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하는 것과 자신과 대화하는 것
본문
질문
관하는 거와 자신과 계속 대화하는 것이 다른가요? 저는 나름대로 방에 앉아서 주인공과 대화를 하는데 너무 생각으로 짓고 있나 하고 약간 허한 생각이 들어서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그것도 그냥 거푸장스러운 생각이라고 볼 수 있죠. 그렇게 광대하고 넓고 천차만별로 나투고 이러는 도리를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거든요. 믿지 못하니까 허전하지, 믿어 보세요, 허전한가.
그런데 과학적으로 지금 벌어지는 일들, 그렇게 모르겠어요? 마음으로 하는 건 빛보다 더 빠르게 단축하는 거고, 지금 과정에 있어서 그거는 한계가 있는 거지마는 팩시밀리 왔다 갔다 하고 인공위성 띄워서 모두 전파가 되고 이러는 거 느끼지 못합니까? 그러면 그거 보이지 않는 데서 그렇게 해서 보이는 사람들의 마음이 움죽거리게 하는 거,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나요? 그리고 또 대화를 누가 하랬습니까? 관하랬지!
자기가 있는 데에 자기가 있는 겁니다. 나는 언제나 그렇게, 예전에도 그렇게 살아왔어요. 제 놈이 있다면 절도 지을 거고 제 놈이 없다면 못 지을 거니까, 난 탕평 살았어요. 왜? 믿으니까. 제 놈이 있다는 거를 믿으니까. 제 놈이 할 수 있다는 거를 믿으니까. 어떠한 거라도 할 수 있다는 거를 믿으니까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믿지 못하니까 그렇잖아요? 왜 자기 끌고 다니는 자기 영원한 친구를 못 믿습니까, 자긴데! 자기 몸뚱이는 집이에요. 자기 영원한 친구의 집. 집하고 둘이 아니에요. 물건을 해서 끓여 내면 오븐에 넣어야 끓여 내죠? 그 오븐도 집이란 말입니다. 물건 해내는 집.
그러니까 대화를 하되 대화가 아니라 관하는 거 ‘야, 네가 있다면, 진짜 있다면 이거 지금 급한데 너밖에 할 수 없지 않겠느냐.’ 하고 거기 맡겨 놓고 지켜보는 것. 그렇다고 해서 꼭 앉아서, 방 안에 들어앉아서 문 걸어 잠그고 지켜보라는 게 아니에요. 방 안이나 방 바깥이나, 들이나 산이나 똑같은 자리에요, 자기가 앉아 있는 자리가. 그래서 공부한다고 뭐, 저 산속으로 들어가고 이러는 거는 거푸장한 짓들이라고 봐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 이 소립니다. 마음이 산속으로 들어가면 마음이 달라지고 들로 나오면 마음이 달라지나요? 마음이 있는 자리는 자기 몸뚱이 있는 자리에 그냥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 이전글되고 안 되는 건 믿음의 문제 같아요 21.10.25
- 다음글의사로서 역부족을 느끼는데… 21.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