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종교를 믿고 시주를 하고 절에 열심히 다니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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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보왕삼매론에 보면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하는 마음이 생기나니,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종교를 믿고 시주를 하고 절에 열심히 다니는 것은 근심과 고난에서 벗어나서 보다 더 부유하고 지혜롭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 투자를 하는 것인데 어찌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지금 가만히 보세요. 덮어놓고 종교라 이름만 붙여 놓으면은 그냥 뭐, 아우성을 치고 손을 들고 손뼉을 치고 미친 사람들처럼 이렇게 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런 일이 있다면 절대로 부처님께서는 용납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은 자기가 이 세상에 부모의 혈육을 받고 나와서, 뜻을 받고 나와서, 고상하고 누(累)가 되지 않게, 자기가 누가 되면은 전체가 누가 되니까 누가 되지 않게 살아나가는 것이 아주 고상한 제일가는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점잖고 고상하고 알뜰하고 진실하고 선명하게 살아도, 이 모습을 가지고는 얼마 살 수가 없는 건데….
여러분이 지금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지금이라도 아주 감사하게 생각하시고 이 몸이 있을 때에, 이 몸이 있어야 상대도 있는 거니까 공부가 되는 거지 몸이 없으면 상대가 없기 때문에 부딪침도 없고, 보는 거 듣는 것도 부딪침이 없어서 공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살아 있을 때 여러분이 다른 데다 정신 팔지 마시고 오직 한 생을 점프해서라도, ‘내가 한 생을 버리고라도, 한 생을 점프해서 내가 탈피하겠다’ 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피안의 세계가 바로 탈피의, 그 얽히지 않는 탈피의 세계라고 봅니다. 우리가 그냥 살아나가는 데 가정의 안유나 원하고, 나의 에고나 없애기 위해서 다니지 마십시오. 우리가 막다른 골목에 들어가 보지 않는다면 되돌아나올 수가 없고,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고통을 받아 보지 않은 사람은 남의 고통이라는 걸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귀합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고통이라는 걸 무섭게 생각하지 마시고 ‘이거는 공부할 수 있는 재료구나, 너무나 감사하구나!’ 하고 거기다 놓을 때에 그냥 용광로에 들어가서 녹아지듯 녹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배우는 데 세 가지의 어긋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진리에 순응해야 하고, 둘째는 부처님의 뜻을 따라야 하고, 셋째는 시대에 따라야 한다는 얘깁니다. 이 세 가지가 어긋날 때에는 부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과 같아서 그거는 불제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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