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도리 모르고 몸을 벗는다면…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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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도리 모르고 몸을 벗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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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우리가 이 마음의 도리를 모르고 몸을 벗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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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우리가 이 공부를 안 하면 무서운 도리가 있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그 학으로만 배우고 이렇게 해서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그 도리를 모르고, 둘이 아님을 모르고, 둘 아닌 데서 참나라는 것이 있는 거를 모르고, 우주 전체와 내가 더불어 같이 있는 거를 모를 때, 너무나 애석한 것은 우리가 이 도리를 모르고 만약에 이 옷을 벗는다면 식(識)만 있지 분별이 없어요.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식만 있죠. 그래서 분간을 못합니다. 여러분, 금방 지금 이 자리에서 죽었다면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부닥침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와 같이 식만 남았으니 지금 그것을 증명해 보시려면 지금 아주 오관을 딱 가려 보세요, 눈도 막고 귀도 막고 다. 그럼 어떻게 하시렵니까.

  사람은 눈 아닌 눈이 있어야 하고 귀 아닌 귀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분별을 하죠. 그리고 책정을 하고 판단을 해서 내가 이렇게 해야겠다는 뭐가 있지, 도대체 식만 남아 가지고서 아니, 보기를 합니까, 듣기를 합니까? 사람이 사람인지 짐승인지 그 도리를 몰라요. 집이 어떤 집인지, 요만한 굴속인지 큰 집인지 그것도 몰라요. 그 굴속도 크게 보이죠. 그리고 기와집으로도 보이고 아주 그 보석으로도 보이고. 이렇게 하니 눈이 없다 이겁니다. 욕심에 꽉 찬 그 눈은 바로 식만 남아서, 생시에 살던 그 식으로서, 그 좋은 것만 가지려고 했던 그 식만 남아서 그저, 하다못해 돌 틈을 봐도 그 돌기둥으로 보고 돌집으로 보고, 공부를 하겠다고 들어갔으니 그렇게 될 수밖에요.

그러니 여러분이 지금 보이지 않는 세계라고 해서, 지금 살았다고 해서 그걸 아무렇게나 생각할 수는 없죠. 그저 값싼 말로, 붙을 데가 없는데 뭐 붙을 게 있어서, 내가 없는데 뭐 붙을 게 있느냐고 이렇게들 허영 말해 버리고 마는데  그 무서운 도리는 누가 처리할까요?
 
  한번은 이런 예가 있었습니다. 어느 때 길을 가다 보니까 한 노파가 병이 들어서 가다가 엎드러져서 헤맸습니다. 나는 그런 꼴을 많이 봤으니까요. 그래서 구더기 눈에는 똥만 뵌다고, 여북하면 중얼중얼하고 갔겠습니다마는 말이에요. 그래 인제 가다 보니까 엎드려서 저거 하더니 고만 다 죽어 버리는 겁니다. 순간, 죽는 그 순간 뭘 생각했느냐 하면 그때의 그 식이 아무 분간을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 그냥 놓고 갈 수가 없는 겁니다. 다시금 거기다가 혼합을 시켜서 거기 다시 붙여 놓은 겁니다, 그걸 잡아서. 그래야 무슨 자손들이 있으면 자손들, 그래도 그 집에 가서나 어떻게 해결을 해야지 어떡합니까? 그러고 생각을 했습니다. ‘응, 집으로 찾아가든지 어디로 가든지 간에 내가 이 자리에서 본 것만이라도 인연이야. 그 즉시 본 게 인연이야. 그러니까 그게 나한테 닿은 게 아닌가. 그 또한 누군가. 옛날에 내가 모를 때 내 모습이야.’ 그래서 그렇게 하고 나는 뚜벅뚜벅 갔습니다.  조금 있더니, 한 오 분 죽더니 깨어나더군요. 그래서 가는 걸 봤습니다.
 
  가는 걸로 끝난 게 아닙니다. 언제나 사람이 밥을 했으면 밥을 해 먹고서 그릇을 닦아서 다 마무릴 지어 놔야 밥을 해 먹고 치웠다고 하는 겁니다.  이 도리가 아주 작고 협소하지마는 이 우주를 굴릴 수가 있는 그런 도립니다.  요 밥이라고 한다고 그래서 밥을 말하는 게 아니라, 조그만 방편이든 큰 방편이든 그것은 방편이자 진실입니다. 하도 버릴 게 없고 진실이기에, 나온 게 없기 때문에 갈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도 참 여러 가지로 많은 것을 보아 왔고 그랬는데, 옛날에도 사람이 죽으면 재를 이렇게 놓거나 쌀을 놓거나 그래서 뭐가 됐나 하고 볼 때에 새 발자국도 있고 뱀이 기어 간 것도 있고 또 사람 발자국도 있고 별의별 발자국이 다 난다 합니다. 그것이 왜 그렇게 됐는가. 그것이 식만 남아서 자기가 분간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눈 가리고 귀 막고 코를 막아서 만약에 그렇게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와 똑같습니다.
 
그래서 암흑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밝은 불빛을 못 봐요. 내 마음의 불빛을. 불빛이 없으니 어찌 보겠습니까? 그래서 일로도 가고 절로도 가고. 저 토끼굴로 안 들어가나 개집으로 안 들어가나, 뱀굴로 안 들어가나 까치굴로 안 들어가나. 또 그 집안의 소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고 소가 사람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고, 천차만별입니다. 이렇게 분간을 못하니 어쩌다가 인연이 돼서 사람 만나면 사람으로 되는 겁니다. 그러니 그 사람 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런데 사람의 몸을 받아 가지고 우리가 또 그런 분간을 못해서 또 좌천이 되고, 좌천이 안 된다 할지라도 그렇게 자기 차원대로 그렇게 또 울고 아프고 부닥치고 서로 모였다가 또 헤어져서 또 그렇게 되시렵니까.

  그러니 우리가 이 공부의 도리를 모르면 그렇게 우리가 눈 가리고 코 막고 귀 막고 다 이렇게 아주, 송장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분별하겠습니까?  고거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금방 이 자리에서 죽었다 하면은 썩지도 않은 그 송장이 왜 보지 못합니까. 죽었기 때문입니다. 의식이 없습니다. 분별이 없습니다. 선천적인 식만 남아서 이리저리 이렇게 자기가 분간을 못하고, 캄캄하니까, 암흑인데 어떻게 발을 한 발 떼어 놓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와 똑같은 겁니다.
 
부처님의 그 뜻은, 만사만생이 다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고 이렇게도 되는 원리가, 누구나 잘되고 싶지 못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못되고 싶어서 못되는 게 아닙니다. 자기가 눈이 없고 귀가 없으니깐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그게 얼마나 무서운 법입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한생각에 들었다가 놨다가 들었다가 놨다가 하는 이 도리를, 이 만법의 이치를 참답게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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