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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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본문

질문

큰스님 가르침 받들어 열심히 정진하고 싶은데 자꾸 바깥으로 끄달리는 마음을 돌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마음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이게 우리가 목마를 때 물 마시고 배고플 때 밥 먹고 똥 마려울 때 똥 누고 잠 올 때 잠자고 이러는 처지라면 이건 도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렇게 자유스럽게 살 수 있는 건데 자유스럽게 못 사는 것은 자기를 자기가 못 믿기 때문입니다. 그 습성 때문에. 자기를 자기가 못 믿는다면 자기가 망가지지 딴 사람이 망가집니까? 못 믿는 것도 믿는 것도 바로 자기가 자기를 믿는 거죠.

우리는 지금 그 공기주머니 속이라는 주머니에 들어 있어서 알궁달궁하고 그 여럿이 그냥 거기 다 들어서 살고 있어요. 그 주머니는 여러분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돌고 있거든요. 그런 것 생각해 볼 때에 바로 이 몸뚱이도 우리가 일로 가든 절로 가든 그 속에 있는 생명들은 우리가 어디로 다니는지 모르죠. 어디로 돌아다니는지를 몰라요.
 
그러니깐 항상 자기가 거기다 놓고 관하면 이 의식들도 전부 한마음으로 통한다 이런 뜻이죠. 통해서 내 마음을 내가 마음먹고 결정하는 대로 다 한마음으로 따라 준다 이런 뜻이죠. 그래서 공생이면서 공심이면서 공체면서 공용이면서 공식화한다 이런 뜻이죠. 이것이 각각 있는 게 아니라 네 가지가 모두 한데 합쳐져서 다섯 가지 중에 공식으로서 산다 이런 뜻이죠.

그러니깐 모든 게 우리가 생각하기에 달렸는데 모습 있는 이 유의 세계에서는 이 ‘이것이 있다, 없다’가 꼭 들어가지마는 이 무의 세계에서는 있다 없다가 없죠. 그리고 크다 작다도 없고요. 길다 짧다도 없고, 높다 얕다도 없고요. 못났다 잘났다 그런 것도 없고요.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합류화시켜서 그렇게 잘 돌아가게 하느냐. 그 도리를 알면은 합류화가 저절로 그냥 자동적으로 돼서 돌아간다 이거죠. 컴퓨터에서는 쪼끔만, 번호만 잊어버리면 다 그냥 회사가 몽땅 다 날아가지만 우리 머리의 입력이라는 것은 누구도 그건 뺏어 갈 수가 없는 거니까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냥 이 절에 와서 부처님을 믿는다, 이건 벌써 대상이에요. 이 부처님 앞에 오면 부처님 모습은 내 모습이고 부처님 마음도 내 마음, 부처님의 생명도 내 생명, 모두가 나와 둘이 아니죠. 둘이 아닌 까닭에 예배를 올리되 내면에서 이렇게 부처님한테 다 맡기고 하든지 안고 하든지 하여튼 예배를 올리는 거죠. 그러니 얼마나 간편합니까.
 
여기 찾아다니면서 기도하고 저기 찾아다니면서 기도하고 이렇게 분잡하게 하지 않아도, 이게 우리가 이 우주의 에너지 창고가 하나가 있다면 그 에너지 창고에서 수없이, 우리가 쓸 수 있는 거 용도에 따라서 다 꺼내 쓰는 거죠. 에너지 창고가 뭐, 수없이 있는 게 아니라 에너지 창고는 하난데 그 하나  속에서 다 나온다. 그래서 암흑은 암흑인 줄만 알았는데 암흑도 아니고 이게 밝음도 아니다. 그러면 밝음이 더 많이 비싸냐 암흑이 더 비싸냐. 암흑이 밝음을 가져오게 하는 바도 그 대비 대책을 세우는 에너지기 때문에 그건 둘이 아닌 까닭에 더 소중하다. 근데 그것만 소중한 게 아니죠. 밝음도 소중하고 그 에너지도 소중하고 그래서 둘이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 몸속과 이 모습과 어떻게 둘입니까, 그게. 둘이 아니죠.

그래서 믿는 것을 이렇게 상대를 놓고 믿지 말라 이런 뜻이죠. 전에 내가 어릴 때, 신부님한테 가서 고해 성사를 한다고 모두들 하는데 쭉들 서서 하는데 거기에 한데 끼어서 어린 마음이지만 그때 뭣을 생각했느냐 하면 ‘죄를 지은 사람들이 제각각 자기가 지어 놓고 저 신부님한테 저렇게 가서 죄 얘기를 하고선 죄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어리석으냐. 난 여기 서 있기가 싫구나.’ 그래서 다시 나왔거든요.

그러니까 그것도 한 생각이에요. 생각이 그런 생각이 들어서죠. 여러분들도 그냥 길을 걷다가도 한 생각이 나면 부자가 될 수도 있고 한 생각이 처절하게 되면 또 낙오가 될 수도 있고 그래요. 이 낙오되느냐, 부자가 되느냐 이런 것도 둘이 아닌 그 가운데서 네 마음이 결정하는 거다. “어떤 것이 불법입니까.” 하니까 “이리 오너라, 내 가르쳐 줄게.” 이렇게 불러 가지고선 멱살을 쥐고 그냥 한데 쥐어박으니까 “아이구” 그러곤 엎드러지더랍니다. 그러니깐 “아이구 하는 놈은 누구냐.” 하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인공이라는 그 자체의 종자를 발현해 내는 겁니다, 지금. 발현해 내는 데에 우리 주인공이라는 것은 쥘래야 쥘 수도 없고 볼래야 볼 수도 없고 그런 까닭에 종자 아닌 종자다. 그런데 “종자 아닌 종자를 심어서 키우는 데는 어떻게 해야 잘 큽니까?” 하고 물으니깐 “방귀씨를 갖다가 심어서 키우려면 방귀털을 먹여야지.” 이러더란 말입니다. “그 방귀털을 먹이는 것도 또 더 먹여도 안 되고 덜 먹여도 안 되느니라.”

우리가 다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문제 아닙니까? 그래서 옛날에 그런 대답을 하려면 연세가 많이 잡수신 어른들한테는 합장을 곱게 하고 하고, 좀 젊은이들한테 그 답을 하려면 또 소리가 나게 하고, 이런 문제들이 많이 있었죠. 그러나 그런 답을 그렇게 소리 나게 하고도 한 번도 벽 하나 손바닥으로 치지 못했다는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이 장벽 하나 치지 못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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