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에게 이익이 되고 싶어요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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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에게 이익이 되고 싶어요

본문

질문

스님께서는 길을 가시다가도 한순간에 천도를 하신다는데, 저희 같은 범부들은 스님처럼 천도는 못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라도 이익이 되고 싶은데 그마저도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한 말씀 일러 주십시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길에 지나가다가도 천도재를 한다.” 이 뜻은 뭐냐. 천도를 한다는 겁니다. 소나 말이나 돼지나 어떠한 사람이나 가다가 보면 그 속을, 남의 속을 다 아니깐…. 남의 속을 다 아는 것, 타심통도 도가 아니다 이런 것이 뭐냐 하면 타심통을 안다면 즉시 실천을 해야만 되는 겁니다. 그게 도입니다. 실천 없는 거는 도가 아닙니다.

오신통은 그릇을 만드는 거고 또 우리가 실천은 그 그릇대로 담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그걸 무시하지 마시고, 육으로다가 한 걸음 한 걸음 떼어 놓는 거보다도 이 정신계의 참자기…, 자기란 수억겁을 거쳐 온 아주 보배입니다. 그래서 내 몸은 그 억겁을 거쳐 온 그 주인공이, 즉 말하자면 주장자가 주인이고 몸은 그냥 시자인 것입니다. 시자일 뿐입니다.
 
우리가 반가워서 악수를 할 때에 마음이 가니깐 손이 덩달아 따라간 거지, 마음이 안 가는데 어떻게 손이 악수를 하려고 덩달아 따라갑니까? 그래서 마음이 움죽거리는 것이 전체가, 여러분들이 움죽거리는 거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마음에 따라서 매여 있다 이겁니다.
 
그런데 그 매인 몸은 공했다. 매인 몸이기 때문에 공했다. 찰나찰나 물을 마셔도 내가 마셨단 말을 못 한다. 왜? 이 지구와 같은 이 몸속에 이 한 개체도 생명체들이 얽히고설키고 많이 있음으로써 어떤 것이 먹는다고 할 수 없으니깐 “내가 먹은 게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냉정히 따지고 보면 그 중생들이 달래서 나는 심부름만 한 거지, 아래로는 중생들의 심부름, 위로는 그 부처님의 시자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 모두가 아래 중생들을 모두 흡수해야 된다’ 이러는 거는 조복을 해야 된다. 한마음으로 조복이 돼야 내가 마음먹는 대로 한마음으로 따라준다 이겁니다. 그래서 그 의식들이 다 보살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겁니다.  부처님께서도 자기 마음을 그대로 천차만별로 보살행을 하게끔 자유권을 줬습니다. 자유권을 준 게 아니라 자기가 자유권을 가졌기 때문에 자유권이 있게끔 되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은 딱, 지금 그거를 ‘어휴! 내가 이거 뭐, 중생인데 이것을 이렇게 허공에 발을 떼어 놓을 때에 떼어 놓을 수가 있나?’ 이러지만 우리가 그냥 거기다가 맡기고 관하고 이러는 게 그대로 내가 죽는 방법이요, 내가 함이 없이 하는 방법이요, 둘 아닌 도리를 아는 방법이요, 구경계에 이르는 방법이요, 전부가 아니 되는 게, 아니 하는 게 없는 방법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내 모습 아닌 게 하나도 없느니라.” 했어요. 그러니까 내 마음 아닌 게 없고, 내 생명 아닌 게 없고, 공용이다, 공식이다 이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남을 건져 주는 데도, 하다못해 물에서 노는 고기 한 마릴 건져도 내가 수많게 화해서 그 고기로도 들어가고 짐승에도 들어가고 사람에게도 들어가고, 그렇게 해서 바로 그걸 건지는 겁니다.

부처님만 그러신 게 아니라 여러분들도 그렇게 마음공부 하는 분들에 한해서 그렇게 할 수 있다 하는 전제를 하고 지금 하는 겁니다. 마음으로 점프를 해서 계단을 한걸음에 올라올 수 있다면 강은 못 건너가겠습니까? 강 속은 못 들어가겠습니까? 은산철벽은 못 뚫겠습니까? 삼라대천세계는 못 가겠습니까? 두루 하죠.  덮고도 받치고도 남음이 있죠. 

그러니 우리 자체가 이렇게 관하면은 벌써…, 예를 들어 미국에서 기별이 왔는데 “지금 급하답니다.” 이러고 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여러분, 여러분 친척이 만약에 미국에서 사는데 미국에서 급하게 왔다고 합니다, 기별이. 그럼 어떡해야 되겠습니까? 그쪽의 마음도 이쪽의 마음도 둘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길다 짧다, 악이다 선이다 이거를 전제하고 무조건이었습니다. 무조건이십니다. 우리도 무조건입니다. 이유를 붙이지 않아야 됩니다. ‘너는 고렇게 얄밉게 했으니깐 넌 그렇게 해도 싸.’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는 도저히 부처님의 그림자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거를 그렇게 해서 할 때에 어떠한 생각을 해야 되겠습니까? 

여직껏 수차에 걸쳐서 여러분들한테 말씀해 드리고 실천을 하라고 그랬죠. 이거는 어떠한 거를 거기 집어넣고 해결을 하려고 하지 말고 주인공에다가 그냥 ‘둘 아닌데 너만이 할 수 있어!’ 하고 자기 주인공에 관하면 그 주인공으로 그냥 나투게 됩니다. 나투게 돼서 그것을 멈추게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급하니깐 그랬지만, 가까운 데서 그럴 때는 데리고 와서 관하는 것도 가르쳐 주고 이러면서 가르쳐 줘야 자기가 자기 발로 걸어갈 수 있을 거 아닙니까. 그러니깐 가까운 데 사람은 조금 공부를 가르치는 편이고 또 가깝지 않고 멀리 있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거나 이러면 무조건 줘야 합니다. 아셨죠?

그게 바로 무심 도리요, 바로 공용의 도리요, 공체의 도리요, 공식의 도립니다.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뭐든지 내줄 수 있는 여건이라면 다 내준다 이런 거 말입니다. 내도 내도 줄지 않고 또 넣어도 넣어도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수만, 이 허공을 다 집어넣는대도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그건 체가 없는 까닭입니다. 체가 없는 데다가 체가 없는 걸 넣으니까 이 천차만별의 생명들을 다 집어넣어도 두드러지는 법이 있겠습니까,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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