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깨달을 수 있는 묘법은 없나요?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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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깨달을 수 있는 묘법은 없나요?

본문

질문

마음공부를 나름대로 하고 있는데 진전이 없는 것 같아서 답답합니다. 어리석은 질문인 줄 알지만 뭔가 좀 탁 깨달을 수 있는 묘법은 없는 것일까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옛날 얘기 하나 할까요? 옛날에 어떤 사람이 공부를 하러 절로 들어갔는데요, 절에 인제 선지식들이 계신 데는 모두 선사님들이죠. 그래 인제 공부를 하시는데 거기 들어간 사람들은, 지금 강원에 가는 사람들은 학인들이고, 모두 그 뒤를 따라서 가는 사람들은, 즉 말하자면 선을 공부하는 스님네들이죠. 근데 스님네들이 한 다섯이서 떡 들어가니깐 “여기는 들어오지 못하는데 어떻게 들어오느냐.” 하니깐 “들어오지 못하는 데도 있습니까?” 이러거든요. 그래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끈 못 봤느냐? 새끼를 매 놨는데 그 끈을 못 봤느냐?” 그러니깐 새끼도 보고 방에 앉아 계신 어른도 보고 그랬다고 하더랍니다. 허허허. 그러니깐 ‘이놈 꽤 저거 하구나.’ 그랬는데 넙죽넙죽 들어가서 앉으니깐 어떡합니까.

그러니깐 “들어오지 못할 데를 들어왔으니깐 한번 맞아라.” 그러고선 주장자로다가 한 대 치니깐 “아이, 그거 참! 자리가 편안하더니 그 주장자가 들어오는군요.” 그러면서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제 주장자가 부족해서 스님이 주장자를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또 인제 그 다섯 사람이 죽 앉아 있다가 한 사람이 일어나더니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아이, 저희는 지금 귀신 방귀씨를 못 찾아서 이렇게 돌아다닙니다.” 그러니깐 “귀신 방귀씨를 찾으러 왔어? 그거를 바깥에서 찾으러 다니느냐?” 그러니까 “바깥이고 안이고 간에 모르는데 어떡합니까?” 그러더랍니다.
 
그러더니 또 한 사람은 있다 하는 소리가 “아, 귀신이 말을 하는데 여기 가면 방귀씨를 찾는다고 그럽디다.” 그래서 “그 귀신이 말을 해?” 그러고선 또 잠자코 있었더니 또 한 사람이 있다 하는 소리가, 아니, 귀신이 하는 소리가 거길 가면 아주 기르기도 좋고 아주 키우기도 좋고 참 좋은 데라고 그러면서, 거길 막아 놨으니까 그걸 박차고 들어가라고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다들 들어가서 그런 얘기들을 하고 있는데 다른 얘기는 할 거 없이, 거기 있는 사람 하나 부르더니만 “한 방망이씩 때려 봐라, 튀나. 매가 튀나 때려 봐라.” 그러니깐 그냥 한 방망이씩 가서 안기거든요. 한 방망이씩 안기니까 그 맞고 하는 소리가 “어이구!” 그러면서 “방귀씨도 때리니까 아프네.” 이러더랍니다. 그러니깐 “그럼 방귀씨는 얻었구먼.” 이러니깐 “아, 방귀씨는 얻었는데 이거 방귀씨를 기를 줄은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러거든요. 그래서 그러면 “한 방망이 더 때려 봐라.” 그러니까 벌떡들 일어서면서 하는 소리가 합장배를 하고는 그냥 고요히 절을 하더랍니다.
 
그래 절을 하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절을 했겠습니까. 어떻게 고이 기르고 어떻게 먹여서 잘 기를 수 있나. 방귀씨를 말입니다. 귀신 방귀씨를 얻기는 했는데 어떻게 잘 키울 수 있으며, 뭐를 먹여야 하며, 그거를 알러 갔는데 방망이로 때린다니까 또 한 번 맞았더라면 좋을 걸 안 맞고는 일어서서 곱게 절을 하더랍니다. 무슨 연고로 그렇게 곱게 절을 했는지 모르시죠? 아시겠습니까?
 
하여튼 우리는 이 세상에서 누구든지 막론해 놓고 더불어 같이 부처입니다. 왜 부처냐. 자불을 누구든지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생명력이 바로 자불이자 불성이자 그게 바로 주인공입니다. 주장자자 에너지자 그렇습니다. 그러니깐 그거를 잘 생각하셔서 내 본마음이, 예를 들어서 한 배가 고프니까 소나무 가지를 잘라 먹으려고 하다가 보니까 소나무 모가지를 이렇게 자르면 그 가장자리에 그거만 남죠? 그러면 소나무도 내 대가리 자른 것처럼 아플 거란 말입니다. 아프고도 쓸모없이 되죠. 그래서 맨 끝에 가장구를 하나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가장구 하나 먹어. 가장구. 이렇게 만났으니 만났으면 인연인데 윗도린 자르지 말고 아랫도리만 잘라 먹어” 이렇게 말을 하더랍니다, 나무가.

그래서 그거를 잘라서 “참 미안하고 고맙다.” 이럭하고선 잘라서 물을 빨아 먹으려니까 물이 나오지 않아요. 가장자리, 그 회초리 가장구기 때문에. 그래서 그 껍데길 벗겨 버리고선 그 속에 든 그 하얀 거, 그 물만 빨아 먹고선 물을 마시는데, 물을 마시는 데도 물을 막 마시려고 하는데 물을 세 모금만 마셔야지 더 마시면 안 된다 이러거든요. 근데 세 모금이란 뭡니까. 우리가 우주 삼세를 말해도 되고 삼 일을 말해도 되고 그런 거죠. 삼 년을 말해도 되고 삼십 년을 말을 해도 되고. 그렇게 된 도리를 말합니다.

근데 “세 모금만 마시지 더 마시면 안 돼.” 이래서 그걸 먹지 못하고 무슨 생각을 했나 하면 ‘야, 물도 살아 있고 물도 이게 모두…. 우리가 물, 불, 흙, 바람 이걸로 모두 생명들이 돼서 모습들이 생겼지마는 이 생명들이 생기고 이 모습들이 생겨서 하는 것도 이 지수화풍 때문에 모두가 먹고 살고 우리가 또 지수화풍을 먹고 살고 이러니까 그 이유를 가르치려고 그러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한 모금을 먹고선 세 모금을 한 모금으로 그냥 때웠죠. 때우고 나서 한 모금을 먹고 ‘이건 세 모금이 다 들어갔네.’ 이러곤 하니깐 ‘그 삼세가 한꺼번에 들어간 셈이네.’ 또 이렇게 들린단 말입니다. 뜻으로.
 
그래서 그것을 배우고 이렇게 하나하나 하나하나씩 배워 나간 게 나중에는 다 이렇게 터지는 것이 그땐 성불이 되고, 처음엔 견성이 되고 성불이 되고 이러는 거죠. 그러니깐 여러분들도 그냥 한꺼번에 알려고 애쓰지 마시고 그저 하나하나 살아나가면서 하나하나 ‘이 먹는 것도 먹는 사이 없이 먹어지는 거로구나. 우린 모두 탤런트 역할을 하고 사는 거로구나. 그런데 어떤 역할을 맡았느냐에 따라서 사는 게 부족지 않고 부족하고 이게 있구나.’ 이거는 누구가 하려고 아무리 앨 써도 안 되는 거고 그렇게 되게끔 아무리 할래도, 잘 살래도 안 되는 거거든요, 그게.

억지로는 못 해요. 자기가 타고 나온 것을 가지고만 사는 거죠. 이천 원 가지고 나왔다면 이천 원만 가지고 평생을 사는 거죠. 그런데 이 공부는 그렇게 하시면 이천 원도 삼천 원도 어려움도 부족함도 이게 전부 없어지는 거죠. 자유껏 사는 거죠. 그러니 자유자재하시고 잘 사십시오. 그러니깐 여러분이 잘 그걸 이해를 하시고 앞으로는 살림하면서도 ‘이 살림이 도(道)구나.’ 이렇게 생각하시고 열심히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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