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속을 썩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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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제가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남편은 남편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하나같이 속을 썩이네요. 마음공부도 한다고 하는데 제가 공부를 제대로 안 하는 건지 크게 변하지 않아요. 도움 말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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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자기를 놔두고 상대를 믿는다면, 자기 빼놓고 상대를 믿는 것이, 그 믿는다고 하더라도 대신 살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똑바로 아시고, 똑바로 행하시고, 진짜로 믿어야 그 도리가, 무궁무진한 도리가 바로 나오고 ‘이 세상에 우주 천체가, 은하계나 태양이나 돌아가는 이 우주 천체가 이 우리네들 살림살이와 똑같구나. 수명이 짧고 길고 그럴 뿐이지 그것은 똑같구나.’ 하는 거를 느낄 거예요, 아마.
그리고 가정에서도 남편이 잘못하더라도, 예를 들어서 화투를 잘한다, 술을 잘 먹는다 그래서 속이 썩는다 이러더라도, 그리고 하루 이틀 안 들어온다 이러더라도, 자식이 잘못하고 안 들어온다 이러더라도 입으로 욕을 하고 그걸 말로다가 끌려고 그러면 절대 끌리지 않습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닌 마음인데, 둘이 아닌 주인공인데 너만이 그렇게 안 하게 할 수 있잖아!’ 하고서 열흘이 됐든 스무 날이 됐든 들어오면 부드럽게 말해 주고 “그 스무 날이나 다니면서 몸 해쳐지면 어떡하느냐.” 외려 위로를 해 주는 거죠. 그러면 이렇게 생각이 들겠죠. ‘저 사람이 부처가 됐나?’ 얼른 쉽게 말해서. ‘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달라질 수가 있는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게 생각하는 대로 입력이 되면서 ‘에이! 뭐, 해 봐도 만날 그 타령이고….’ 인제 그때는 하기가 싫어져요, 또. 그래서 안 하는 거예요. 안 먹게 되는 거고요.
자기가 스스로 하기 싫고 스스로 먹기 싫고 그래야 안 먹는 거지 남이 먹지 말란다고 안 먹고 남이 욕을 한다고 그거 듣나요? 마음으로 고장 난 건 마음으로 이끌어 가야 돼요. 그리고 보이는 데서도 부드럽게 해 주시고요. 자식도 그렇고 부부지간에도 그렇고 부모 사이에도 그렇습니다. 그럼으로써 자기 업이 그냥 입력된 게 다 없어지고 새 입력이 들어가서 모두 물러서게 하죠, 녹여 버리고. 용광로에다 다 넣듯이.
지금 아상이나 아만이나 이런 게 말로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게 습관이 되고 관습이 돼 가지고 그냥 남을 섭섭하게 하기가 일쑤입니다. 어떠한 섭섭한 일이 있더라도 주인공에다 맡기지 상대방을 가지고 ‘네가 잘못해서 이렇게 됐느니, 네가 미우니’ 하고 원망하고 이러지 마세요, 절대로. 그것 참견하다 보면 자기가 가는 길을 잊어버려요. 도의 길은 관 속에 들어가야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이것저것 탓을 하고 그런다면 물질세계에 사는 거기에 얽매이는 거지, 그게 도의 길이 아니란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우리 몸뚱이가 통입니다. 통 안에는 별의별 그 모든 생명들 의식들이, 즉 저희들이 살아온 그 의식들이, 차례차례로 업보며 유전성이며 다 가지고 있는 생명들이 살고 있다고요. 그러니 이게 팥죽과 같지요. 팥죽 방울 나오듯 하는 거죠. 그 통에는 팥죽이 들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그 팥죽 방울을 나오지 않게 하려면 불을 첫째 물려야 합니다. 불을 물리면 팥죽 방울이 나오지 않잖아요.
지금 우리는 죽은 세상을 공부하러 들어가는 겁니다, 지금. 산 세상은 공부 다 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죽은 세상을 다 알아야 보이지 않는 데서 산 세상을 둘 아니게 이끌고 나가죠. 그러니깐 ‘죽어야 너를 본다’ 이런 소리예요. 근데 죽으러 가는 놈이 이것 탓하고 저것 탓하고…,
내가 왜 이 집 짓는 데도 상관 안 하느냐. 이거 봐요. 부처가 있으면 할 거고 없으면 고만이지 나한테 꼬리표 붙여 놨습니까, 그 절 지으라고? 돈이 없어도 그놈이 있으면 할 거고 돈이 있어도 아니면 못할 거고 그런데 아, 그놈이 하는 거를 내가 시자로서, 둘 아닌데 왜 그렇게 걱정을 합니까? 그런데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걱정을, 걱정할 거나 안 할 거나 다 한단 말입니다, 그냥. ‘왜 공부가 안되느냐.’ ‘왜 답답하냐.’ 이런 것도 걱정이죠. 그것도 그놈한테서 나오는 거 아닙니까? 딴 놈한테서 나오는 거 아니잖아요. 그런데 아만 아상을 끊으려고 하고 이런대서야 어떻게 끊어집니까, 그게? 물 흐르듯 하는 건데.
물에는 바로 똥물이나 구정물, 핏물, 고름물, 흙탕물, 맑은 물 다 섞인 게 한바다예요. 바다라면 그걸 다 가라앉혀서 그냥 아무것이 들어가도 바닷물이지 똥물이라고 안 그럽니다. 더군다나 그 한 단계를 넘어서게 되면 똥물이든 핏물이든 젖는 것이 법의 도리다. 젖는 거. 어디에나 다 젖죠. 그러니 똥물에 젖는 거나 맑은 물에 젖는 거나 핏물에 젖는 거나 젖는 거는 매일반인데 이거는 내버리고 저거는 갖고 이럭하면 그 젖는 도리를, 크게 생각해서 광대하고 무변한 그 도리를 절대 납득할 수가 없죠.
그리고 죽으러 가는데, 만약에 사찰에서 무슨 일을 주지라든가 뭐, 그 아랫사람이 뭐를 했는데 이거를 그거 서로 얘기를 안 하고 한 것도 있고 얘기를 하고 한 것도 있고 이렇다 하더라도 그거를 개의치 말고 부드럽게, 부드럽게 아이, 형님이 되면 “형님!” 아우가 되면 “아우, 그건 나한테 이렇게 말 좀 하고 했으면 좋았을 걸 그랬잖어!” 이렇게, 이렇게 하면 “아이 형님, 이럭하고 이러이러해서 그랬어요.” 하고 얘기를 할 때 다 풀리는 거예요, 그게. 그런데 그거를 그렇게 안 하고 꽁하고 여기다가 넣어 둔단 말입니다. 넣어 두니까 같이 사는 것도 밉고 같이 보는 것도 뭐 그렇고, 왜, 그런 게 있잖아요, 어색한 게. 그런 게 자꾸 싹튼단 말입니다. 싹트게 되면은 어떻게 나오느냐 하면 그때는 다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이렇게 헤어져 버리죠, 마음이. 그러면 육체도 ‘어이구, 내가 이럭하고 살면 뭘 해.’ 그러곤 이쪽으로도 떠나고 싶고 저쪽으로도 떠나고 싶은 그런 충격이 드는 거죠. 우린 비구니만 그런 게 아니라 비구도 그렇고 비구니도 그렇고 우리 일상생활 하는 사람도 그렇고, 다 그래요. 어떤 사람은 그럭하고 어떤 사람은 그럭하지 말라 이러는 게 아니에요.
옛날에는 그 상대방이 얼마만큼 다져졌나 그걸 보기 위해서 고승들끼리 문답을 하죠. 어떤 사람은 가다가 말고 일행이 뚱그렇게 그려 놓고선 그 안에 들어가서는 “너 여기 그어 놓은 데 들어오면 그냥 안 둔다.” 하니깐 아무 소리 없이 가서는 그 뚱그렇게 그려 놓은 거를 발로 쓱쓱 지워 버리고선 합장을 하더랍니다. 그 소리 어떠세요? 그만큼 되려면 지금 우리 중들도 어떻게 집을 짓든지, 어떻게 되든지 그건 서로 좋게 얘기해서 좀 거슬리면 “이건 이렇게 이렇게, 제 생각에는 이러이러하는 게 좋다고 생각이 되는데 형님은 어떠세요?” 또 아우가 그랬으면 “나는 이렇게 이렇게 생각했는데 아우는 어떠냐?” 하고 이렇게 해 나간다면 얼마나 화목하고 또 얼마나 그것이, 즉 말하자면 죽은 세상의 도의 길을 걷는다고 하더라도 손색이 없죠. 가고 옴이 없이 왕래하면서 가고 오고, 함이 없이 일체 법을 다 행하니까 말입니다.
이 생활 속에서 행 하나하나 하는 것이 다 참선입니다. 그렇게 하고 들어가야지 만일에 이것 따지고 저것 따지고, 이것 따지고 저것 따지고 한다면 그 길을 당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생사도 놓고 가야 된다 이겁니다. 잘된다 못된다 이런 말이라는 건 필요 없어요. 실질적으로 자기가 경험하고 체험하고 이러면서 보람 있게 살아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고생하지 말고 아파하지 말고 괴로워하지 말고, 살면 살고 죽으면 죽고, 어차피 인생으로 태어나서 한 번 다 죽는데 그걸 뭘 그렇게 연연하고 그렇게 사십니까. 그저 오는 거 내치지 말고 가는 거 잡지 말고 그냥 편리하게 사람의 도리로 그냥 사는 거, 이거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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