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새해에도 큰스님의 법희 충만한 자비의 가르침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기를 발원합니다. 스님의 가르침을 등불 삼아 어두운 사바세계에서 하루하루, 저 자신뿐만 아니라 저를 의지해 살아가고 있는 저희 식솔들을 마음법으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내 안의 무한 광대한 에너지를 마음껏 활용하면서 자유인으로 살아가라고 하셨는데, 저는 제가 하는 일에서조차 제대로 꺼내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술년 새해에는 내 안의 충만한 마음의 에너지를 저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을 위해서 쓸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일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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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부처님 법에 대해서 내가 더 말을 안 해도 이 세상이 돌아가는 거와 일체 만물이 사는 거와 고정됨이 없이 찰나에 나투면서 돌아가는 그 모두를 봤을 때 일체가 내 생명 아님이 없고 내 살림 아님이 없고, 내 아픔 아님이 없고 내 몸 아님이 없는 까닭에 더 이상 불법(佛法)이 이러니저러니 얘기할 것이 없는 겁니다. 하지만 말을 해야 하니까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또 그렇게 생각하시게 되면 아주 좋은 결과가 나오죠.
말을 하는 순간 전자와 전자가 한데 합쳐서 작용을 하면서 불이 들어오는 거와 같이, 여러분의 마음과 내 마음, 일체제불의 마음이 통틀어 일심으로 돌아간다는 그 자체를 아신다면, 그 일심조차도 공(空)해서 이 세상이, 우주 법계가 그대로 여여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교가 있지만 내 마음 밖에서 찾는 것은 공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운전수가 차를 끌고 다니지 차가 운전수 끌고 다니는 것 보셨습니까? 운전수는 중심을 잡고서, 위로는 기름을 넣고 아래로는 차를 끌고 다닙니다. 이게 바로 중용이며 중심입니다. 우주의 근본도 인간의 마음의 근본에 있고, 이 세상 모든 살림살이도 다 내 마음에 가설이 돼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 사는 게 아니라 공생, 공심, 공용, 공체, 공식화하고 그대로 여여하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몸은 지수화풍을 바탕으로 해서 광력이나 전력, 자력, 통신력이 충만히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 모두에게 다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체를 알지 못하고는 남의 마음도 모릅니다. 입력이 돼서 자꾸 현실로 나오는 거를 나오는 데다 다시 맡겨 놓는 것이 재입력하는 것입니다. 앞서 입력된 거를, 녹음했던 것을 다시 다른 것으로 녹음한다면 앞서 녹음됐던 것이 무산돼 버리죠. 그와 같은 겁니다, 우리의 마음이 작용하는 것도.
도둑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난다거나 사기를 치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스려서 그러지 않도록 다시 그 자리에다가 놓는 겁니다. 맡겨 놓는 겁니다. 선행을 할 때는 선행을 하는 대로 감사하게 ‘선행하게 해서 감사하구나!’ 하고 거기 또 놔야 합니다. 그렇게 양면을 다 놓으면서 믿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구한다면 아주 진실하게 깨달음의 소식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신계의 50%와 물질계의 50% 양면이 작용이 돼야 에너지가 나온다는 얘깁니다, 얼른 쉽게 말해서. 아무리 물질계의 50%에서 지금, 의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모든 거를 다 충족시키려고 해도 그건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50%가 마저 같이 작용을 해야만이 에너지는 충족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뭐, 삼재가 들었다 뭐가 들었다, 이거는 혼란이 많이 오는데, 어떠한 애고가 왔든지, 예를 들면 이사를 잘못 간다는 문제도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모든 것은 내 한마음에 달려 있으니까 주인공에다 맡겨 놓고 그저 내 가고 싶은 날 이사 가면 되고, 삼재가 들었다 하면은 삼재가 들었다는 것도 관습입니다. 관습에 의해서 모든 점을 그르치는 일들이 한두 건이 아닙니다. 잘못돼서 들어오게 되면 ‘잘못되는 것도 내 주인공에서 나온 거니까….’ 나로 인해서 온 거 아닙니까? 하여튼 내가 없다면 부딪칠 것도 없으니까 내가 있는 반면에 오는 거니까 ‘바로 내 안에서 나온 거니 내 안에서 해결을 할 수 있다.’ 하는 그 믿음과 물러서지 않는 진실을 가지고 맡겨 놓는다면, 나를 발견하고 실험하기에 아주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괴로움이 있다 하더라도 그걸 재료로 알고, 내가 괴로운 데서 괴로운 것을 해결할 수 있어야만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실험을 함으로써 체험이 되고, 체험을 함으로써 그 도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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