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재라는 게 정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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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우리가 뭔 일이 잘 안되면 “삼재가 들었나?” 이런 말을 할 때가 있는데 정말 삼재라는 게 있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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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말씀
항상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무엇을 하든 자기 주처를 믿고, 자기 불성을 믿고 그 자리에 놔야 합니다. 즉, 주처라는 자체가 주장자도 되고 불성도 되고 주인공도 되고 자부처도 됩니다. 그 주인공으로 인해서 우리가 주장자를 세워서 항상 수레가 구르듯이 그렇게 천차만별의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바퀴는 모두 중심에 꿰여서, 그 중심을 꿴 심봉이 바로 바퀴를 굴리는 거죠. 거기서 힘이 배출되기 때문에 그 심봉을 끼고 바퀴가 이탈이 되지 않고 돌아가는 겁니다. 모두 이 심봉에 의해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랑신이 내릴 때에 집을 지으면 악행이 벌어진다, 또는 삼재 액난이 들면 그해는 상당히 조심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공부 하는 분들은 일체 모든 게 직결이 돼 있고 가설이 돼 있는 까닭에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스럽습니다. 악행이라는 그 자체가 말로 헤아릴 수가 없는 겁니다, 생활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누구 말마따나 지수화풍으로 벌어지는 일들, 또 사람이 살아가다 혹사를 당하는 일들, 이 모두를 말로 어떻게 다 하리까, 각각 그렇게 벌어지는 일들을.
이 마음에 직결되는 직결처가 자기 주인공의 주장자니까 삼재가 벌어졌든 구랑신이 내렸든 어떠한 문제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통신이 되면 모두가 한마음으로 구성이 됩니다, 통신이 돼서. 그러니까 그런 거 벌어질 일도 없고…. 그래서 이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에 한해서는 ‘구랑신도 없고 삼재도 없다, 고도 없고 집착도 없다, 멸도만이 있다’ 이런 거죠.
그래서 부처님과 더불어 역대 조사들이 다 “네 나무는 네 뿌리를 믿어야 공덕이 있느니라. 네 나무는 네 뿌리를 알고, 둘이 아닌 줄을 알고 찰나찰나 이렇게 생활을 하는 데에 찰나찰나 없어지는 줄 알아야, 공해서 없어지는 줄 알아야 둘 아니게 여여하게 들이고 낼 수 있느니라.”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마음공부가 얼마나 간편한지 모르겠습니다. 이 마음이라는 자체가 광대하고 무변해서 전부 통신이 안 되는 데가 없습니다. 새들이 지저귀어도 다 통신이 됩니다. 꽃들도 다 통신이 됩니다. 하다못해 길을 걷다가 만나는 나무나 돌 하나도 통하지 않는 게 없습니다. 여러분은 듣지 못했으니까 이것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들을 하시겠지만 들리지 않아도 뜻으로는 같이 통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길을 걷다가 잘못될 것 같으면 옆에 돌 하나가 서 있어도 그 돌이 스스로 제대로 가게 합니다. 왜? 그 마음하고 통하니까 그 마음이 스스로 바로 가게끔 돼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를 할 때 바깥으로 한다면 통신이 안 됩니다. 그래서 나를, 내 가정을 위해서 거기에 모든 거를 다 일임하고 관한다면 모두 저절로 일체 한마음이 다 통하는 겁니다. 여러 가지로, “세계를 위해서, 우리 불자 전부를 위해서” 이렇게 안 해도 그냥 저절로 통합니다, 저절로. 이게 공덕이며 공심입니다. 공생, 공심, 공체, 공용, 공식화하고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간단하게 이 주처에다가, 당신 주인공인 주장자에다 모든 것을 다 일임해라, 일임하고 굴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나 몸에나 용도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오는 것을 대치해 막아 나가는 것을 ‘굴린다’고 합니다.
차를 타고 운전을 하고 다닌다고 하더라도 ‘야, 오늘 하루도 무사히 운전하게 해.’ 하고, 내렸으면 ‘참 무사하게 해서 감사해.’ 하고 일심으로써, 언제나 자기를 리드해 나가고 사회를 자기로 인해서 리드해 나가는 그 주동자를 항상 주시해야 되겠죠.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 주시를 안 해도 주시한 게 되죠. 그놈이 보게 하고 듣게 하고, 가고 오게 해서 내가 움죽거리니까 주동자는 자기 주장자가 주동이 돼서 있죠.
그러니까 자기 주동자가 바로 자기를 이끌어 가는 선장이거든. 왜 선장이라고 하느냐. 심봉이 끼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움죽거리지 않는 심봉이 그 힘을 배출해서 이 수레바퀴가 돌아가니까요. 자기 몸이 수레바퀴라고 한다면 그렇단 말입니다. 수레바퀴와 같다 이겁니다. 그런데 여북하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수레바퀴 돌아가듯 한다 이런 말을 했겠습니까?
수레바퀴가 돌아가는데, 비행기 프로펠러 돌아가듯 돌아가는데 거기 먼지가 앉을 새가 어딨으며, 병고가 붙을 새가 어딨으며, 삼재가 붙을 새가 어딨으며, 구랑신이 붙을 새가 어딨으며, 이 세상만사 모든 것이 붙을 새가 어디 있습니까? 고가 붙을 새가 어딨고!
내가 줄창 이런 말 하죠. 우리가 지금 현재 발자국을 떼어 놓을 때에, 떼어 놓으면 한 발 없어지고 떼어 놓으면 한 발 없어지는데 무슨 고가 붙습니까? 떼어 놓으면 없어지는데 거기에 고가 있습니까? 팔자 운명이 있습니까? 구랑신이 붙어 있습니까? 삼재 액난이 붙어 있습니까? 붙어 있는 게 아니거든요. 여러분의 생각에 의해서 그게 붙어지는 거지 붙어지는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께서는 못났든 잘났든 ‘나’를 믿으세요. 아주 자기가 못나고 형편없다 하더라도 그건 형편없는 게 아닙니다. 자기가 이 세상에 나올 권리가 있어서 나왔고, 나왔으니 또 살 권리가 있고, 살고 있으니 ‘자기가 자기를 리드하고 간다’는 그 도리를 알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육조 스님은 ‘내 불성이 있는지 어떻게 알았으리까? 내 불성이 여여한 줄 어떻게 알았으리까? 내 불성이 갖추어 가지고 있는 줄 어떻게 알았으리까? 내 불성이 만법을 들이고 내는 줄 어찌 알았으리까?’ 하신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삼재니 뭐니 하는 그런 데 귀를 기울이거나 젖어들지 말고, 흔들림이 없이 그냥 꿋꿋하게 자신을 완벽하게 밀고 나가는, 물러서지 않고 밀고 나가는 패기와 신념을 가지십시오. 또 우리가 그런 신념에 의해서 바른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가 못났다고 해서 ‘나는 부처가 될 수 없어.’ 이러는 사람은 이 마음공부를 못 하고 항상 생사윤회 바퀴에 끄달려서 세세생생을 그 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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