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참선을 했었는데 > 길을 묻는 이에게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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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법문 중에서 발췌하여 답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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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참선을 했었는데

본문

질문

전에 어느 스님께 무 자 화두를 받고 화두 참선을 했었는데 진전이 없어 답답한 마음에 질문 올립니다. 참선을 바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본원관리자님의 댓글

본원관리자 작성일

지금 각 절에서나 신도 여러분이나 스님네들이나 다 각자가 큰스님한테 화두를 받아서 좌선을 한다 하는데 한번 이런 말을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겠습니다. 우리가 부처님 법의 언어로 말한다면 “사대(四大)와 오온(五蘊)이 공(空)했는데 무엇을 가질 게 있고 놓을 게 있느냐?” 이런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말만 알았지 뜻을 모를 때는 안 것 그 자체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다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참작해서 한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스님이 화두를 줬다 그러면 이차적으로 ‘이 화두를 끊어지지 않게 하고 들어야지’ 하는 생각이 납니다. 삼차적으로는 여기에다가 모든 것을 일임하고서 앉으나 서나 끊기지 않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좌선을 해도 이것을 꼭 가지고 ‘뭣고 뭣고 뭣고’ 하고 돌아갑니다. 자기가 스스로 벌써 공했기 때문에, 내가 공하고 세상이 공했기 때문에 내가 하는 것마저도 공했고 내가 가질 것도 가진 것도 공해 버렸으니까…, 모든 것이 가질 게 하나도 없다는 그 점은 뭐냐? 내가 본래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질 게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걸 한번 침착하게 생각을 해 보십시오. 내가 본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모든 거를 나쁘다 좋다 해 왔고, 여러분이 다 움죽거리고 있고 여러분이 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판단 못 하고 남한테 이끌려 가는 것도 바로 자기 중심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남이 준 화두, 바로 이것을 꽉 쥐고 굴리질 못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나는 일 초도 머무르지 않고, 그냥 머물렀다가 돌아가고 머물렀다 돌아가고 이것이 한정 없이, 어느 한군데 고정적으로 국한된 게 없이 전부 변천해 돌아가고 부서져 버리고 상해 버리고, 또 나는 만날 때마다 변하고 또 말할 때마다 딴 말 하게 되고 만날 때마다 딴 사람 만나서 딴 사람 생각하게 되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공했다는 얘깁니다. 갖가지로 소소영영하게 가지고 소소영영하게 하면서도 공했다는 얘깁니다. 그대로 여여하게 우리가 간다는 얘기죠. 놓고 간다는 얘깁니다.

그랬으니 항상 그릇은 비어 있다는 얘긴데, 마음으로 만들어서 지어 가지고, 문도 없고 걸릴 것도 없는 것을 마음으로 지어 가지고 ‘그 큰스님이 이렇게 하시니까 이것이 불법이다’ 하는 걸 쥐고서는 그거를 놓질 못하고 가기 때문에, 되려 자기 마음이 자기 문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열지 못하고 닫지 못하는 그런 이치가 허다합니다.

그러면 참선이 어떤 것이 참선이냐. 참선은, 행선도 참선이요 좌선도 참선이요 입선도 참선이요, 모든 행 전부가, 일거수일투족 전부가 참선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모두 ‘아, 결제가 되면 한 철 선방에 가서 나야지. 앉아서 좌선을 해야 그것이 으뜸이지.’ 요렇게 변경이 돼 버렸단 말입니다, 마음이. 육신 떨어지면 마음도 떨어지고, 마음 떨어지면 코도 떨어지고 입도 떨어지고 다 떨어질 것을 뭐가 그렇게 쓸모가 있다고 그렇게 이 육신을 가지고 매달리고 그렇게 해야만 됩니까? 

마음이 주인공에 모든 걸 일임을 시켜서 놓는다면 모든 것이 편안하고, 편안한 반면에 반드시 내가 생각을 하면 바로 자가 되는 것이고 생각을 안 하면 부가 되는 것입니다. ‘부와 자가 둘이 아니니라’ 하는 뜻은 ‘부는 자로 가면 자가 돼 버리고, 자는 부로 오면 부가 돼 버린다’는 얘기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모두가.

그러니까 주인공에 모든 것을 놓고…, 참 그 도리를 안다면 어떠한 거든지 못 할 게 없고, 어떠한 거든지 주인공이 하는데 내 거라고 할 것도 없고 남의 거라고 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모두는 내 것도 아니면서 전체 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따로 내 것이 있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그럼으로써 일체 한생각에는 나도 건질 수 있거니와 남도 건져 줄 수 있는 그런 여건의 능력이 바로 샘솟듯 한다 이겁니다.

그래서 감로수가 돼서, 그 감로수로써 양식을 삼는다는 얘기입니다. 감로로써 양식을 삼는다면 어떠한 사람이든지, 내 중생이든지 남의 중생이든지 모든 것을 이끌고 나갈 수 있는 그런 여건이 생겨서 주인공이 모든 것을 내고 들입니다. 그럴 때 만약에 여러분이 내가 알지는 못하나 내 주인공이 전체를, 상하를, 전체 동서남북을 다 가지고 있다는 거를 알게 되자 믿어지고 바로 거기에 어떤 여건이 있다면 거기에다가 상응한다 이거죠. 그러면 ‘당신이 전부 하시는 거니까 당신이 이것도 해결을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즉시 그것이 반영된다는 얘깁니다. 우리가 성냥불을 탁 켜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성냥불을 하나 탁 켰는데 왜 안 되는가. 안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재판소에 가서 일을 하려면 서류를 꾸미고 도장을 맞고, 그게 다 끝나도 또 그 서류가 돌아서 통과가 되어야 해결이 나듯이, 이런 것도 있는가 하면 그것이 즉시 되는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되고 안 되는 것을 생각해서 여기 오는 게 아니라, 되고 안 되는 것을 다 놔서 능력을 기르려고 여기 오시는 겁니다.

선방에 가서 육신을 구부러뜨리고, 무릎 관절이 상하도록 앉아 있는 것만이 참선이 아닙니다. 그건 ‘앉아서 내가 참선을 해야지.’ 생각을 했기 때문에 참선을 하지 않는 거고, ‘참선을 다 했다.’ 하기 때문에 벌써 그것은 아닌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참선이 자꾸 끊어졌다 붙었다 끊어졌다 붙었다 하는 생각으로 하기 때문에 그건 백 날 천 날을 해도 아마 자기 부처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 능력을 생활에서 한 가지 한 가지 체험하고 또 가다보면 그것이 커지고 커져서 마음의 사리가 온 우주를 덮고, 온 우주를 받들고도 온 우주를 둥글리고 살 수 있는 그런 여건이 되면서 바로 대장부인 것입니다. 그러니 참선이라는 게 어떤 종류의 것이 참선인가를 생활하면서 체험해야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서, 일할 때나 변소에 가서도 자기가 있는 곳에 부처가 있고, 법당에 들어왔으니까 거기 부처가 있습니다. 부처님을 조성해서 이렇게 모셨습니다. 그러면 저분도 코 있고 눈 있고 귀 있고 몸이 있습니다, 손 있고 발 있고. 여러분이 다 같이 둘이 아니라는 걸 표시하기 위해서 조성해 놓은 겁니다. 그리고 그 마음도 또 둘이 아닙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여기서 정중하게 몸으로써는 모든 걸 살펴서 계법을 그대로 지키면서 질서를 문란치 않게 하면서 옳게 생각을 하고 옳게 행을 하시면서, 또는 무위로는 마음의 주인공에 모든 것이 살고 죽는 거, 윤회가 되는 거, 인연이라는 것조차 또 시간과 공간 이런 모든 걸 놔 버리고 믿는다면, 거기서 다 하는 거니까 다 놔 버린다면 바로 그것이 참선으로 돌아가서 모두 나 아님이 없이, 내 자리 아님이 없이, 내 아픔 아님이 없이 돌아가는 그런 도리를 알게 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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