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죽어야 한다는 뜻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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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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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 죽어야 한다는 뜻

본문

질문

 

대행 큰스님께서 세 번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뜻이 어디에 있는지요. 그렇다면 초보 불자로서는 어떻게 공부해 나가야 하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본원관리자님의 댓글

본원관리자 작성일

여러분이 공부를 할 때에 첫째에 모든 것을 놓는다. 모든 것을 맡기고 산다. 모든 잡념과 모든 전자에서부터 얻은 그 습성을 다 녹여 버리고 자기의 그 참 생수 맛을 봐서 자기가 자기를 알았을 때에, 이차적으로 자기를 또다시 한번 체험하면서 상대방과 나와 다시 죽는 법을 또 배워야 된다. 상대방과 나와 다시 죽는 법을 배워야 된다. 그다음에 세 번째, 상대방과 나와 더불어 같이 나툴 줄 알아야 한다. 만약에 상대방과 나와 죽지 않는다면 상대방과 나와 같이 나툴 수가 없는 겁니다.
 
이 모두가 이러한 경험 저러한 경험, 우리가 살림살이에서 다 하고 돌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놔 버리는 데, 맡겨 놓고 사는 데 여념이 없어야 하는 겁니다. 생활을, 온갖 작동을 다 하면서도 그 모든 작동하는 것이 바로 자기 주인공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운전수가 차를 몰고 다니듯이 차는 그 운전수에 달려 있는 것이지 차가 운전수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듯이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자기 전자부터의 종 문서는 몰락 태워 버릴 수 있다 이겁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탄생했을 때 내가 나를 가르치기 위해서 엉뚱하게 이 세상에 걸맞지 않는 말과 행이 솟아 나올 때도 있거든요. 그럴 때는 오관을 통해서 내가 보고 이것이 걸맞지 않는다면 자기가 제재해서 근본 자리에 다시 놔야 하는 법입니다. 보는 대로 듣는 대로 무조건 들어서도 되지 않는 거라고 봅니다. 안팎이 다 그렇겠죠?
 
그래서 양면을 다 쥐고 이것이 옳으냐 이것이 옳으냐 할 필요도 없이 즉각적으로 이게 잘못됐다는 거 잘됐다는 걸 알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잘못됐다는 걸 번연히 안다면 이것을 믿고 들어가라. 믿지 않는다면 물론 불평이 나오고 상대가 있으면 불평이 나옵니다. 믿고 상대가 없다면 불평은 없습니다. 여기에서 만약에 이 소리를 들었다 저기에서 저 소릴 들었다, 저걸 봤다 이걸 봤다 했을 때 믿지 못하는 까닭에 그렇다. 믿지 못하는 까닭에 소릴 들었기 때문에 분이 일어난다, 소릴 들었기 때문에 나는 어떠한 말을 한다, 이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내가 만약에 저 사람이 나라면, 둘로 보지 않았다면, ‘아, 그렇기도 하겠지. 고정됨이 없으니까 때에 따라서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겠지.’ 하는 믿음이 있다면 거기에 한마디 할 것도 없고 안 할 것도 없는 거죠. 자기 안에다가 모든 것을 ‘아, 내가 지금 현재에 이렇게 생각할 때는 이러한데, 전에는 안 그랬는데 어째 이렇게 될까.’ 하고 생각이 됐을 때는 안에서 굴려서, 자기가 자신의 소리를 들어야 할 수 있는 그 방법이 바로 내가 지금 세 단계가 없는 세 단계에 의해서 말씀드린 겁니다. 그 도리를 거기에서 넘기지 못한다면 같이 죽어서 같이 나툴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심사숙고해야 된다는 얘깁니다. 공부하는 사람일수록 더 이거는 심사숙고해야 된다.

그러니까 한 철 사는데 사람답게, 한마음 한뜻으로써 누구를 미워하지 말고 경계하지 말고, 적어도 마음으로는 그렇게 가짐가짐을 갖고 언제나 항상 말조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생각하고 말 한마디 잘못하는 게 그게 업보가 얼마나 큰지 모를 겁니다, 아마. 그냥 추측으로 생각하고 그냥 막 생각하고 말하고 이런다면 그건 업보가 큽니다. 그러니 어떠한 잘못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 생각이지, 그건 나하고는 상관없이 생각하십시오, 각자. 남이 칼로 찔러 죽인다, “너 이놈! 내 오늘 저녁에 너를 칼로 찔러 죽인다.” 그러더라도 “허허” 하고 빙긋이 웃을 수 있는, 그리고 그 사람을 탓 안 하고 겁내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주인공만, ‘내가 있으니깐 찔러 죽이러 온다지, 내가 없다면 찔러 죽일 게 뭐 있어서 오겠나.’ 하고선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 칼도 들지 못해요.
 
  여러분! 실질적으로 이 세상 살아나가면서 부처님 법이 어디 따로 있나요? 내가 부처님 법이고 내가 부처님 법을 행하고 있고, 내 가정이, 다 살아나가는 게 부처님 법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한 걸음 걷고 말하고 움죽거리는 게 다 부처님 법이니, 이것이 참선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나를 발견하는 바로 재료구나. 부딪치는 게 다 재료구나.’ 이렇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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