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영가를 보는 사람이 공부를 잘하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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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저의 도반 중 어떤 사람은 영가들이 자주 보이고 영가와 대화도 나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공부를 아주 잘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영가가 들어 몹시 괴로워하던 중 선원과 연결이 되어 마음공부를 하고 이젠 괜찮다고 합니다. 과연 영가를 보는 사람이 공부를 잘하는 것인지요. 그리고 아직 마음공부를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영가가 들어와 괴롭히는 경우는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요. 어떤 사람은 영가들과 계속 그렇게 교류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영가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는데 그런 공부가 왠지 저는 진짜 마음공부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도움 말씀 청하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공부를 하다 보면, 공부라는 게 무슨 별다르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나와서 이 세상에 사는 게 공부예요. 항상 말씀드리지만 생명이 이 세상에 나오면 불(佛)이요, 나와서 세상 돌아가는 걸 배우는 것이 바로 교(敎)예요. 그러니까 불교가 별다른 게 아니죠. 우리들의 살림살이를 빼놓고 불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간편하게 생각하세요. 어렵게 믿지 마시고 간편하게요. 내가 움죽거리는 것이 다 공부니까요. 참선이고요. 마음을 가라앉히면, 잔잔하게 가라앉히면 그냥 좌선이 되고요, 누워서 보면은 와선이 되고요, 우리가 일을 하다가 생각을 하면 행선이 되고요, 모두가 그대로 참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공부를 하다 보면은 안으로 들여서, 바깥으로 내서 믿는 게 아니라, 안으로 들여서 믿고 거기다 일거수일투족을 다 맡기고, 잘됐으면 ‘감사하구나!’ 하고, 또 잘 안됐으면 ‘안된 것도 거기서 나온 거니까 되게 하는 것도 너 아니야!’ 하고 놓고, 이렇게 굴려가다 보면 말이 자꾸 하고 싶어질 때가 옵니다. 여기서 감응이 되고 좀 지나고 보면 말이 자꾸 하고 싶을 때가 와요. 그 말이 하고 싶을 때에 어떠한 말을 해야 하느냐? 남이 물어보면 관하는 도리만 얘기해 주고 자기가 이만큼 배웠다고 내세우지를 말고, 또 그다음에 이것이 옳은 거라고 내세우지 말며, 안됐다고 내세우지 말라 이겁니다. 안됐다 됐다, 이게 옳다 그르다, 또 나는 공부를 하다 보니까 이만큼 갔다 이런 말을 안 해도 자기가 말하는 거 보면 자기가 내세운 게 되거든요. 이거는 지금 자기가 없는 도리를 배우는 겁니다.
항상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죠. 만약에 그러다가 바깥으로 끄달리고 자기를 내세우고 잘됐다, 못됐다 이런다면 공부는 꽝입니다. 제자리를 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바깥으로 자꾸 끄달리면서 가다 보면, 그만 자기는 빈집이 되고, 자기 선장은 간 곳이 없고 바깥으로 끄달리게 되죠. 그렇게 하면 영계성으로 인해 구차한 일들이 벌어지죠. 그래서 무슨 호흡을 한다고 하면서 바깥으로 끄달리고, 몸으로 끄달리다 보니까, 몸도 바깥이거든요. 물질계거든요. 그렇게 바깥으로 끄달리다 보니까 영계가 들려서 야단인 사람도 있고, 상기가 돼서 귀로 들려서 야단인 사람도 있고, 몸이 떨려서 야단인 사람도 있고, 몸을 부지를 못하고 그냥 뛰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가정이 파괴가 되고, 자식들은 이리저리 떨어지게 되는 수가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또 기복으로 믿으면서 바깥으로 자꾸 끄달리고 무슨 부처님, 무슨 부처님을 부르면서 바깥으로 끄달리는 사람들이 특히 영계성에 걸리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이집 저집 떠다니면서 기웃거리는 그런 영령들이 들어서게 돼 있거든요. 그러니 영령이 들어서는지도 모르고 그게 자기 몸에 있다는 자체도 모르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면은 그냥 아주 정신이 혼란스러운 사람이 돼 버리고 맙니다. 자기 혼자 그렇게 되는 것도 뭐한데 가정이 다 문제가 되니까요. 그래서 여러분한테 조심하라고 하는 것은 나쁘다 좋다, 밉다 곱다 또는 잘한다 못한다를 염두에 두고서 항상 꼬집고 마음으로 미워하고 ‘저런 거 그냥 차라리 죽어서 없어지는 게 낫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러한 마음과 그러한 말이 모두 업이 돼서, 말을 하면 구업(口業)이 되고, 마음으로 지으면 의업(意業)이 돼서 입력이 됩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한층 더 이것은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되죠. 그래서 “바깥에서 닥치는 거, 미운 거 고운 거를 밉다 곱다 하질 말고 안에다 ‘저 사람이 저렇게 하는 것이 저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그 의식에서 그러는 거니까 당신만이 해결할 수 있어.’ 하고 거기다 맡기고 부드럽게 말하고, 부드럽게 행동해 줘라.” 이런 말을 항상 하죠. 그래야만이 모든 업이 녹아 버린다는 얘기죠. 그러는 분들도 많이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그러더니 자꾸 관하고, 부드럽게 말해 주고, 부드러운 행동 해 주니까 어느 날부터 그냥 술을 먹는 게 없어지고 그렇게 가정이 화목하게 돌아가더라고요.
그 마음이 그렇게 밉고 그냥 악하게 말을 하고 그렇게 되면은 점점 더 악은 모아지는 겁니다.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러니 여러분께서 극히 조심을 해야 하고, 남을 미워하거나, 또 자식들도 그렇게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악한 마음이 녹아지기를 지극하게 관한다면 그거는 틀림없이 송두리째 없어지는 겁니다. 길고 짧고 더디고 좀 빠르고는 있을지언정 꼭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녹음기에 녹음을 했더니 자동 녹음이 됐는데, 자동으로 또 거기다 입력을 하면 그 앞서의 입력이 없어진다고 항상 말해 드렸죠. 그러니까 잘라도 아니 되고 끊어도 아니 됩니다. 업을 끊으려고 해 봤자 칼로 물 베기죠. 그게 안 됩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그렇게 해서 없애는 도리밖에는 없습니다.
지금 말씀드린 거 소홀히 듣지 마십시오. 첫째에 이 공부하는 데에 도로아미타불을 만드는 그런 문제가 있는 것은 잘됐다, 못됐다 또는 옳다, 그르다 이런 말을 남한테 하고 자기를 내세우는 것이 제일 문제인 것입니다. 그다음에 또 내가 아무리 속이 상해도 내 안으로 놓고 부드럽게 얘기해 주고 부드럽게 행동을 해야만이 그 업식이 녹고, 그 수없는 광년을 거치면서 나온 업식이 다 녹아야 하늘에서 인정을 받고 해인(海印)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열쇠를 얻는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 우리가 공부해 가면서, 습을 떼어 가면서 모든 거를 같이해야 됩니다. 이 세상에서 얼마나 이 모습을 가지고 살겠습니까? 이 모습을 가지고 살려면 얼마 안 남았습니다. 한 철 사는 기간 동안에, 그거를 다 다스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요다음에 또 나와서 또 고생을 해야 하니까요. 그러니까 극히 조심하셔서 우리가 요다음 생에 또 나와서 고생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지금 현실에서도 자기 위로는 부모와, 아래로는 자식들과도 염주가 항상 같이 꿰어 있듯이 그렇게 연관성이 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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