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맘으로 주인공을 찾아야 하나요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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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맘으로 주인공을 찾아야 하나요

본문

질문

누구나 자기의 삶이 더 힘들다고 생각하겠지만, 저 또한 갚아야 할 빚 때문에 매일 힘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대행 스님의 모습과 법문을 대하면서 지친 마음을 애써 다독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는 게 답답하기만 하고 어느 날 주인공에 맡기라는 말 또한 너무 공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럴 때는 어떤 마음으로 주인공을 찾아야 하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첫째는 무조건 "네가 있다는 것을 네가 증명하는 거다." 하고서 관하는 거고, 둘째는 가정살이 돌아가는 것 전부 "그놈이 하는 거니까." 하고 관하는 거죠. 그놈이 하는 건데 뭐가 그렇게 답답하고 그렇습니까, 네? 이거 보세요. 내가 말하는 건 잘되고 못되고 그걸 떠나서 말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답답한 것도 거기서 나오는 거, 잘 안되는 것도 거기서 나오는 거, 잘되는 것도 거기서 나오는 겁니다.

그것이 다 내 속에서 나오는 건데 진짜 우주간 법계와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일체제불이 한 골수에 들어서 한자리를 할 수 있다면…. 내일 죽는다, 이따 죽는다, 우리 식구가 다 멸망한다 이러더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그런 결사적인, 나를 버린 그 마음이 정통으로만 들어간다면 뭐가 그렇게 어렵겠습니까? 뭐가 답답합니까?

그게 다 욕심입니다. 그렇게 생각 안 됩니까? 욕심입니다. 그 욕심을 부리지 않고 그냥 닥치는 대로 늠름하게 넘어가면서 진짜 칼을 뺄 때는 그냥…. 이거 보세요. 악으로 사는 사람이 칼을 썩 뺐을 때는 사람을 죽이는 칼이 됩니다. 그러나 살리는 칼을 썩 뺐을 때는 수많은 중생들을 다 살릴 수 있고, 한 나라를 세울 수가 있고, 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전체를 다 한 칼로다가 부릴 수도 있다 이 소립니다. 그런데 뭐가 그렇게 답답합니까? 내일 죽으면 어떻고, 이따 죽으면 어떻고, 식구가 다 죽으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한 번 죽을 거! 안 그렇습니까?

이 말이 너무 잔인하고 너무 안됐다고 생각합니까? 아휴 참! 이 세상, 이 길, 그냥 걸을 뿐이에요. 우리가 그냥 살 뿐이에요. 왜 사나? 내가 어디서부터 이렇게 와 가지고 지금 무엇을 하고 가는지 알아야 답답하지 않다 이 소립니다. 야! 이거 뭐, 캠핑 와서 잠시 있는데, 내가 생각하고 이러는 것이 우주간 법계에 다 통신이 되는구나. 이럴진대 내가 뭘 그렇게 걱정하랴.
 
하나도 걱정할 게 없어요. 소 한 마리를 잡는다 해도 걱정이 없고, 소 한 마리를 죽인다 하더라도 걱정이 없고, 이 세상이 다 없어진대도 걱정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살릴 수가 있는 거지, 아니, 그놈의 거 하나하나 걱정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건지고 살릴 수 있겠습니까? 가정도 그래요. 이판사판이에요. 두 가지뿐에요. 죽느냐 사느냐 요거뿐이지, 거기에 또 뭐가 붙습니까?

어떤 스님이 날더러 이렇게 말하더군요. ??스님, 이 토굴의 문에 못 좀 박아 주십시오." 그래서 "못은 왜?" 그러니까 "들어간 뒤에 바깥에서 못을 박아서 못 나오면, 죽지 않으면 얻을 거 아닙니까? 죽지 않으면 얻고 얻지 못하면 죽고, 이거 둘뿐 아닙니까?" 이거예요.

여러분이 이 도리를 알면요, 정말 아주 너그럽게 살아갈 수 있고, 너그럽게 두루 할 수 있고, 항상 싱그레 웃고, 남이 갓 미쳤다고 할 정도로 싱그레 웃고 길을 지나갈 수 있고, 소 둥구리를 봐도 싱그레 웃을 수 있어요. ‘저거 가엾다.’, ‘저거 죽으러 가지, 뭐.’ 이런 생각조차 없습니다. 왜? 아주 곧바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소 만 마리를, 아니, 어떤 거든지 만 마리가 모두 죽었다 그럴 때, 그것을 빗물 방울로 친다면 한 골짜기에 다 모였다 해도 한 골짜기에서 한 바다로 들어가는 물일 뿐이지, 한 그릇이지 그게 두 그릇입니까?

여러분의 그 마음은 체가 없고 무량해요. 그래서 무량심이에요. 일심이자 무량심이고, 무량심이자 그 묘법이죠. 무심도법(無心道法)은 그렇게 무량해서, 지금 수만 마리가 죽으러 간다 하는데 불쌍해서 염불을 해 주고 그런다면 그건 벌써 공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수십, 수백 마리가 죽으러 가는데 무슨 염불이 필요합니까? 염불하다 보면 벌써 다 늦는데, 하하하….

그러니까 그 순간에 그냥 모조리 이 한 그릇 자기 마음에다 탁, 거기다가 만 마리고 천 마리고 넣으면 그냥 자기 한 그릇이 돼 버리고 말아요. 그러니 그대로 그냥 인간으로 환토가 되는 거죠. 자기가 돼 버리는 거죠. 그렇게 자기로만 만들어 놓는다면 자동적으로 그냥 나가서 인간이 되는 거예요. 인간이 돼도 그냥 아무렇게나 되는 게 아닙니다. 그 속을 거쳐서 나가는 인간은 나와서도 정말 사람 노릇을 하고 이 세상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지략과 아량과 지혜가 충만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대로, 못났든 잘났든 그대로 그냥 수순히 걸어가세요. 그냥 딱 세우곤 입 딱 다물고 그냥 걸어가다가 딱 닥칠 때 ‘네가 하는 거지.’ 하란 말입니다. ‘너!’ 하고선 말 안 해도, ‘너!’ 할 때 그건 그냥 그대로 깜짝할 사이에요. 그러니 재생이 돼서 체가 나올 때는 거쳐서 나오는 그 시간이 있겠지만 이거는 자동적으로 불이 확 붙어서 끓는 쇠가 돼 가지고 직접 바로 나와요.

우리는 이 세상에 잠시 왔다 가는 거예요. 그러니 앞으로 살기 위한 욕심으로, 가난 때문에, 병고 때문에, 잘 살아야지, 위대하게 돼야지, 이런 것 때문에 이 공부 하지 마세요, 진짜. 진짜! ‘안 돼!’, ‘이거는 어떠한 억겁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내가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지!’ 하란 말입니다. ‘안 돼!’ 하면 그냥 안 되는 거지. 나도 이렇게 왁 소리를 지르고 그랬어요. 그러곤 그냥 손을 번쩍 쳐들어서 그냥 쳤단 말입니다. 야, 이게 진짜 깊은 물이 되기 때문에 큰 배가 뜰 수 있고, 큰 배가 뜰 수 있기 때문에 거기 중생들을 다 태울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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