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때문에 우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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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요즘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너무 답답해서 마음까지 우울해집니다. 내 마음의 근본이 우주의 근본이라 하셨는데 그렇다면 과연 정말 보잘것없는 내 마음으로도 대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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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왜 그렇게도 쉽고 그렇게도 빠르고 그런 게 자기한테 주어져 있는데 어째 모두 믿지 못하고 그렇게 앨 쓰고 즐겁지 못하게 살고 울고불고 야단들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무조건 믿음과 물러서지 않는 그 마음. 왜 못 믿는가. 그 생명이 그 생명이고 바로 그 몸이 그 몸이고, 그 행이 그 행이고, 그 사람이 만법을 행하고 있는데 자기를 자기가 못 믿어요.
문제는 그런 데에 있습니다. 이거는 ‘깨닫는다 안 깨닫는다, 못 깨달아서 못한다, 깨달아야만 한다’ 이런 걸 떠나서 자기를 못 믿는 겁니다. 그것은 본래 깨닫는다는 언어도 붙지 않고 깨닫지 못한다는 언어도 붙지 않는 것이다. 본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주어져 있고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그런 그 광대무변한 이치를 우리는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얘깁니다.
예를 들어서 전체 한 뚱그런 맷방석 같은 게 하나 있다면 왜, 애들이 화가 나면은 나가서 스트레스를 제거하기 위해서 마치를 가지고 탁 때리면 쑤욱 올라오고 또 탁 때리면 쑤욱 올라오는 이러는 것이 있잖습니까. 그런 것이 이렇게 쭉 있다면, 비유한다면 바로 이것이 쑥 올라오고 쑥 내려가고 하는 것이 어느 혹성도 될 수 있고 세계도 될 수 있고, 어느 국가도 될 수 있고 또 사회도 될 수 있고, 사회에서 살아나가는 개별적인 어떤 한 집 한 집도 될 수 있다 이겁니다.
그런데 때에 따라선 이것이 불덩어리일 때는 불망치로 때려야 됩니다. 만약에 불덩어리를 불로 때리지 않는다면, 또 무슨 막대기로나 이런 걸로 때린다면 그게 되지를 않죠.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때리면 들어가고 또 어떤 것이 쑥 불거져 나오면 또 때린다. 이것이 여기서 나오고 저기서 나오고, 여기서 나오고 저기서 나오고, 여기 때리면 저기 나오고 저기 때리면 여기 나오고 하는 것이 우리 세계적으로 살아나가는, 조그맣게 친다면 세계적이고, 아주 더 작게 친다면 국가적이고, 더 크게 친다면 우주적과 더불어 같이 돌아가는 거다. 그럴 때에 그렇게 여기서 나오고 저기서 나오고 저기서 나오고 그럴 때 혼돈이 오는 거다 이겁니다, 이게. 혼돈이 발생할 때에 우리는 조그맣게 치면 한 가정이지만, 아주 작게 치면 내 몸의 혹성이지마는 크게 치면 우주적으로도 대비할 수가 있는 거다.
그런데 진짜로 믿고 진짜로 꼬리를 붙이지 않고 무조건 내가 그렇게 믿는 반면에 아주 이게 그럴까 안 그럴까 하는 것도 없이 그냥그냥 절대적으로 그냥 무심으로 믿어지는 그 마음이라야만이 될 수 있는 거죠, 모든 게. 이유가 거기 붙지 않습니다. 무슨 이유가 붙습니까.
세상도 지금, 아까도 그랬습니다. “얘! 일요일이 언제냐?” 그러니까 “내일 모레예요.” “아니, 참 빠르기도 하구나.” 그러니까 “쉴 사이 없이 돌아가기 때문에 눈이, 눈동자가요, 일로 돌아갔다 절로 돌아갔다 쉴 사이 없이 돌아갑니다.” 그래요. “그래,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거로구나. 한 번 눈동자가 돌아갈 때 우주가 돌아가듯 이렇게 빠르구나.” 이래 버리고 말았습니다마는, 그것이 그만큼 빠르게 돌아가는 그 반면에 이렇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도 빠르게 튀어나오게끔 돼 있어요. 그런데 나와 가지고서 벌어져야 알지, 나오는 것도 모르고 그러기 때문에,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이 어떻게 돌아가는질 모르거든요.
예전에 리비아를 미국에서 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리비아에서 소련으로 전문을 띄워서 우리는 보복 단계를 가져야겠다는 그런 무슨 뭐를 띄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아이, 이거 그러면 미국 외에는 곤란한 점이 생기겠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 요 얘기를 거기 포함시키는 얘깁니다. 예를 들어서 여기에서 불쑥 나오면 이걸로, 이 망치도 사람을 때릴 때는 몽둥이가 되고, 또 그런 걸 때리는 데는 불망치가 되고, 또 쇠를 쳐서, 쇠를 칠 때는 쇠망치가 되고, 또 전자력을 칠 때는 전자 망치가 돼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거는 전부 이런 문젭니다. 이 망치도 하나로, 하나가 아닙니다. 찰나찰나 이거는 환경에 따라서 그 쓰여지는 게 다 달라요. 그러면 찰나찰나 이게 화해서 옮겨 가면서 씀씀이를 쓰고 있는 우리 생활에서도 그것은 알 수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여기에서 이렇게 닥치는 건 이렇게 막고, 여기에서 이렇게 닥치는 거는 이렇게 막고, 이렇게 살지 않습니까? 고정되지 않고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럭하면 안 되지. 그럭하면 곤란해지고 회담도 곤란해지고 오손도손 참, 조화를 이루기는 어렵고, 불쑥 튀어나오는 거는 그저 쳐서 너무 나오지 못하게끔 해야 이게 평등해질 테니까. 그저 나오면 좀 때려서 들여보내야 될 거야. 그래야 혼돈이 오지 않겠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그냥, 보통 그냥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런 데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여러분들과 나와 똑같이 그런 말을 그대로 했어도 나 그대로 그냥 말한 거하고 여러분들 말한 거하고 다른 것은 단지 그것뿐입니다. 나는 이것을 한다 안 한다를 떠나서, 예를 들어서 ‘이럭하면 안 되지.’ 하는 생각이 남으로써, 그 말이 나옴으로써 이게 법이 되는 것입니다.
또 어느 날 비가 왔습니다. “스님, 아이고 이거 그냥 가시면 안 됩니다. 비 맞으면 안 됩니다. 우산을 쓰고 나가셔야 됩니다.” 이런단 말입니다. 그래서 내 말이 딱 그랬습니다. 이거는 여러분들한테 내가 자랑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한테 체험을 드리기 위해서 얘깁니다. 모든 걸 믿고 생활하는 데 하나하나를 점검하면서 체험하면서 돌아가십시오. 그렇게 되면 자기한테 모든 일체 만법이 주어져 있다는 거를 스스로 알게 됩니다. 그것을 느껴 보지 않고 생각도 안 해 보고 지켜보지도 않았다면 그냥 무의미하게 그냥 넘어가 버리고 말지요.
그래서 거기에서 그랬습니다. “이거 봐. 모든 것이 환경에 따라서 이 공기와 바람, 또는 그 무중력의 전자력을 이렇게 중단시키면 일로 바람이 오질 않아. 이 허공에도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에 의해서 울타리가 쳐질 수도 있고 울타리가 안 쳐질 수도 있어. 그러니까 비 맞아도 좋아. 그 비를 맞으면 외려 생기가 날 텐데.” 거꾸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무리 검증을 해 보라지, 나오는 게 있나.’ 하고선, 우리의 그 빠른 거, 빛보다도 더 빠른 인간의 참마음이, 그 참마음 한 점이 우주의 그 일체 만법을 우리 삶과 더불어 같이 조화를 이루면서 자유자재할 수 있다는 그 점을 여러분들은 그렇게 아시라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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