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의 절에서 공부하고 싶은데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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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의 절에서 공부하고 싶은데

본문

질문

큰스님께서는 생활 속의 참선을 가르쳐 주셨지만 생활에 찌들리며 살다 보면 가끔은 산속의 조용한 절에 가서 참선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 때가 있습니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 조용한 곳에서의 참선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사람들이 참선을 한다 하면 그저 몸을 조아리고 앉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몸을 수행시키는 게 아니라 마음을 수행시키는 공부를 합니다. 딴 데서 하는 게 틀렸다고 하는 건 아닙니다. 오늘도 어느 스님이 오셔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미국에 가서 보니까 스님네들이 좌선, 참선하는 자세를 가르치고 계셨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좌선을, 앉아서 하는 걸 가르치고 가는 것만이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뜻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앉았다가 일어나면 선(禪)은 끊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이란 앉아 있는 것도 아니요, 서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앉아야 된다고 하는데, 그전에도 마조(馬祖)가 앉아 있으니까 회양(懷讓)은 기왓장을 갈았다 하지 않습니까? “넌 뭐를 하려고 그렇게 앉았느냐?” 하고 묻자 부처를 이루려고 앉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너는 일어나지도 먹지도 누지도 말아야지 선이 끊어지지 않지, 그렇게 앉았다 일어나면 선이 끊어지는데 어찌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하니 거기에서 그만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앉았다 일어나면 선이 끊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앉았다 하면 아주 일어나지 말아야죠. 그게 목석입니다.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해 보시고 '아, 이것이 아니라 바로 마음 수행이로구나.' 해서 그 후로는 마음의 수행을 중시하셨고 힌두교도에게 수행하는 방법도 일러 주셨죠. 우리가 지금 망상이 일어난다 이러는 것도, 아까 얘기했지만 그건 망상이 아니다 이겁니다. 가르치기 위한 방법으로 망상이라고 그랬지 우리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이 생각 저 생각, 나쁜 생각 좋은 생각 이런 게 안 난다면 어떻게 부처를 이룹니까? 그러니 부처 가운데서 중생이 나왔고 중생 가운데서 부처를 이루었다 했습니다. 어찌 그것이 둘이라고 봅니까?

그런 반면에 참선이라는 이 자체는 바로, 첫째, 주인공만이 주인공이 있다는 증명을 해 줄 수 있는 거다. 둘째, 증명을 해 줌으로써 둘이 아니게 돌아감을 알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들이고 내는 그 능한 도리를 알게 해 줄 것이다 이겁니다. 바로 그렇게 둘이 아니게 돌아가는 그것을 아는 까닭에, 세 번째는 바로, 둘이 아니게 이 모든 일체 생명과 더불어 같이 나툰다고 하는 도리가 바로 거기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망상이다, 망상이 아니다 하는 것을 다 놓으라 하는 겁니다. “선으로 돌아간다면 악이 붙고, 악으로 돌아간다면 선이 붙으니 어찌 벗어날 길을 찾으랴. 악도 놓고 선도 놔라.” 그런 것이죠.
 
그러니까 마음이라는 이 자체에서 그대로 묘하게, 인간을 첨단으로 이루게 할 수 있는 그 마음이 용솟음치고 나옵니다. 그 마음을 좀 더 넓혀서 생각을 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지, 그 마음이 얼마나 묘합니까? 그 마음은 여러분의 보배인 것입니다. 즐거운 것도 가져올 수 있고 슬픔도 미움도, 또 선의적인 마음도 악한 마음도 듣고 보는 대로 생기니 그 얼마나 묘합니까?
그것을 망상이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아하, 이런 것이 전부 죽 솥에서 끓는 죽 방울 나오듯이 그 많은 생명의 의식 속에서 나오는 건데 내가 왜 거기 말리랴.'라고 해야죠. 죽 방울이 '그냥 그렇게 해!' 그렇게 나와도, '네가 했으니까 네가 모든 것을 그 한마음 속에서 해결해라.' 하면 '야, 내가 네 속을 썩이려고 그냥 막 이랬는데 너는 유유하게 말이야, 내가 그러는지 벌써 알고 있으니 재미가 없어.' 그래서 그만두는 겁니다. 그러니 속이 터지던 것도 그만 가라앉는 겁니다. 자기 탓으로 돌리니 눈물만이, 아무 상관 없이 눈물만 흐르는 거지요.
어떤 분이 그렇게 했다면, 정말이지 앞으로 머지않아서 정말 우죽 쏟아지듯 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보세요, 우리 마음의 뿌리가 칡뿌리라면 하여튼 굵고 깊이 박혔어야 그 가지마다 굵게 뻗어 나가니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여름이 되나 사철 그 칡꽃은 어김없이 필 것입니다. 그와 같이 인간의 꽃이라는 것은 그렇게 무궁무진하며 뿌리가 깊으면 아무리 비바람이 쳐도 그것은 뽑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이 몸 안에서 마음이 벗어나야 할 텐데요, 첫째는 몸 안에서 벗어나야겠다. 이 몸 안에서 나오는 그 모두를 다스릴 수 있어야겠다는 것이지요. 내 몸이 있으니까 그 중생들이 있는 겁니다. 내 몸이 없다면 그 중생도 없고 바로 상대도 없습니다. 그런데 내 몸이 생겼으니까, 어떻게 됐든지 내 몸이 이렇게 생겼으니까 내가 있는 것입니다, 모두. 내 몸의 중생들이 어떻게 놀든지 모든 것을 내버려 둘 수 있는, 들으면서도 행하면서도 자기 마음이 자기 그 많은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그런 마음이 돼야 지배인이 된단 얘기입니다. 그 모든 의식 속에서 지배인이 되죠. 그 지배인이 돼야만이 그 모두를 이끌고 나가는 선두자가 되죠. 그럼으로써 그것이 직접 참선이 되는 것입니다, 그게. 그래서 참선을 하게 되면 그때는 완전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참선을 한다 하면서 진짜 참선은 못 하고 가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주 쉬운 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그 모든 의식들이 헤아릴 수가 없이 있는데, 주인공을 용광로라고 생각하고 나오는 대로 모든 것을 그냥 거기에 넣어라. 이건 자동적이기 때문에 거기에 넣는 그 작업만 한다면, 놓기만 하면 거기서 새 쇠로 재생이 돼서 나간다.” 그럼 그게 거죽으로 나오는 겁니다, 지금.
그런데 앉아서 참선? 산골에 들어가서 참선? 아니, 산골에 들어가면 거기 부처가 있고 산골에 안 들어가면 부처가 없습니까? 여러분입니다! 즉, 여러분부터 알아야 부처님의 마음을 통달한다고 그랬어요. 여러분이 자신을 모르는데 어찌 남의 마음을 알겠습니까? 자기 마음부터 알아야 깨달은 부처님의 마음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셔서 안방에 앉아 보세요. 자기가 거기 있기 때문에 부처가 거기 있지 아, 자기가 없는데 무슨 부처가 있습니까? 자기가 없는데 부처가 어딨으며, 또는 내 몸뚱이를 끌고 저 산골로 들어가 본다 하더라도…, 나도 한바탕 웃었습니다마는 끌고 다니면서 그렇게 했어도 끌고 다닌 자체가 없더라 이겁니다.

그러니 좌선은 마음 편안한 걸 말하고 참선이라는 거는 마음 편안한 데서 참진리가 나온다는 뜻입니다. 좌선과 참선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모든 걸 용광로에 넣고 내가 편안하게 '아, 내 주인공만이 주인공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줄 수 있는 것이지.' 하고선 관할 때, 마음이 한군데로 몰아져 편안할 때, 그 진리가 거기에서 나온다 이겁니다.

또 여러분이 집에 어떤 급한 일이 있어도 '아하, 내 주인공만이 그것을 해결할 수 있지. 내가 주인공 심부름꾼인데 그저 당신만이 해 줄 수 있어.' 하고선 거기다 놓아야 편안하게 앉아서 관할 수 있는 것이지, 이건 나오는 대로 일일이 생각하고, 몸뚱인 여기 앉아 있는데 마음은 이리로 가고 저리로 가고 온통 그러다 보면 그게 무슨 좌선이며 참선입니까? 그러니까 마음이 항상 안정됐을 때, 가게에서 장사를 해도 그건 꿈쩍 안 합니다. 여전히 웃고 부드럽게, 장사하면서도 그 심봉은 꿈쩍 안 합니다. 눈 하나 깜짝 안 합니다.

어떤 때는 야, 텔레비전을 보고도 그렇고, 세상을 보고도 그렇고, 사람들 그 울부짖는 거를 보고도 그렇고, “스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고 그냥 울 때도 그렇고 이거는 뭐, 이렇게 듣는 것만 해도 참 기가 막힙니다. 그러면 내가 미국에서 머물렀던 40일 동안에 몇 사람의 소리를 들었을까요? 그걸 수효를 따진다면 한 사람도 건지지 못합니다. 그걸 남으로 안다면 한 사람에게도 이익을 못 준단 말입니다. 그저 높이 보지도 말고 낮추어 보지도 말고 자기같이만, 못난 자기같이만 보면 됩니다. 그래야 사랑을 할 수 있고, 그래야만이 이익을 줄 수 있고, 그래야만이 공덕이 될 수 있다 이 소립니다.

그전에 제가 그렇게 산골로 다녀도, 목신도 있고…, 뭐 없는 게 있습니까, 어디? 다 있지. 그 생명의 의식들이 다 친구가 되고 벗이 되니까 무서운 게 어딨습니까? 아, 보세요. 모두가 친구인데 어떻게 무서울 게 있습니까? 너 나가 있기 때문에 무서운 거거든요. 그래서 때로는 조금 머저리 같아도 좋다 하는 겁니다. 좀 모르는 듯한 것이 그럴 땐 조금 낫더라 하는 거죠. 내가 약았으면 그렇게 못 하죠. 지금처럼 이렇게 밝고 밝은 세상에 말입니다. 그리고 보세요. 지금 세계는 전파를 통해서 두루 하는데, 앞으로 마음공부가 아니라면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이겁니다. 물질은 무상(無常)하다 이 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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