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으로만 공부하는 척했어요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는
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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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으로만 공부하는 척했어요

본문

질문

저는 집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절에 다니기 시작하였고 새벽에 108배 정진을 하면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대행 스님의 법문을 듣게 되었고 저도 제대로 마음공부를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제야 돌아보니 제가 너무 바깥으로만 공부하는 척했던 것 같습니다. 저 같은 사람들이 바르게 공부할 수 있도록 가르침 부탁드리겠습니다.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우리가 수 해를 두고 이날까지 이렇게 봐 왔고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기복으로만 많은 세월을 흘러왔습니다. 그것이 아주 배서 인제는 바깥에서 빌고 또 바깥에서 구하고 그러는 일들이 아주 습으로 남아 있어서 그것을 녹이기가 매우 힘든 것입니다. 우리가 평생토록 가도 성품 바깥에서 법을 구하면 안 된다는 얘깁니다. 마음 바깥에서 부처를 찾아도 안 되거니와 성품 바깥에서, 즉 법을 구해도 안 된다 이 소립니다.
 
그래서 항상 누구나가 이 몸으로써 내가 고행을 해서 그 법을 구하겠다고, 또 옛 성현들이 그 마음을 깨달아서 말씀하신 그 말씀을 좇아 구하려고 하는 그러한 마음들을 가져서는 절대, 그것은 바깥에서 구하는 게 되기 때문에 결국은 성품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결국은 내 몸으로써 아주 하루 종일 앉아서 눕지를 않고 그런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또 머리를 짜내서 대경(大經)을 쓴다고 해도 아니 되고, 또는 내 몸을 잘라서 태운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내 부처를 구하지 못하고 성품의 법을 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 발이 부르터서 디딜 수가 없이 만들어서 고행을 하면서 정말 몸을 이리 뒤치고 저리 뒤치고, 이리 잘라지고 저리 잘라지고, 이리 찢어지고 저리 찢어지도록 고행을 한다 하더라도, 만약에 마음 바깥에서 구한다면 이것은 절대로, 겁을 거쳐서 한다 하더라도 자기의 참맛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 어른들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죠. 그렇게 찾는 자는, 바깥에서 그렇게 구하고 성품 바깥에서 법을 구하는 자들은, 몸을 또 그렇게 패대길 쳐서 그렇게 고행을 해서 구한다고 생각을 하는 자들은 모래로 밥을 지어서 바로 법을 구한다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라 이런 소립니다. 모래로 밥을 지어서 밥이 되는 것입니까? 그래서 그걸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항상 얘기했지만 우리가 많이 말을 듣는다고 해서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한 믿음을 갖되, 어느 절에 가더라도 말과 뜻과 행을, 세 가지를 종합해 봐서 이 견해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바로 그것을 진실히 믿고 따르면서 자기 마음 안에서 부처를 구하고 자기 성품 안에서 법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실히 믿는다 해도 기복을 가지고 한다면 견해가 밝지 못해서 그것은 바로 마구니로 빠지기가 십중팔구 쉽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견해가 밝아야 밝게 보고 옳게 행을 하면서 믿음을 진실하게 마음 안으로 굴려서 자기를 자기가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이 도량의 스님네들은 앉는다 선다 생각 없이 공한 그 자기 몸을, 즉 말하자면 화두로 삼아서 일상생활에 일분일초도 끊어지지 않게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처음에는 넓으나 점점 가면서 좁아들고 막다른 골목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처음에는 좁되 점점 가면서 넓어지면서 이 천지 만물이 다 화창하게 빛을 보는 것입니다. 나와 더불어 말입니다. 그렇게 넓어지는 것입니다.
 
이 공부가 그렇게 묘하고 광대무변한 것은 내 마음 안에, 심원 안에, 온 누리의 삼천대천세계 모두가, 모든 법이, 찰나찰나 천차만별로 돼 있는 그 법이 한마음 심원에 들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갖가지로 이름을 붙여서 따지지 않아도, ‘무슨 경에는 무슨 말씀, 무슨 경에는 무슨 말씀’ 하지 않아도 그 하나하나의 이름이나 그 말씀 자체나 또 그 뜻 자체가 그 심원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이거를 각자 눈 따로 귀 따로 코 따로, 이것은 눈은 뭘 보고 뭘 보고 이렇게 봐야 하고, 그렇게 보는 것 따지고 또 귀, 듣는 것 따지고 이러다 보면, 내 몸 전체의 모든 것을 일일이 따지게 되면은 한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몸 전체를 가지고 우리가 내고 들이는 것이, 내 몸 안에 마음이 있고 마음 안에 천차만별로 돼 있는 그 법이 다 있고, 법 안에 바로 행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적든 많든 이 뜻을 정렬하게 생각해서, 마음 밖에서 내 부처를 찾아서는 아니 됩니다. 그리고 내 생각하는 이 성품 안에서 법을 구해야 되겠죠.
 
      그러니까 우리가 스스로 내 마음만 깨닫는다면 만법의 원리가 내 심원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모든 게 문 아닌 게 없고 시 아닌 게 없어요. 법 아닌 게 없고 보배 아닌 게 없고.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깨닫는 데에 역점을 둘 때에 바깥에서 끄달리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 해를 걸쳐 놓고 바깥에서 끄달리고 부적이나 해 들고 다니고, 또는 밥이나 놓고 빌려는 생각이나 하고, 내가 잘되려는 생각이나 하고…. 그거 잘되는 거는 뿌리만 성성하면 가지도 성성하고 이파리도 성성할 것을, 괜히 뿌리는 썩어 들어가는데 아니, 그렇게만 하고 돌아다니면 내 가정의 풍파나 우환이나 가난이나 그 아픔의 쓰라림이 다 메워질까요? 점점 더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밝힘으로써 가정이 화목하고 그 가정이 조어되면서 조화를 이루고, 조화를 이루면서 우리는 화목하게 웃음을 웃을 수가 있는 그런 가정이 되며 사회가 되며 국가가 될 것입니다. 우리 한생각이 얼마나 묘한지 이 국가를 다 다스리고도 남음이 있고, 우주를 상응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묘한 인간의 법이 얼마나 참 좋은 법입니까?

이런 것도 모르고 우리는 급급하게 내가 가난하다고 울고 빌어야만 하고…. 그 값싼 울음은 울지도 말아요. 어차피 울려면, 온 우주에 근원을 두고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그 눈물이 아마 온 바다를 메우고도 남음이 있을 겁니다. 값싼 웃음도 웃지 말 것이며, 값싼 눈물도 흘리지 말 것이며, 값싼 생각도 하지 말라는 얘깁니다.
 
      우리가 이날까지 기복으로 참 많은 세월을 흘러 내려왔으니까 인제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서 옷깃을 다시 한번 여미고 진심으로서의 내 마음 안에서 내 자부처를 구하면서, 내 성품 안에서 모든 법을 구하면서…, 만법의 진리가 바로 내 마음 안에 들어 있으니. 이 마음 안에 들어 있는 이 묘법을 두고 그냥 가시렵니까? 이 세상에 나왔다가 그냥 가시렵니까? 그 만법 좋은 거를, 묘법을 두고!

어렁더렁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렇게 살다가 그냥 또 허무하게 떨어진다면 세세생생에 이렇게 굴러야 하는 것을 면치 못하며, 더 나아가서는 좌천이 돼서 짐승의 허물을 쓰고 또 그렇게 굴러야 하는 그런 이치를 우리는 자세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미거하고 바깥에서만 구하고 항시 그렇게 어리석게만 나간다면 우린 그 인과응보, 이런 것을 떠날 수가 없으며 유전성을 떠날 수가 없다고 수차에 두고 말을 했죠. 자기가 한 것만치 받는다고요. 그러나 이 공한 도리를 알고 묘법을 안다면, 바로 내가 한 것도 없고 안 한 것도 없이 그렇게 화창한 날씨에 온 누리에 꽃이 필 수 있고 열매가 맺을 수 있고, 그 열매는 바로 무르익어서 온 누리의 여러 부처들이 다 그 맛을 볼 수 있는 불국토가 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난 글자 한 자를 배우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마음을 깨달으면 모든 게 보는 대로 글이요, 말이요, 법이요, 이것이 말 한 번 한 번 할 때마다 한데 떨어뜨린다면 안 되는 진실, 그 진실을 그 마음 가운데에는 모르는 사람이든 아는 사람이든, 거지든 부자든 다 누구나가 똑같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지질하고 못 배우고 했으니까 나는 이 부처님 법도 못 배우지.’ 이런 생각은 아예 마십시오. 그렇게 훌륭한 소동파도, 그렇게 영리하고 말을 타고 가면서 병풍 글씨를 다 외워 두는 그 소동파도 그 승허 선사한테는 바로 대답 한마디 못하고 분해서 묵묵히 달아나가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건 글자로 따지려도 따질 수 없고, 글귀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글귀에 들어 있는 것이 진리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을 깨달아서 결국은 그 글귀의 말씀을 말씀대로 쓸 수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말이 한데 떨어지면 말인 것이고, 그 말이 말씀이 된다면 바로 법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도 한데 떨어뜨릴 게 없고, 하나도 버릴 게 없고, 버릴 게 없기 때문에 산천초목의 바로 그 푸른 잎은 전부 여러분의 몸이 되고, 폭포수가 흐르는 것은 바로 지혜로서 설법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이런 이치를 잘 안다면 어느 거 하나 떨어뜨려서 던질 게 없다는 것입니다. 던질 게 없기 때문에 우리는 “무!” 했던 것입니다. 너무 문이 많고 너무 묘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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