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으로 살아가려면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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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람으로 살아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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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우리가 진짜 참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여러분이 진짜 사람이 되려면, 눈 없는 진짜 마음의 눈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눈을 얻는다면 들음이 없이 듣는 귀를 얻을 것입니다. 냄새라는 것이 그냥 우리가 음식이나 냄새 맡고 썩은 내나 맡고 이러는 냄새가 아닌, 한계가 있는 냄새가 아닌, 전 우주의 천하가 인간 세계의 모든, 삼세의 그 돌아가는 이치의 그 냄새는 향으로써 바로 그 이름을 붙였던 겁니다. 우리가 보이지 않고 그러는 세계의 마음의 향이 온 누리를 돌고도 남음이 있으니 꽉 차 있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모든 것은 우리가 놓고 가는 것이 진리거늘, 여러분은 어찌 놓고 가려고 하질 않고 놓을 데가 없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냐 하면, 항상 말을 하지만 내 몸이 지수화풍 사대로 뭉쳐져 있고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다 지수화풍으로 뭉쳐졌다 이겁니다. 그러면 우주 전체의 물체가 다 지수화풍으로 합쳐졌기 때문에 그 능력으로 하여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겁니다. 생명을 유지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내가 항상 살고 있는 이, ‘돌아감도 없고 돌아옴도 없는, 이 삼각 원형을 이루고 있다’ 이런 뜻을 생각할 때 우리가 생명과 마음과 몸을 한데 합쳐서 원형을 이루고 있는 그 자체가, 바로 우리 생활에서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이 결국은 한 찰나 한 찰나 놓고 가는 것입니다. 놓고 가는 것이 없이 놓고 가고 있죠. 그런데 쳇바퀴 돌듯 하고 있습니다. 어저께 밥을 먹었다고 해서 어저께 밥을 먹은 것을 생각을 하고 있기 이전에, 그거는 벌써 똥이 돼서 없어지고 오늘 또 밥을 먹어야 하는 그런 이치죠. 어저께 먹은 게 그대로 있고 그렇다면 오늘의 먹을 밥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어저께 먹은 밥이 체해서 꽉 위를 메워 가지고 있다면 오늘 밥을 먹을 수가 없어서 결국은 죽는다고 병원에 갈 겁니다. 그러니 어저께 먹은 밥이 오늘에 없을 것이고 오늘 먹은 밥이 내일에 없을 것이니, 그것이 바로 삼세가 공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은 공했다면, 없다면 없다고 하는 말이 그게 해당한 말이냐고 하겠죠. 여러분이 사시는 데 가만히 생각을 해 보세요. 사람을 만나도 한 번도 똑같은 사람을 만나고 붙잡고 있는 법이 없습니다. 식구들도 번갈아 가면서 만나죠. 또 만남도 그렇지만, 만날 때의 생각이 번갈아 가면서 딴 생각으로써 말을 합니다, 환경에 따라서. 애를 만나면 ‘해라’가 나오고 어른을 만나면 존대가 나옵니다. 그건 자기가 스스로서 그렇게, 지금 과학이 발전이 됐다고 하지만 아주 스스로서 자동적으로 영원하게 돼 있다는 겁니다, 자기가.
 
그래서 영원하게 자기가 돼 있는 자체가 잠재의식 깊은 속의 테이프와 같은 것이라는 얘깁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테이프에 녹음을 금방 했는데 금방 그 녹음한 데다가 또 녹음을 하니까 그 앞서 녹음한 거는 없어지지요? 그러니까 연방 그 테이프에 자꾸 녹음을…. 억겁을 거쳐 오면서 자꾸 생활을 하면서 놓고 가다가 보니까, 전자에 짐승으로 있었던 것도 바로 화해서 인간으로 됐으니까 짐승은 찾을 것이 없죠. 그 모습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 녹음테이프에 자꾸 녹음을 하는 것을, 불가에선 그릇이라고 합니다. 그릇을 비워야 담는 대로 바로 담아질 수 있는 거지, 그릇을 비우지 않는다면, 어쭙잖은 거, 아상과 모든 아만과 집착과 욕심 그런 것이 차근차근 담아져 있으면 새로 오는 그 계발적이고 생동력 있는, 지금 현실에 다가오는 문제를 담을 수가 없다는 얘깁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항상 먹으면 싸고 먹으면 싸 버리듯이, 그래야 위가 시원하고 살 멋이 있듯이, 우리는 그릇이 항상 담으면 없어지고 담으면 없어지고, 우리 녹음테이프처럼 그렇게 돼 있는 것이 진리라 이겁니다.
 
그러니 집착을 하지 마라. 욕심을 부리지 마라. 아상을 갖지 마라. 모든 점에서 그렇게, 일체의 살아나가는 생활이 바로 길이자 없는 길이다. 없는 길이면서도 당당히 이렇게 보이고 걷고 있는 것이다. 걷고 있으면서도 그건 한 발 떼 놓으면 한 발 없어지고 한 발 떼 놓으면 한 발 없어지기에, 나는 이날까지 걸음을 걸어왔다고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는 떼어 놓지 않았으니까 걸음을 걸어갈 거라고 말할 것도 없다 이겁니다.
 
이게 말이 이해가 갈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우리 생활에 근본적으로 있는 것을 말을 하지, 없는 것을 갖다가 조작해서 말하는 것은 미신에 불과하다 이겁니다. 우리가 지금 없는 것을 가르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있는 것을 있는 것대로 고대로 사실대로 얘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보이는 거, 색상으로만, 물질로만 치달아 올라가고 있습니다. 좋은 걸 보면 좋다 그러고, 금방 울 일을 가지고. 금방 좋다고 그것을 웃고 즐겼다가 그 물건이 없어졌을 때는 금방 울 것을 왜 웃고 좋다고 합니까? 금방 또 울 것을 좋다곤 왜 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좋아도 좋다고 할 게 없고 언짢아도 언짢다고 할 게 없다는 얘깁니다.
 
그 반면에 생활이, 모든 것이 그 내 잠재의식 속에서, 하나의 테이프 속에서, 모든 것이 거기서 테이프 소리가 나오는 거니까 거기다가, 바로 내가 지금 현상계에서 살아나가는 그 자체 모든 걸 거기다 맡겨 놓고 돌아간다면, 과거의 인과응보나 유전성이나 모든 악보 같은 문제들이 얽히고설킨 게 다 무너지고 없어진다는 얘깁니다. 어저께 한 일을 생각을 해 놓고 있고, 어저께 한 것을 집착을 하고 욕심이 있고 그렇다면 분별을 지키지 못하고 분수를 지키지 못한 채 건너뛰게 되니깐 물에 풍덩 빠지면 울고불고 야단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활이자 불교고 불교자 생활이고, 그 생활을 부처님께서 가르치시느라고 사십구 년을 설했답니다. 사십구 년을 그렇게 설했어도 여러분이 여직껏 그 이치를…. 길 없는 길을 우린 발 없는 발로 광대무변하게 우주 천하에 어디에고 아니 닿는 데가 없이 닿을 수 있는 그런 참자유인이 되라고 가르치셨는데 오늘날까지 기복으로 헤매고 돈다면 이게 말이나 될 법한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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