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모르는데 남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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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모르는데 남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본문

질문

사람들은 살면서 가끔 “나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라고들 합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남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어느 날 저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했다가 기독교 신자인 지인으로부터 경멸의 눈초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자식이지 누군 누구야?” 하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과연 나의 존재는 무엇일까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다섯 개의 손가락이 모두 각각 다른 이름과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독립된 개체라고 할 수 없이 한 손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들도 누구 한 사람 빠짐없이 제각기 생겼고 제각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은 거대한 한 뿌리에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공생·공심·공용·공체’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늘 말을 합니다만, 우리 육신을 끌고 다니는 장본인은 나무뿌리와 같습니다. 나무뿌리에서 수분, 철분을 흡수해서 올려보내고 위에서는 공기력과 태양력을 흡수해서 내려보내는 것이 정맥 동맥이 돌아가듯 나무를 성장시킵니다. 푸르르게 살도록 말입니다.

또 비유컨대 콩을 심어서 콩나무가 됐다면 콩씨로 있던 과거는 지나갔으니까 없겠죠? 콩씨가 콩나무로 화했으니까요. 여러분 모습이 콩싹이라면 그 콩싹은 또 콩씨를 열리게 합니다. 현재 여러분이 가지고도 과거로 돌아가서 콩씨를 찾는다면 아마 백 년이 걸려도 못 찾을 겁니다. 그래서 콩나무가 없어도 콩이 없고, 콩이 없어도 콩나무가 없는 것입니다.

거사님께서 이 세상에 나오질 않았다면 뭐가 있겠습니까? 상대성 원리도 없을 것입니다. 내가 있기 때문에 상대도 있고 종교도 있고 또 불교도 있다고 하는 거지, 내가 없는데 뭐가 있겠습니까? 태어나 살면서 고정되게 보고만 있으면 목석이라고 하고 고정되게 듣고만 있으면 귀머거리라고 할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고정된 게 하나도 없으니 그대로 내가 한 바가 없이 여여하구나.’ 하는 거죠. 윗눈썹과 아랫눈썹이 그렇게 가까이 있으면서 함께 작용을 하는 것과 같은데 너무 가까워서 그런지 자기를 못 보는 겁니다. 그대로 여여하게 살면서도 마음으로는 집착과 관습과 모든 얽힘을 붙들고 부자연스럽게 만들어 놓는 거죠. 사방이 다 터졌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내가 누구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 ‘그렇게 내가 누구인가 하고 생각나게 하는 그놈만이 내가 누구인지를 진정으로 알게 할 수 있다.’ 하고 밀어 넣으세요. 어느 누가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자기를 수억겁을 거쳐서 이끌어 온 장본인, 주인공만이 진정으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항상 내 마음 안에서 들고  나는 모든 생각들은 주인공이라는 용광로에 다 집어넣으시고 마음 편안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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