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한 일 없는데 왜 괴로움이… > 길을 묻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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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한 일 없는데 왜 괴로움이…

본문

질문

말로 다 하긴 어렵지만 살다 보니 내가 잘못한 일이 없는 것 같은데 억울하고 괴로운 일이 많이 닥칩니다. 이것도 다 전자에 내가 지은 인연의 소치일까요?

댓글목록

큰스님 말씀

본원관리자님의 댓글

본원관리자 작성일

여러분은 왜 내가 잘못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고가 닥치나, 이런 액이 닥치나 이러시겠지만 독 안에 들어도 못 면할 이런 인연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부부가 만나서 임신을 할 때에는 반드시 수십억 마리의 생명이 한데 합쳐집니다. 그건 왜 합쳐지느냐. 악의 인연도 만나고 선의 인연도 만나고 그래서 그 인연들 따라서 모습 모습을 바꿔 가면서 같이 인연이 된 겁니다. 좋은 인연으로만 인연이 된 게 아닙니다.

그래서 인연 따라서 그렇게 모두가 한데 합쳐졌는데 그대로 놔줄 수가 있나요? 그래 가지고선 서로 내가 제일 대장이 된다, 대표인이 된다 하고선 싸우다 싸우다 하나가 대표가 된다면, 여자가 되든 남자가 되든 인과로서 만난 인연들이 악의 인연, 유전의 인연, 또는 업보의 인연, 그 인연들이 모두 한데 합쳐지면서 그 모습은 다 없어집니다. ‘흥, 너 가는데 내가 못 가?’ 하고 붙어 돌아가는 거죠. 붙어 돌아가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 나온단 말입니다.
 
그 사람 모습이 생겨서 자라는 대로 그것도 커 가고 점점 모습이 갖춰지죠. 세포의 모든 생명들이 주둔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어떤 때는 선의 인연을 만난 게 차례가 돌아오면 참 흥미롭고 좋은 때가 있고, 거기에서 악의 인연을 만나고 유전의 인연을 만나고 업보의 인연을 만나고 병고의 인연을 만났으면 고만 병이 들고 말죠. 그러한 요소 요소가 돌아가면서 생긴다 이겁니다. 그걸 알기에 너무 참, 하늘을 쳐다보고 웃었는가 하면 땅을 내려다보고 울어야 하는 이런 피맺힌 사연들을 어찌, 차라리 몰랐으면 모르되 어찌 눈물이 흐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모두 공해서 찰나찰나 돌아가는 거니까 그냥 거기다 놔라 이랬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놓으라면 놓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이겁니다. 놓는 게 뭐냐? 이것은 첫째 진실히 자기 자성, 자체 불성을 믿어야 하고, 둘째는 물러서지 않아야 하고, 셋째는 그대로 믿고 활용을 하고 밀고 넘어가야 된다는 뜻입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게 아닙니다.

무전통신기도 눌러야 통신이 되죠? 불을 켜려 해도 스위치를 올려야 켜지지요? 가설이 돼서 불이 켜질 수 있는 건데도 자비하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라는 게 아닙니다. 불을 켤 때는 켜고 끌 때는 끄고, 자유 아니겠느냐. 만약에 부처님은 자비하기 때문에 스위치를 올릴 것도 없고 내릴 것도 없다 이런다면 여러분의 몸은 어떡하고 여러분의 가정은 어떡하며 세상 돌아가는 거를 어떻게 똑바로 관해 봅니까? 똑바로 관해 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국내에도 그렇고, 세계를 똑바로 보지 못해서 우리 국내를 살릴 수도 없고 발전시킬 수도 없는 것입니다.

스님네 역시 머리만 깎고 목탁이나 치고 경이나 읽어서 그렇게 살라는 게 아닙니다. 들어가나 나가나 한번 관해서 세상 돌아가는 걸 잘 봐서 ‘이건 이렇게 돼야 되겠구나.’ 하고선 점을 딱 찍고 넘어간다면 그건 그대로 통과죠. 그대로예요. 실천에 옮겨지는 법칙입니다. 그런데 내 몸 하나 처단 못 하고 내 가정 하나 처단 못 한대서야 부처님 법이라고 하겠습니까? 참으로 이 부처님 법은 너무도 신비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 마음은 체가 없어서 뛰어넘으려면 시공도 없는 것이 찰나찰나 돌아가니 공해서 돌아가는 이 자체를 색이 공이요, 공이 색이니 그 자체를 뛰어넘어라 한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공부한다고, 좌선만 참선이라 생각하고 앉아 있으면, 만법을 활용할 수 있으면서도 실상적으로 생활이 참선이고 그대로 생활이 삼매라는 것을 모르게 됩니다. 육신은 망가지죠, 약탕관을 들고 다녀야죠, 몸이 망가지면 마음도 약해지죠. 여러분이 더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믿음이 진실하다면….

우스운 얘기 하나 할까요? 어떤 분이 와서 “저는 암인데요, 꼭 살려 주십시오. 집이라도 팔아서 시주를 할 테니 살려 주십시오.” 내 가슴은 철렁했죠. 왜냐하면 애들은 여럿이고 오두막집이라도 팔면 저거 저…, ‘저렇게 모르나’ 이런 답답한 느낌을 어떤 때는 많이 느낍니다. 그 사람이 그나마 있는 오두막집을 팔아서 고생을 한다면 내 마음은 좋겠느냐 이겁니다.

그러니 자기가 과거 생으로서부터 받은 업보라면 그건 독 안에 들어도 못 면해요. 그러나 사는 길이 있긴 있죠. 진실히 믿고, 어려워도 진실히 믿고 거기다가 ‘죽든 살든 네 탓이다!’ 하고선 딱 놓으면 죽는 것이 죽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게 사는 길이라고요. 난 그럭해선 요구를 안 해요, 항상 그런 말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돈이 있으면서도 ‘돈은 쥐고 있어야 된다, 암이니까, 그거 죽을 거니까 아무 때 죽어도 죽을 거니까 돈은 있어야 자식들하고 산다’고 하면서 돈은 꽉 쥡니다.

그런데 이런 게 한 가지 있습니다. 돈이 없는 자는 변호사가 무료로 대변을 해 줄 수도 있고 판사나 검사가 참작해서 해 주지만, 돈이 많으면서도 돈을 내놓지 않고 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돈을 내고 보석으로 나오는 사람도 있고, 또 서류를 해서 근거가 아니라면 상신을 할 수가 없죠. 뭘로 어떻게 근거를 잡아서 법정에 들어가겠습니까? 안 그럴까요? 그래서 여러 가집니다. 부처님 법에는 시주하는 거다 안 하는 거다, 또는 꼭 해야 한다 안 해야 한다 이런 게 없습니다. 여러분에 따라서, 그것도 자유겠죠.

여러분,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셨어요? 여러분 속으로 난 자식이 금방 죽는 거하고, 남의 자식이 금방 죽는 거하고 둘을 놓고 본다면 어떤 것이 귀중하겠습니까? 그거를 냉철하게 알고 본다면 본래 산 게 없기에 죽을 것도 없기 때문에, 무슨 그게 죽었다 해서 맘이 아프고 저게 죽었다 해서 맘이 아프고 맘이 안 아프고 이런 것도 없습니다. 이건 진실입니다.

그러되 우리가 혼연일체가 돼서 마음은 같이 돌아가고 하는 도리를 배우지마는 몸은 각각 있으니, 어디까지나 사람이 사랑하면서 또는 화목하면서 조화를 이루고 가정이 다 화목하게 지낸다면 얼마나 복이 들어오며 얼마나 공덕을 이루겠습니까? 그렇게 할 줄 안다면 한 나라를 지킬 수도 있고, 세계를 관해서 볼 수도 있고, 우주를 탐험할 수도 있고, 여러분의 마음 하나가 여러분의 분신을 수만 개를 만들 수도 있고, 들이고 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실천할 수 있는 여건을 여러분 앞에 자꾸 전달을 해도 여러분이 실천 한 번 해보지 못하는 것은 믿지 못하기 때문이요, 그것을 한 번도 실험을 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칼싸움을, 무술을 잘하던 사람은, 칼로 항상 맞아 보기도 하고 때려 보기도 한 사람은 강도가 들어와도 눈도 하나 깜짝거리지 않겠죠. 그런데 그런 것을 한 번도 당해 보지도 않은 사람은 칼을 들고 들어오면 부르르르 떱니다. 안 그럴까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즉 말하자면 번연히 이것이 떡그릇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번 떡그릇에 엎드러져 보는 것도 그것도 참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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